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주변의 두더지들 [노원명 에세이]
윤석열 대통령 주변에는 두더지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 있는 듯하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를 일부러 숨기려 하지 않고 대놓고 쏘아 대는 ‘내부총질자’ 두더지다. 그중 팅커는 급기야 대통령더러 ‘한판 붙자’고 하는 판이다. 13일 그가 국회에서 연 기자회견은 한국 정당사에서 희귀한 사례였다. 그처럼 극단적 자기연민과 책임 전가로 일관하는 연설을 본 적이 있는가. 그건 정말 봐주기 괴로울 정도로 딱한 신파였다. ‘팅커는 먼저 남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했다.
팅커는 테일러를 겨냥해 ‘쟤가 진짜 두더지’라고 소리쳤다. ‘윤핵관’이란 또 다른 별명을 갖고 있는 테일러는 그런 말을 들어도 싸다. 그들은 정말 두더지같이 생겼다. 대부분 지역 토호 배경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이념적이기 보다는 ‘이재적’이다.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타이타닉이 침몰할 때 끝까지 구명정에 올라탈 생존력. 침몰 가능성이 있는 대통령실 비서실장 같은 건 죽어도 안 한다. 야당이 돼도 괜찮은 지역구 의원직과 당권에만 관심이 있다. 테일러의 이런 탐욕이 일찌감치 정리됐을 팅커의 정치생명을 계속 연장시켜 주고 있다.
솔저는 스스로 ‘하방’을 자처하고도 마음은 중앙 정계에 두고 있다. 대구시청에 앉아서 용산과 여의도를 시정처럼 논평한다. 때로는 팅커를 훈계하고 때로는 대통령을 향해 쓴소리도 한다. 최근 들어선 대통령을 ‘쉴드치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 그 깊은 뜻을 누가 알겠나. 그 논평은 대체로 옳고 재미도 있다. 그런데 정말 왜 그럴까. 솔저는 언제쯤 발톱을 확 세우고 나올까. 예전의 그가 그러했듯 말이다.
푸어맨들이 내각과 대통령실에 널렸다. 그들은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눈만 굼뻑굼뻑한다. 일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과거 우파는 부패했지만 유능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지난 정권 때 보니 좌파는 우파보다 부패했고 이번 정권에 보니 우파는 좌파보다 무능하다. 하다못해 ‘탁현민’도 없다.
윤 대통령이 조만간 대통령실 개편을 할 것이란 보도가 들린다. 만약 실장을 바꾼다면 존 르카레 소설의 비전형적 주인공 ‘조지 스마일리’같은 사람을 물색하는 것이 어떨까. 화려함과는 담쌓았지만 팩트를 놓치지 않고, 핵심적인 질문을 던지고, 치밀하고, 본질에 쉽게 다가가고, 결단 있게 일을 해치우는 사람이 조지 스마일리다. 그런 비서실장을 앞세워 산만하고 무기력해진 국정에 긴장감을 불어넣길 바란다. 자기 정치와 스타일에만 관심 있는 실장을 뽑아선 안된다. 또 한 명의 ‘두더지’가 생길 뿐이다.
[노원명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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