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검찰이 만든 '김학의 무죄'
2013년 3월 엘리트 검사 김학의가 박근혜 정부 첫 법무차관에 임명됐다.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경찰이 건설업자 윤중천의 별장 성접대 동영상을 확보했는데 여기에 김이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동영상에는 한 남성이 사각 팬티 차림으로 여성을 끌어안은 채 가수 박상철의 ‘무조건’을 부르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누가 봐도 김이 틀림없었다. 경찰은 별장에서 각종 음란물과 쇠사슬, 채찍 등을 발견했다. 김이 별장에 왔다는 참고인 진술과 김을 접대했다는 피해 여성의 진술도 확보했다.
경찰은 김의 출국금지를 2차례 신청했지만 검찰은 모두 기각했다. 경찰이 추가 증거를 확보해 김과 윤에 대한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검찰은 김의 체포영장은 기각하고, 가벼운 혐의를 적용해 윤의 구속영장만 법원에 청구했다. 경찰은 김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지만 검찰은 동영상 속 피해자를 파악할 수 없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이듬해인 2014년 동영상 속 피해자가 검찰에 직접 고소장을 제출했다. 검찰은 동영상 속 여성과 피해자가 동일 인물임을 확인할 수 없다며 또다시 단죄에 눈을 감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재수사가 진행됐다. 2019년 3월 김은 한밤중에 변장하고 출국을 시도하다 비행기 탑승구 앞에서 제지당했다. 검찰은 김에게 특수강간 아닌 뇌물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그러나 김의 도피성 출국을 막는 과정에서 공문서 조작 등 절차상 불법이 있었다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사건은 본말이 전도됐다. 경찰 수사를 방해하고 김에게 면죄부를 줬던 검사들에 대한 수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대법원은 11일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김의 재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13차례 성접대 받은 혐의는 이미 2년 전 1심부터 공소시효 만료로 무죄가 됐다. 법적으로 온전히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검사의 부정부패, 검사의 스폰서 문화,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검찰의 수사·기소권 남용, 검찰의 경찰 억누르기 같은 병폐가 집약된 김학의 사건은 검찰개혁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검찰의 총수가 대통령이 되고, 공수처는 검찰의 견제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검찰은 그를 무죄로 만들었지만, 역사는 결코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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