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그게 어때서요"라고 말하는 마음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2022. 8. 2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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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던 때, 건강보험을 보장받기 위해 1년 남짓한 시간 맥도날드에서 물류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했다.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냉동감자 박스를 나르던 것도, 그리즈트랩의 음식물 쓰레기를 걷어내던 것도, 한겨울에 냉동창고에 들어가야 했던 것도 아니다. 나를 아는 누군가와 매장에서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내가 가르치는 대학생이 올 수도 있고 시간강사 동료들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을 납득시킬 만한 자신이 없었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대학원 후배가 햄버거를 먹고 있는 것을 본 일이 있다. 그때 나는 그가 갈 때까지 건자재실에 숨어 있었다. 한번은 나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햄버거를 먹고 있기도 했다. 나는 다음 수업을 위해 퇴근해야 했고 그러려면 그들을 지나쳐야만 했다. 고민하던 나는 다른 크루에게 부탁해 물류를 실어나르는 작은 승강기에 웅크리고 앉았다. 몇 초 후면 나는 1층에 도착하고 그가 열림 버튼을 눌러줄 것이다. 그러나 어둠은 깊고 그 시간은 길었다. 승강기는 곧 흔들리며 멈추었지만 나는 계속 하강하는, 아니 추락하고 있는 듯했다. 나의 인생은 언젠가부터 추락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들이 나를 알아보는 것이 왜 그렇게 두려웠느냐고 하면, 그들도 비싼 등록금을 내고 수업을 듣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르바이트하는 것을 보면 그들도 추락의 심정이 되지 않을까. 그들이 그러한 마음이 되길 바라지 않았다. 더불어 나도 그들에게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교수로서만 남을 수 있길 바랐다.

나는 대학을 그만두기까지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내가 맥도날드에서 일하고 있노라고 말한 일이 없다. 아니, 사실 단 한 번의 예외가 있다. 어느 학생과 면담을 하면서였다. 우리는 산책길을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말을 나눴다. 그는 재수를 할지, 편입을 할지, 학생회나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할지, 아니면 연애라도 잘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새내기 대학생다운 고민을 말해왔다. 그러면서 어쩔 수 없다고, 자신이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면 좋은 대학에 들어갔을 것이고, 자신이 벌을 받고 있는 게 아니겠느냐고 담담히 말했다. 나는 그때 무척 슬퍼지고 말았다. 그도 이미 자신의 추락을 감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래도, 교수님은 강의할 때 참 행복해 보여요. 애들이 교수님 이야기 많이 해요. 닮고 싶은 인생이라고요.” 나는 그때 걸음을 멈추었다. 나도 벌을 받고 있다고 답해야 할 것 같았다.

그때 우리 앞엔 하나의 갈림길이 나타났다. 걷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교수와 학생의 관계였고, 곧 선배와 후배가 되었고, 이제는 다른 무엇이 되려는 참이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혹시, 시내의 맥도날드에 가본 적이 있나요? 저는 거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요. 건강보험이 필요해서요. 이 삶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도 벌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아, 친구들에게는 말하지 말아주세요.” 이제 우리는 아르바이트생과 완벽한 타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 그가 나에게 답했다.

“그게 어때서요. 괜찮잖아요. 애들도 멋있다고 할 거예요.”

그때를 떠올리면 종종 울고 싶은 마음이 된다. 그가 친구들에게 어떻게 말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강의실에서 행복해 보인 나의 모습이 내가 하는 다른 일로 인해 폄하되어야 할 이유도 없고, 오히려 누군가에게는 그 자체로 멋진 일이 되는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대학에서 나와 이런저런 일을 하며 지낸다. 그중에는 한 시절 나의 노동이자 공부가 되었던 대리운전도 있다. 나는 일을 나갈 때면 아이에게 말했다. “아빠, 대리운전 다녀올게. 잘 자고 있어!” 그에게는 괜찮은 모습만 보이고 싶다. 그가 그런 나를 닮아, 언젠가 어떠한 처지에서 살아가게 되든, 타인에게 “그게 어때서요”라고 먼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때 그의 곁에 “멋있어요”라고 말해줄 사람들이 나보다 조금 더 많으면 좋겠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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