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좌파 대부' 대 '남미의 트럼프'..10월 대선 앞둔 브라질, 공식 선거 운동 돌입

정원식 기자 2022. 8. 1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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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 다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왼쪽)과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브라질 대통령. AFP연합뉴스

남미 브라질에서 오는 10월2일 대선을 앞두고 16일(현지시간)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77)이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67)을 여론조사에서 줄곧 우위를 지키면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선거 결과에 불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번 대선에는 모두 12명이 출마했으나 지난해 룰라 전 대통령의 복귀 이후 사실상 ‘노동자당(PT) 후보 룰라 대 자유당(PL) 후보 보우소나루’의 양자 대결로 압축됐다.

2003~2010년 두 차례 대통령을 지내며 ‘남미 좌파의 대부’로 불렸던 룰라 전 대통령은 2017년 뇌물수수 등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됐고 2018년에는 출마 자격도 박탈당했으나 지난해 3월 연방대법원의 선고 무효 판결 이후 대선 행보를 시작했다.

룰라 전 대통령은 이날 상파울루 인근 공업도시인 상베르나르두두캄푸의 폭스바겐 공장에서 공식 선거운동 첫 일정을 시작했다. 상베르나르두두캄푸는 룰라 전 대통령이 금속노조 위원장으로 활동한 곳으로 그의 정치적 고향이다. 이날 연설에서 그는 “어딘가에 악마에 사로잡힌 사람이 있다면 바로 보우소나루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최근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이번 대선을 ‘신을 두려워하는 선한 자’와 ‘악한 좌파’ 사이의 대결로 몰아가자 이를 비판한 것이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이날 주이스지포라에서 지지자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브라질은 더 이상 부패를 용인하지 않는다”면서 “브라질은 질서와 번영을 원한다”고 말했다. 브라질 중부 도시 주이스지포라는 그가 2018년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흉기를 든 괴한에게 피습당한 곳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기성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감을 발판으로 대선에 뛰어든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당시 이 사건을 자신의 ‘아웃사이더’ 이미지를 부각하는 데 활용했다.

룰라 전 대통령은 여론조사에서 계속해서 우위를 지키고 있다. 지난 15일 발표된 여론조사기관 IPEC 조사 결과를 보면, 그는 지지율 44%로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12%포인트 차이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룰라 전 대통령은 결선 투표에서 양자 대결을 치를 경우에도 51%로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16%포인트 차이로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브라질 대선은 1차 투표에서 과반을 확보하는 후보가 없을 경우 결선 투표를 실시한다. 결선 투표는 10월30일로 예정돼 있다.

대선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브라질에서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선거 결과에 불복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브라질 전자투표 시스템의 신뢰성을 지속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18일에는 브라질 주재 외교관들을 초청한 설명회를 열어 전자투표를 신뢰할 수 없다고 밝히는가 하면 군부에는 자체적인 선거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라고 지시했다. 앞서 지난해 7월에는 오직 신만이 자신의 권력을 빼앗아갈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지지자들이 지난해 미 의회에 난입한 사건이 브라질에서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대 법대에서 시민들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선언문을 낭독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AP연합뉴스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대선 불복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면서 지난 11일 상파울루 대학에서는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는 집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낭독된 ‘민주주의 법치 국가 수호를 위해 브라질 국민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전직 대법관들을 비롯한 정치·법조·문화예술계 인사 등 90여만명이 서명했다. 또 브라질 금융권, 에너지, 건설 부문 등을 포함한 기업인 수백명이 서명한 또 다른 민주주의 성명도 이 자리에서 함께 낭독됐다.

보우소나루 대통령 지지자들이 룰라 전 대통령 및 지지자들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경계심도 커지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7일 노동자당 당직자가 보우소나루 대통령 지지자가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이틀 뒤에는 또 다른 보우소나루 대통령 지지자가 유세 현장에 배설물이 든 사제 폭탄을 던졌다. 룰라 전 대통령은 애초 공식선거 운동을 한 엔진 공장에서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연방경찰이 안전상의 이유로 행사를 취소할 것을 요청해 폭스바겐 공장으로 장소를 옮겼다고 AP통신은 전했다. 현재 두 후보 모두 공개 유세에서는 방탄조끼를 착용한다.

이번 브라질 대선은 최근 중남미에서 핑크 타이드(좌파 물결)가 확산됨에 따라 더욱 주목받고 있다. 앞서 멕시코(2018년 12월), 아르헨티나(2019년 12월), 페루(2021년 7월), 칠레(2022년 3월), 콜롬비아(2022년 8월)에서 잇따라 좌파 정권이 출범했다. 룰라 전 대통령이 승리하면 핑크 타이드가 중남미 경제 규모 상위 6개국을 전부 휩쓸게 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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