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아침 식사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김세정 입력 2022. 8. 14.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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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없는 나라, 맛있는 이야기] 영국의 음식은 부실하기로 유명하지만, 아침 식사는 꽤 먹을 만하다. 유럽 대륙과는 차이점이 있다. 베이컨, 달걀, 토마토, 버섯, 소시지, 베이크드 빈, 토스트까지 푸짐하게 먹는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의 다른 이름은 풀 브렉퍼스트다. 그야말로 양껏 아침을 먹는다. ⓒPA

“영국에서 잘 먹고 싶다면 아침을 세 번 먹으라”는 말이 있다. 〈달과 6펜스〉 〈인간의 굴레〉 등으로 유명한 극작가 윌리엄 서머싯 몸의 말이다. 영국의 음식은 부실하기로 유명하다. 그 평판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침 식사는 꽤 먹을 만하다는 의미다.

영국이 과감하게 브렉시트를 감행하여 이제는 유럽연합(EU)에서 벗어난 지 좀 되었는데, 아침 식사를 봐도 사실 영국과 유럽 대륙은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차이점들이 있다. 대륙식, 즉 콘티넨털 브렉퍼스트(Continental Breakfast)는 점심 먹기까지의 허기를 달랠 정도로 가볍게 먹는다. 커피·우유·주스 등의 음료에 크루아상·비스킷 등과 빵에 잼과 버터를 곁들이는 수준이다. 반면 잉글리시 브렉퍼스트(English Breakfast)는 구운 베이컨에 달걀 요리, 굽거나 튀긴 토마토나 버섯에 구운 소시지와 베이크드 빈을 곁들인다. 해시 브라운이나 블랙 푸딩이 따라 나오기도 한다. 거기에 잼이나 마멀레이드, 버터를 몽땅 곁들인 토스트까지 먹는 것이다. 즉, 결정적인 차이는 푸짐함에 있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의 다른 이름은 풀 브렉퍼스트다. 그야말로 양껏 아침을 먹는 것이다.

곁들이는 탄수화물의 종류 역시 다르다. 아침에 단(sweet)것을 먹는 문화와 단것은 먹지 않는, 즉 짭짤한(savoury) 음식을 먹는 문화가 있는데, 프랑스나 이탈리아는 전자에 속한다. 전에 시칠리아로 휴가를 간다고 했더니 영국인이 말하기를, 이탈리아 사람들은 약간 정신 나간 사람들이라고, 아침 식사에 초콜릿을 바른 빵을 내놓는다고 했다. 이 발언으로 짐작하겠지만 영국은 후자에 속한다. 밥·국·김치 등으로 구성된 한국의 전통적인 식사도 짭짤한 아침 식사 계열이다.

만일 가정에서 아침 식사로 직접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를 마련하여 내놓으려면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베이컨. 베이컨은 돼지고기를 얇게 썰어 소금을 뿌려 시원한 곳에 일주일 정도 건조시키면서 만드는 것이다. 아, 물론 대개 베이컨까지 직접 만들지는 않는다. 한국에서는 베이컨이라 하면 흔히 얇은 미국식 베이컨을 떠올릴 터이지만, 영국에는 베이컨을 최소 네 가지로 분류한다. 부위별로, 또 훈제 여부로 나눈다. 돼지 등 부위의 살로 만드는 백 베이컨(back bacon)과 배 부위, 즉 한국으로 치면 삼겹살 부위를 얇게 자른 스트리키 베이컨(streaky bacon). 이 두 가지를 훈제한 것과 훈제하지 않은 것.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에는 훈제하지 않은 백 베이컨을 쓴다. 이 베이컨은 얼핏 돈가스용 돼지고기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한쪽에 기름이 붙은 등심 부위에 해당한다. 기름 쪽에 칼집을 몇 개 내어 구우면 고기가 익으면서 기름 부위와 고기 부위의 수축률 차이 때문에 오징어처럼 말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프라이팬에 구워도 된다. 하지만 그릴을 이용하면 기름이 녹아 아래로 떨어진다. 어쩐지 몸에 덜 나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실은 그 전에 소시지를 구워야 한다. 알다시피 소시지란 다진 돼지고기에 여러 가지 양념을 넣어서 만드는 음식이다. 영국의 ‘국민 음식’ 중 하나다. 지역마다 특산 소시지가 있지만,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라면 다진 돼지고기 80~90%에 후추와 간단한 향신료가 들어간 기본 소시지를 굽는다. 베이컨보다 15분 정도 일찍 굽기 시작해야 같이 내놓을 수 있다. 이때 소시지 껍질에 구멍을 내서는 안 된다. 고기를 촉촉하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육즙을 낭비하게 되기 때문이다. 소시지를 굽는 동안 작은 냄비를 꺼내어 베이크드 빈 통조림을 따서 넣고 약한 불에 데운다. 베이크드 빈이 뭘까 약간 낯설게 느껴진다면, 우리나라 부대찌개에 들어 있는 케첩 맛이 나는 콩이 바로 그것이다.

대가를 지불하고 먹는 음식

취향과 계절에 따라 생토마토를 구울 수도 있다. 토마토는 생각보다 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통조림으로 나오는 홀 토마토를 이용할 수도 있다. 베이크드 빈을 데우는 냄비 한켠에 토마토를 넣고 역시 뭉근히 데운다.

버섯을 더하고 싶다면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을 가열해서 반으로 자른 양송이버섯을 넣고 볶는다. 볶은 양송이버섯에 소금과 후추를 약간 뿌리고 뒤적뒤적한 다음 뚜껑을 덮어두면 금방 숨이 죽는다. 완성된 양송이버섯을 접시에 담고, 드디어 달걀을 조리하기 시작한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에 곁들이는 달걀은 프라이드, 스크램블드, 오믈렛 및 포치드(수란) 등이 있다.

아, 아직 토스트와 홍차 혹은 커피를 만들지 않았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를 아침마다 집에서 준비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요리를 주로 담당하는 사람이 출근을 하거나 아이를 돌봐야 한다면 불가능에 가깝다. 주방 도구 역시 만만치 않게 많이 필요하다. 소시지를 굽는 데 20분 내지 25분이 소요되는데, 그 사이에 나머지 음식들을 준비하려면 오븐의 그릴과 가스레인지 화구 세 개는 필요하다. 먹고 치우는 건 또 어떤가. 먹을 때는 좋을지 몰라도 접시들 외에도 그릴팬, 프라이팬과 적어도 냄비 두 개를 닦아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밥솥에 새로 밥을 앉히고 찌개나 국을 새로 끓이고 생선 한 토막을 굽거나 나물을 한두 가지 무치고 김치 한 포기를 꺼내 썰어 담고 설거지를 해내는 정도의 고강도 아침 노동이다. 말하자면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만들어주는 걸 대가를 지불하고 먹는 것이 정석이다.

영국 여행을 하면서 B&B(Bed and Breakfast, 잠자리와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영국식 여관)에 묵는다면 위에 적은 바와 같은 든든한 아침 식사를 맛볼 수 있다. 자고 일어나 아침에 식당으로 들어서면 으레 오고 가는 아침 인사 다음에 커피를 마시겠느냐, 아니면 차를 마시겠느냐는 질문이 이어진다. 선택을 하고 식탁에 앉은 후, 뭘 먹겠느냐는 질문에 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를 달라고 했다면 추가로 받을 질문은 달걀 요리는 뭘로 할 건지 빵은 뭘 원하는지 등이다. 음식 나오기 전에 먼저 도착한 따뜻한 카페인 음료로 아직 흐린 정신을 깨우고 있노라면, 소시지·베이컨·베이크드 빈·달걀·버섯·구운 토마토 등이 담긴 접시와 빵이 차례로 도착할 것이다.

토요일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동네 식당의 햇볕 잘 드는 창가 자리에서 아침을 먹는 건 영국 생활에서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즐거움이다. 이제 팬데믹은 거의 끝난 듯이 보인다. 어느 정도 마음 편하게 식당에 가서, 주말 신문을 펴들고, 진하게 우려낸 차에 우유를 조금 부은 영국식 티를 마시며, 소시지·베이컨·스크램블드 에그, 구운 버섯과 같이 가져올 흰 빵 토스트를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2년 동안 누리지 못한 즐거움이다.

김세정(변호사)·최은주(이학박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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