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지하실 물 퍼냈어요' 폭우 복구 노동자는 괴롭다

안명진,박민지 2022. 8. 1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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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청소노동자 박모(57)씨는 서울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던 지난 8일 오후 10시쯤 학교로부터 '기숙사가 비상 상황이니 급히 출근해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 A씨가 지난 9일부터 연일 폭우 피해 복구 작업에 동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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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장비도 없이 사고 무방비 노출
침수된 건물서 맨몸으로 물 퍼내고
전자기기 빼낼 땐 '찌릿' 감전 우려
서울대학교 관악학생생활관(생활관)의 한 건물 지하에 위치한 기계·전기실이 8일 오후 물에 잠겨 노동자들이 물을 빼내고 있다. 생활관 측은 “기계·전기실의 침수를 막기 위해 9일 새벽 4시까지 물퍼내기 작업을 계속한 덕에 다행히 생활관 전체가 정전·누전되는 사태를 예방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서울대 제공


서울대 청소노동자 박모(57)씨는 서울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던 지난 8일 오후 10시쯤 학교로부터 ‘기숙사가 비상 상황이니 급히 출근해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서둘러 집을 나섰지만 학교까지 1시간30분이 걸렸다. 그가 도착했을 때 기숙사 건물 중 5개 동은 이미 침수되고 외부에서 흙탕물이 계속 유입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현장에는 양수기는커녕 이렇다 할 배수 도구도 없었다. 그는 라면 박스 절반 정도 되는 스티로폼 상자를 들고 밤새 기숙사 지하층 물을 퍼냈다. 각종 기자재도 지상으로 옮겼는데, 계단으로 물이 계속 흘러 들어오는 통에 미끄러져 넘어질 뻔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작업은 다음 날 오후 4시까지 이어졌는데 이동 시간까지 포함하면 박씨 근무 시간은 32시간가량 됐다.

박씨는 14일 “정신없이 작업을 하다가 물에 잠겨 있는 전기 설비가 눈에 들어와 (감전 위험 때문에) 아찔했다”며 “학교 측에서 미리 ‘설비실은 들어가지 말라’고 안내를 하거나 현장에서 진입을 막았어야 했지만 조치가 전혀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폭우 피해 현장으로 투입되는 인력들이 과로와 감전 등 각종 사고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물이 차 있는 곳에서 안전장비나 배전시설에 대한 사전 정보도 전달받지 못한 채 작업하는 경우도 많다.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 A씨가 지난 9일부터 연일 폭우 피해 복구 작업에 동원됐다. 역사가 침수돼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 운영이 중단되면서 계단을 오르내리며 작업하고 있다. 그는 특히 배수구를 뚫을 때 가장 두려웠다고 전했다. 허리춤까지 차오른 물이 회오리치고, 계단에서 물이 쏟아지는 와중에서도 배수구를 손으로 더듬어 찾아야 했다. 흙탕물 안으로 손을 넣어 배수구 입구를 가로막은 나뭇가지와 쓰레기 등을 빼내 물이 빠지기 시작한 뒤부터는 주변 물살이 거세져 몇 번이나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고 한다.

A씨는 “전자기기 등 집기를 빼낼 때는 전기가 통하는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기도 해 혹시 감전이 되는 건 아닌가 두렵기도 했다”고 말했다. 동료들끼리 ‘감전 사고를 조심하자’는 연락을 돌렸지만, 현장에선 당장 집기를 빼내는 일이 급하다 보니 별다른 조치를 할 여건이 안 됐다.

서초구의 한 상가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B씨도 지난 9일부터 이어진 피해 복구 작업으로 닷새 넘게 퇴근을 못하고 있다. 복구 작업을 하면서 몸 곳곳엔 무언가에 긁힌 듯한 상처가 수두룩하다. 그는 “건물에 미리 준비돼 있던 장비가 없어서 지금 신은 장화도 급하게 빌린 것”이라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는 “수해 이후 1차적인 복구 작업에 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입되고 있는데, 관련 업무 숙련도가 높지 않다 보니 사고 위험이 커지는 구조”라며 “재난의 빈도가 늘어나는 만큼 전문 대응인력을 운용하는 등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명진 박민지 기자 a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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