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고자 한다면 들을 수 있다..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준비가 돼 있으므로[이종산의 장르를 읽다]

이종산 작가 2022. 8. 1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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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7월호 ‘통역’ ‘대화’

정보라·문이소 지음(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특집)

연재를 하면서 웬만하면 내가 참여한 책은 다루지 않으려 했지만, ‘현대문학’ 지면에 실린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특집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다. 국내 SF의 현재 모습을 어떤 앤솔러지보다 선명하게 보여주는 특집이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인 ‘통역’(정보라)의 배경은 조금 먼 미래다. 지구가 온갖 쓰레기로 포화 상태가 된 미래이니 아주 먼 미래는 아닐 것이다. 지구로서는 운이 좋게도 플라스틱과 중금속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법을 아는 외계인들이 어느 날 찾아와 계약을 제안한다. 그들의 설계에 따라 지구인들은 기계를 만들어 공장을 돌리고, 외계인들은 지구의 쓰레기를 에너지 자원으로 전환해 가져가는 계약이다. 이 계약을 맺은 덕분에 지구인들은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소설은 외계인과 지구인이 계약을 맺고 시간이 꽤 흐른 시점에서 시작된다. 지구인들은 지구에 와서 일하고 있는 외계인 노동자들을 경계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들이 먼 곳에서 온 낯선 자들이기 때문에. 여기까지는 배경 설명이고, 진짜 재밌는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외계인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의 사장이 죽었는데(외계인들이 죽인 건 아니다), 어느 날부터 그가 귀신이 되어 자꾸 공장에 나타난다. 살아 있을 때도 성격이 나빠 패악을 부리고는 하던 사장은 귀신이 되어서도 노동자들을 성가시게 하며 일을 방해한다. 외계인 노동자의 입장에서 사장 귀신은 자원으로 전환할 수 있는 에너지였다. 그래서 그는 사장 귀신을 공장 기계에 돌려 에너지로 만들어버린다.

공장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는 죽은 사장의 아들(현 사장)은 외계인 노동자가 자기 아버지 귀신을 에너지로 전환해버린 것에 격분해 그를 해고한다. 외계인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만들어진 외계노동센터는 이를 부당해고로 인지하고, 외계인 노동자가 근로감독관에게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설명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주인공은 외계인 노동자와 근로감독관 사이의 말을 통역하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한 지구인 통역사다.

나는 이 러시아식 유머 같은 이야기가 너무 웃긴다. 내가 어떤 소설을 사랑하게 되는 순간은 무언가를 읽다가 그게 나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 때인데, 우선 ‘통역’은 재밌다. 감동하게 된 순간은 언제인가 하면 외계인 노동자가 근로감독관 앞에서 진술을 끝내고 주인공과 함께 건물을 나오는 장면이었다.

주인공은 햇살이 거리를 모두 불태울 듯 내리쬐는 속에서 그(외계인 노동자)가 더욱 까맣게 빛나며 그의 피부 위에 점점 더 명랑하게 반짝이는 반투명한 안개가 흐르는 듯 보였다고 묘사한다. 주인공이 그에 대해 ‘그것은 비지구적이며 무척 아름다운 광경이었다’고 서술한 순간에 나는 이 소설을 사랑하게 되었다.

외계인 노동자들은 지구에서 체재하기 위해 지구인과 비슷한 몸의 형태를 취하는데, 그 형태의 몸은 모든 종류의 유휴 에너지를 흡수한다. 그들을 경계하는 지구인들은 까맣게 보이는 그들의 몸을 차별적인 언어로 말한다. 그러나 그들의 언어를 배우며 그들을 이해하게 된 주인공의 눈에는 햇빛을 흡수하면 더욱 까맣게 빛나는 그들의 몸이 아름다워 보인다.

같은 특집에 실린 문이소의 ‘대화’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난 끊임없이 투쟁하고 있어. 치열하게 몸부림치면서 매 순간 믿고 바라고 사랑하기를 선택해.” ‘대화’는 차원 이동과 시간여행을 연구하는 언니를 동경해 같은 길을 간 동생이 어느 날 언니가 연구자의 길을 버리고 수녀가 되자 예수를 직접 만나 그가 신의 아들이 아니라 그냥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겠다며 2000년 전으로 가는 이야기인데, 주인공은 거기서 만난 예수의 제자에게 예수가 부활하지 않는다면, 그가 신의 아들이 아니라 단지 인간이었음이 밝혀진다면 어쩌겠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예수의 제자는 그래도 상관없다고, 자신은 그가 부활하지 않더라도 자비로운 사람으로, 이웃을 섬기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대답한다. 나에게 ‘통역’과 ‘대화’는 어떤 면에서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진다.

나와 다른 존재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런 물음에 대해 ‘통역’과 ‘대화’는 다른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넘어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보여주는 것 같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한다. 너무나 많은 소리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대상이 멀리 있는 사람이든, 가까이 있는 사람이든.

그러나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들을 수 있다. 사실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준비가 되어 있으므로.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때로 소설은 나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메신저가 된다. 그런 소설을 읽을 때 나는 조금 더 사랑을 배운다.

현대문학 7월

이종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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