국민의힘 수해 복구, "김 샜다"

조문희 기자 2022. 8. 1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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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체제’ 첫 활동…민생 행보 일환
‘진심’ 앞세웠지만, 복구 작업 중 망언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
당내 반발 “비상상황 스스로 만드나”

국민의힘이 11일 폭우 피해 복구 지원 현장에서 “비 좀 왔으면 좋겠다”는 부적절한 발언으로 역풍을 맞았다. 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돌입한 뒤 첫 행보부터 삐끗한 모양새다. 피해 복구 지원으로 민심을 다독이며 한 걸음 나아가려다 되레 사과의 말을 해야할 상황이 됐다.

주호영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등 지도부는 이날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집결해 수해 복구 봉사활동을 했다. 지난 8일 발생한 폭우에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당 소속 의원, 보좌진, 당직자도 다수 참석해 침수된 식료품, 가재도구 등 운반·정리 작업을 도왔다. 대다수가 가벼운 티셔츠 차림으로 장화를 신었다.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동작구 사당동 남성사계시장에서 수해 복구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의원들은 수해 복구 작업에 열중한 모습이었다. 주 위원장과 권 원내대표를 비롯한 다수 의원들은 집중호우로 물에 잠겼던 지하 식자재 창고에 진입해 상한 음식물, 폐자재 등을 직접 꺼내 올렸다. 무더위에 하수 역류가 더해져 현장은 숨을 쉬기 어려울 만큼 악취가 풍겼다. 가게 사장인 장모씨는 “1년치 멸치가 창고에 있었다”고 했다. 의원 몇몇은 “냄새 때문에 숨을 쉬기가 어렵다”며 지상으로 올라왔다가 이내 숨을 고르고 다시 작업 현장에 들어갔다.

인근 상인과 시민들은 의원들의 작업 모습에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지하 창고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50대 최모씨는 “관심가져주는 건 좋지만, 저렇게 여럿이 봉사 온다고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라며 “지대가 높은 데다 배수시설이 잘 작동하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는데, 그런 문제를 좀 고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근에 거주하는 심모씨(73)는 “피해입은 사람들에게 ‘나라가 관심이 없진 않구나’ 하는 심리적 위안은 주는 것 같다”고 했다. 한 시민은 봉사활동 시작 전 의원들을 향해 “여기서 길 막고 뭐 하시나. 짐 실은 차가 못 들어오잖나”라며 핀잔을 줬다.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나경원 전 의원 등이 11일 수해 복구 자원봉사를 위해 오전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집결했다가 한 시민으로부터 ‘길을 터 달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우려 섞인 시선을 익히 아는 듯, 주 위원장은 수해 복구 작업에 앞서 봉사의 진정성을 강조했다. 그는 의원들을 향해 “두 번 다시 이런 재난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뼈저리게 느낀다. 내 집이 수해를 입은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달라”면서 “장난과 농담, 사진 찍기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의 당부는 몇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무너졌다. 수해 복구 작업 중 김성원 의원이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고 발언했다.주 위원장이 입단속을 내린 직후였다. 임이자 의원이 팔뚝을 치며 김 의원에게 주의를 줬으나 말이 이미 나간 뒤였다. 옆에 서 있던 권 원내대표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오후에도 수해 복구 작업을 이어갔지만 당혹스런 기색을 감추지는 못했다. 한 의원은 기자와 만나 “쌔가 빠지게(‘헉헉 숨소리를 내느라 혀가 빠질 만큼 힘들게’라는 의미의 사투리) 일했는데, 김 다 샜다”고 말했다. 의원들이 직접 몸을 써가며 민생 행보에 나섰는데, 부적절한 말 때문에 진정성을 의심받게 됐다는 취지이다.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이 11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을 찾아 수해 복구 작업을 지원하던 중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고 발언했다. 채널A 갈무리

이날 수해 복구 봉사활동은 야당의 공세를 차단하고 당의 지지율을 회복하는 계기로서 국민의힘에 의미가 컸다. 당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로 접어들면서 국정 동력 상실을 우려하고 있다. 이준석 대표의 징계 사태를 비롯한 내홍은 당의 비대위 체제로 이어졌다. 폭우 첫날 윤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하지 않은 채 ‘자택 지시’한 사실은 야당과 여론의 지탄을 낳았다. 당이 비대위 출범 하루 만인 10일 ‘수해대책 및 추석민생 점검 긴급 당정협의회’를 열고 특별재난지역 선포 등을 검토한 배경이다.

김 의원은 이후 “제 개인의 순간적인 사려깊지 못함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남은 시간 진심을 다해 수해 복구 봉사활동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주 위원장은 김 의원 발언과 관련해 “(김 의원이) 평소에도 좀 장난기가 있다”며 “우리가 이런 노력하는 것이 헛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불러 가지고 엄중경고를 했다”고 말했다.

의원들이 작업 중인 지하 창고 맞은 편에서 가게를 하는 한 상인은 “비 때문에 피해입은 곳에서 어떻게 비가 왔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나. 정신이 나갔다”고 했다.

당 보좌진협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국회의원 자질을 의심할 만한 심각한 망언”이라며 김 의원을 비판했다. 김용태 최고위원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비대위 구성 후 첫 공개행보에서 상상도 못했던 비상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버렸다”며 “국민 염장지르는 발언이나 하려고 비대위를 만들었나”라고 말했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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