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토부 최병욱 노조 위원장, "임금님이 벌거숭이다"

2022. 8. 19.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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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  
[국토교통부 최병욱 노조위원장]
국토교통부 최병욱 노조 위원장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숭이 임금님’이란 이솝우화가 머리를 스쳐간다.

이 동화는 사기꾼 재단사가 ‘최고의 실’로 옷을 짰다며 임금을 벌거숭이인 채로 거리로 나가게 했고, 사람들은 임금에게 사실대로 말하면 곤욕을 치를까 두려워 벌거숭이 임금을 보고도 ‘멋진 옷을 입은 임금’이라고 환호하는 모습을 그려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임금님이 벌거숭이다’라고 말하면서 이 이야기는 마침표를 찍는다.

동화 속 이야기는 현시대에도 투영돼 나타나고 있다. 이 동화의 교훈처럼 우리는 인간의 탐욕을 절제하고 또 권력에 아첨하는 위선적인 행태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필자는 글을 쓰면서 이 동화의 교훈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또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부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마련했어도 ‘국민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실생활에 잘 녹아드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지 못하면 벌거숭이 임금님처럼 망신만 당할 수 있다. 즉 국민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모든 국민의 목소리를 듣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국민과 가장 밀접한 곳에서 정부 정책을 집행하는 공무원과의 소통에 힘써야 한다.

전체 공무원 수는 국가직과 지방직을 합쳐 115만명에 달한다. 세부적으로 나눠 보면 행정직군(국방, 외교, 교육, 사회복지, 관세, 통계, 경찰, 소방, 중소기업 등)과 기술직군(산업, 건설, 주택, 보건, 환경, 시설, 교통, 물류 등) 등으로 나뉘는데, 이 중 다수의 공무원이 국민 곁에서 정책을 집행하고 있다. 공무원과 맞닿지 않은 사회 영역을 찾기 힘들 정도다.

이런 특성에서 보듯 공무원은 민심이라 할 수 있는 국민의 목소리를 매일 생생하게 듣는다. 정부나 국회가 파악하지 못한 정책의 사각지대를 언론보다 더 빨리 파악할 수 있는 특수성을 지닌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역대 정부는 현장 공무원의 생생한 피드백을 듣지 않고, 장관 등을 통해 전달되는 정제된 보고를 받아 왔다. 이로 인해 정책의 문제점을 조기에 개선할 골든타임을 스스로 박차버렸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현장에서 정책을 집행하는 공무원들이 참여하는 ‘(가칭)대통령직속의 현장 목소리를 들려주는 조직’을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는 필자가 주장하는 이유다.

이미 대통령실의 수석보좌관, 중앙행정기관의 장관 등 현존하는 정부 조직이나 국회를 통해서도 국민의 목소리를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현 보고체계로는 정제되지 않은 날것과 같은 정책 현장을 바라보는 국민의 생생한 목소리가 오롯이 전달되기 어렵고 보고 과정 또한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어, 골든타임을 놓치기 십상이다.

대통령이 타이밍을 놓친 정제된 보고를 받았을 때는, 이미 시급한 현안문제는 병들대로 병든 이후로, 이때부터 만들어지는 정책들은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원인은 근무평정과 인사권을 가진 상급자에게 현장의 목소리를 그대로 보고하기 쉽지 않은 조직문화에 있다. 실제 공무현장에서 정책의 문제점이 발견되더라도 정책 입안자에게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만약 보고하더라도 정책관, 실장, 차관, 장관까지 가감 없는 현장 목소리를 전달하기 힘들다.

이처럼 국민의 불만을 공직자의 입장에서 재해석한 메시지가 대통령에게 전달되는 동안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국민의 요구와는 다른 정책이 만들어 질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예산과 행정력을 필요로 하는 등의 자원 낭비가 발생한다.

제도가 만들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기에 그 사이에 또 누군가가 피해를 보고, 국민간 갈등을 초래하는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국민들의 평가는 정부가 끝날 때까지 이뤄진다. 그만큼 국민의 요구에 부합하는 정책을 처음부터 잘 만들어야 한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듯, 정부 정책도 손바닥 뒤집듯 수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에게 즉시 보고할 수 있는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통령직속으로 직접 보고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그 조직에 공무원노동조합을 적극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공직사회에 조직된 유일한 단체인 공무원노동조합은 조합원수 40만여명을 두고 있는 합법단체로 그 역할을 맡기에 충분하다. 사실 공무원노동조합은 그동안 정부 내에서 국회의 야당과 같은 역할을 해 왔다.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고, 또 제도 개선을 요구하기도 하는 등 정부를 견제하곤 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국민의 여론도 주도하기도 했다.

국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정책을 집행하는 하위직 공무원들을 대표하는 조직인 공무원노동조합의 대표자들을 통해 국민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들을 수 있는 소통채널이 만들어져야 한다.

공무원노동조합을 활용하면 아무런 예산 배정도 필요없고, 조직을 만들 필요도 없다. 다시 말해 당장 오늘이라도 시작할 수 있다. 요즘 세대의 표현으로 '가성비가 좋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조직은 상시조직으로 운영할 필요가 없다. 비상근 형태로 한달에 한두차례의 회의 등을 통해 운영한다면 윤석열 정부의 위원회 축소 기조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공무원을 활용해 정책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분명한 방안이 존재하는 만큼 지금이라도 당장 운영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공무원의 실 사용주는 국민이다. 표면적으로는 정부가 사용자이지만, 행정서비스의 최종 수요자는 국민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공무원의 목소리는 정책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자 지도인 셈이다.

그럼에도 앞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국토교통부의 부동산정책과 고용노동부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은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지 못해 실패한 대표적 정책 또는 사회적 갈등만 초래한 정책이다. 이 정책의 부작용은 아직까지도 이어져 우리 사회가 혼란스럽다.

그리고 출범 100일인 윤석열 정부에서 내놓았던 교육부의 학제 개편 정책도 국민적 공감대를 받지 못함으로써 폐기됐다. 한번이라도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든다.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바로 일선 현장에서 ‘우문현답’을 건배사로 외치는 이유다.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르다. 더 늦기 전에 이러한 갈등과 혼란을 막기 위해 필자가 제안하는 대통령직속의 직보 조직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후세에 또 우리 역사에 성공한 정부로 기록되려면 정책을 수립할 때 공무원들이 현장에서 국민에게 들은 목소리를 직접 대통령에게 전달할 수 있는 직보 조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국토교통부 최병욱 노조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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