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75] 인기와 바꾼 서울 침수

김규나 소설가 2022. 8. 1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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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지하의 하수도 전체에 대한 조사는 1805년부터 1812년까지 7년 동안 계속되었다.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금이 가고, 포석이 떨어지고 깨지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사람을 소름 끼치게 하는 상태가 파리의 옛 하수도였다. 현재 하수도는 깨끗하고 시원하고 똑바르게 정리되었다. 과거 하수도와 오늘날의 하수도 사이에 혁명이 존재한다. 그 혁명을 일으킨 건 세상이 잊어버린 사람, 바로 브륀조다. -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 중에서

100년 만의 폭우였다고 한다. 하늘에서 쏟아진 폭탄처럼, 눈물겨운 삶의 터전들을 파괴했다. 소중한 목숨도 앗아갔다. 자연은 매정하고 광폭한 힘이다. 일부 단체가 환경 보호를 이유로 개발을 반대하지만 오만한 외침이다. 거친 자연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싸워온 것이 인간의 문명이다.

장발장은 양녀 코제트가 사랑하는 마리우스를 구하려고 1832년 프랑스 파리, 6월 봉기의 한복판으로 들어간다. 그는 총을 맞고 사경을 헤매던 마리우스를 둘러업고 하수도로 피신한다. 작가는 파리 밑의 또 다른 파리를 건설한 하수도의 혁명가, 브륀조야말로 프랑스의 위대한 영웅이라고 칭송한다.

파리의 하수도는 한때 쓰레기와 오물, 시체와 벌레와 쥐가 우글대며 악취와 침수, 역병을 내뿜는 지옥의 아가리였다. 보이지 않는 곳을 개혁한 것은 한 개인의 용기와 지혜, 당장은 눈에 띄는 업적이 아니지만 그 필요성을 이해하고 후원한 통치자의 안목이었다. 물론 세계적 시설을 가졌다고 천재지변 때 안전한 건 아니다. 그러나 치산치수는 통치의 기본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상습 침수 지역에 건설하려던 빗물 터널과 지하 저수조 계획을 대부분 무산시켰다. 그 결정이 이번 비 피해의 희비와 생사를 갈랐다. 대신 그는 3선 당선의 기반이던 시민 단체에 1조원을 쏟아부었다. 얼마나 큰 돈인지 실감이 나는가. 이번 물난리를 겪은 정부와 서울시가 향후 10년 동안 빗물 배수 시설에 들일 예산액이 1조5000억원이다.

전 서울시장을 미화한 것 아니냐, 의심을 사는 드라마가 요즘 인기라고 한다. 세상은 보이는 것에 열광하고 재해는 보이지 않는 데서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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