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107] 제주 고사리육개장
제주에서는 제물로는 반드시 옥돔과 흑돼지와 함께 고사리를 준비한다. 고사리는 순이 연할 때 꺾어서 말려야 하기에 봄철을 넘기면 구할 수 없다. 해안 마을이 마을 어장을 가지고 있듯이 중산간 마을은 마을 고사리밭을 가지고 있다. 매년 4월 중순에서 5월 중순까지 한 달간 부녀회를 중심으로 고사리 울력을 한다. 이렇게 채취한 고사리는 삶아서 말린 후 판매해 부녀회 기금을 마련한다. 이 무렵이면 제주 오일장에는 알록달록 큼지막한 주머니가 달린 ‘고사리 앞치마’가 인기다.
이 무렵 오는 비를 ‘고사리 장마’라고 한다. 고사리는 꺾고 돌아서면 자란다고 할 정도로 잘 자란다. 제철에 아홉 차례나 꺾을 수 있을 만큼 잘 자라는 탓에 조상님에게 고사리 음식을 올려 후손의 번성을 기원하는 것이다. 조상들이 음식을 고사리전에 싸고 고사리로 묶어 가져간다고 믿는다. 고사리전을 ‘보따리’라 부른다. 제주 고사리는 숲에 자라는 흑고사리(먹고사리)와 볕에 자라는 백고사리(볕고사리에서 비롯된 말)로 구분한다. 흑고사리는 굵고 길지만, 백고사리는 가늘고 옅은 연두색이다. 왕에게 진상을 했다는 궐채(蕨菜)가 제주 흑고사리이다. 이 고사리를 두고 제주 사람들은 산에서 나는 소고기라 했다. 말린 흑고사리는 소고기보다 비싸다.
이렇게 귀한 고사리만 오롯이 사용해 제주 음식인 고사리육개장을 만드는 식당이 있다. 봄철에 채취해 말린 제주 고사리와 제주 흑돼지, 제주 땅에서 재배한 메밀을 이용한다. 고사리와 흑돼지는 각각 뭉개지도록 삶아 으깨고 찢은 후 육수를 부어 다시 끓이면서 메밀 가루를 넣는다. 봄부터 품을 팔아야 차려낼 수 있는 귀한 고사리육개장이다. 여기에 제주 잔치 음식인 ‘괴기반(돼지고기 세 점, 두부, 수애)’을 더한 고사리육개장 정식도 있다. 괴기반은 제주 잔치집에서 내놓은 음식이다.
이렇게 제주 식재료만 가지고 제주 음식 문화를 이어가고 있는 낭푼밥상은 2021년 세계 최고 음식점 50곳 중 한 곳으로 뽑히기도 했다. 궁궐에 보내고, 제사상에 올리던 제주 고사리가 여름 보양식은 물론 여행객을 위한 음식으로 변했다. 맛도 좋고 몸에도 좋다지만 제주 고사리를 탐내는 ‘고사리 관광’만큼은 지양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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