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 때 물소에 피아노 싣고 피란.. 고장난 악기 고쳐 연주하며 꿈을 꿨죠"

김성현 기자 2022. 8. 1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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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첫 쇼팽 콩쿠르 우승자, 피아니스트 당타이선 방한
조성진보다 35년 前 정상 차지
16일부터 서울·춘천·통영 독주회
"클릭 한번에 자료.. 아시아엔 기회"
내한 독주회를 여는 베트남 출신 피아니스트 당타이선. 1980년 쇼팽 콩쿠르 아시아 첫 우승자다. /마스트미디어

쇼팽 콩쿠르 아시아 첫 우승자는 한국의 조성진(2015년)이나 중국의 윤디 리(李雲迪·2000년)라고 짐작하기 쉽다. 하지만 기록 보유자는 따로 있다. 1980년 대회 우승자인 베트남 출신 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鄧泰山·64).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불과 5년 뒤의 일이라 더욱 믿기 힘든 쾌거로 받아들여졌다.

오는 16일부터 갖는 방한 독주회를 앞둔 그는 국내 서면 인터뷰에서 “참가 당시 난 아무런 경력도, 특이점도 없고 영어도 잘 못 하는 작은 아시아인에 불과했다. 우승은 나와 내 가족, 베트남에도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결핵을 앓던 아버지가 그의 우승 직후 큰 병원으로 옮겨져서 치료를 받은 일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의 아버지는 반체제 시인, 피아니스트인 어머니는 하노이 음대 교수였다.

전쟁 당시 하노이 인근 마을로 피란을 떠난 뒤 물소로 피아노를 실어나른 건 유명한 얘기. 어릴 적 그는 고장 난 피아노를 고쳐 연습하면서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웠다. 6·25전쟁 당시 피란을 가면서도 피아노를 챙겼던 한국 음악가들과도 묘하게 닮았다. 그는 “정글에서 피란하는 동안 나는 마을 사람들이 서로 의존하는 인류애와 자연을 겪고 배웠다. 예술가로 성장하기 위한 마음가짐을 유년 시절부터 쌓고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77년 소련 모스크바 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1980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대회 출전은 물론, 오케스트라 협연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번 리사이틀은 16일 춘천문화예술회관, 19일 통영국제음악당, 21일 서울예술의전당으로 이어진다. 전반부 드뷔시와 라벨의 프랑스 곡, 후반부 쇼팽의 왈츠·마주르카·폴로네즈 같은 춤곡으로 간명하게 꾸민 것이 특징이다. 그는 “레스토랑에서도 메뉴판이 책처럼 두꺼워서 여러 음식을 끝도 없이 내놓기보다는 한두 페이지로 정리된 메뉴를 내올 때 안심하는 편”이라며 “나 자신이 어떤 피아니스트인지 드러내기에 가장 적합한 곡들을 골랐다”고 말했다.

그의 제자인 중국계 캐나다 피아니스트 브루스 류(25)도 지난해 쇼팽 콩쿠르 정상에 올라서 ‘사제 우승’ 진기록도 지니고 있다. 아시아 첫 우승자가 아시아 연주자들의 대부가 된 셈이다. 조성진 역시 마스터클래스를 통해서 그에게 배운 경험이 있다. 그는 “과거에는 서양과 동양 사이에 문화적 장벽이 있었다면, 인터넷과 기술 발전 덕분에 클릭 한 번으로 넘쳐나는 음악과 자료를 찾을 수 있는 지금은 그런 장벽이 사실상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어서 “아시아 음악인들에게는 큰 기회”라는 덕담도 빼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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