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모들의 '대통령 감싸기'..괵나라는 아첨으로 망했다

한겨레 2022. 8. 20.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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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이상수의 철학으로 바라보기ㅣ호유망국(好諛亡國)
간신 좋아하다 망한 괵나라 군주..도주 중에도 아첨에 솔깃
대통령실 폭우 대응 오버랩..쓴 약 마다땐 국정 성공 못해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사망 사고 현장을 찾아 설명을 듣고 있다. 오른쪽은 오세훈 서울시장.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중국 고대 한나라의 가의가 쓴 <신서>(新書)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실려 있다.

옛날에 괵나라의 군주가 교만하고 방자하여 스스로 뻐기기를 좋아했다. 그는 아첨하고 아부하는 자들을 가까이하고, 귀하게 여겼다. 그리고 바른 소리로 직간하는 신하들은 쫓아내거나 멀리했다. 정치가 어지러워져서 괵나라 사람들이 이 군주에게 복종하지 않았다.

아첨 좋아하다 나라 망친 임금

진나라 군사가 괵나라에 쳐들어오자 그 나라 사람들은 아무도 나라를 지키려고 나가 맞서 싸우지 않았다. 괵나라 군주는 달아났다. 국경 지역에 이르렀을 때, 말하기를 “내가 목이 말라서 마실 것을 원한다”고 하자, 말을 몰던 마부가 청주를 올렸다. 얼마 뒤 군주가 말하기를 “내가 배가 고파서, 무언가 먹으면 좋겠다”고 하자, 마부는 어포와 말린 고기와 볶은 쌀을 올렸다. 군주는 좋아라 받아먹으면서 “이런 게 다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마부는 “오래전부터 저장해둔 것”이라고 말했다. 군주가 다시 물었다. “왜 이런 걸 저장해두었느냐?”는 물음에 마부는 “나라가 망해서 임금님께서 달아나실 때 목마르다, 배고프다고 하시면 드리려고 모아두었다”고 말했다. 군주는 다시 “현명하구나! 이렇게 장기적으로 대비를 해두다니, 그럼 과인이 망할 것을 미리 알았다는 말이냐?”고 물었다.

“알았습니다.”

“왜 내게 말을 해주지 않았느냐?”

“임금님께서 아첨하는 소리만을 듣기를 좋아하시니, 어떻게 감히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군주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성을 내자, 마부가 말했다. “제 말이 지나쳤습니다. 신은 직간하기를 원했지만, 말하기도 전에 괵나라가 먼저 망했습니다.” 잠시 뒤에 군주가 또 물었다. “그렇다면 내가 망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마부가 말했다. “임금님이 망한 것은, 너무 현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군주가 다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마부가 말했다. “천하의 다른 임금들은 모두 불초하고 어리석은데 임금님 홀로 현명하십니다. 그래서 모두 임금님을 질투했기 때문에 임금님이 망하신 겁니다.”

이 소리를 듣고 괵나라 군주는 빙그레 즐거워하며 수레에 기대어 한탄했다. “아하! 현명한 것이, 이렇게 괴로운 일일 줄이야!” 그날 밤에 이 군주는 산중에서 마부의 무릎을 베고 잠들었다. 마부는 자기 다리 대신 돌멩이를 괴어 놓고 떠나버렸다. 군주는 굶주리고 지쳐 쓰러져 있다가 산중에서 짐승들의 밥이 되고 말았다. 이미 망하고 나서도 왜 망했는지를 깨닫지 못한 자이다.(此已亡矣,猶不寤所以亡,此不醒者也) 이 일화로부터 “아첨 듣기를 좋아하다가 나라를 망쳐 먹는다”라는 뜻의 ‘호유망국’(好諛亡國)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겨났다.

‘호유망국’의 고사가 떠오른 것은 지난 8일 100여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 때 일어났던 일 때문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을 포함해 폭우로 인한 막대한 침수 피해가 빚어졌고, 신림동에선 발달장애 가족이 반지하방에 갇혀 숨지는 등 참변도 잇따랐다. 차량 수천대가 침수되는 등 재산 피해와 시민 불편도 막대했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폭우로 인한 침수 피해 등을 어느 정도 인지했으면서도, 정상 퇴근을 했다. 이어 서울 서초동 자택에서 전화로 재난 대응을 지시한 것에 대해 야당과 국민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실시간으로 충분한 정보를 갖고 보고받고 지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며 “대통령이 있는 곳이 결국 상황실”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행방이 묘연했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대통령이 계시는 곳이 바로 대통령의 집무실”이라고 강변한 논리가 묘하게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대통령이 있는 곳이 결국 상황실”이라는 말은 대통령이 행여 부적절한 장소에 갔더라도 문제가 없다는 식의 논리와 마찬가지다. 앞의 일화에서 괵나라 군주가 현명하다는 간신들의 아첨처럼 위험천만하게 느껴진다.

좋은 약은 입에 쓴 법

군주의 잘못된 행동에도 “현명하다”는 아첨을 하는 것으로는, 오만 독선의 군주에게 남의 목소리와 직간에 겸손히 귀를 기울이도록 자극을 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있는 곳이 결국 상황실”이라는 말로는 대통령이 국가 재난 상황에서 취해야 할 태도와 대통령 직무에 걸맞은 행동을 하도록 바로잡을 길이 없다. 결국 이번 사태 등을 통해 드러난 대통령의 문제점을 국민과 야당, 언론만 비판할 게 아니라 여당인 국민의힘이나 대통령실 내부에서 이런 고언과 직간이 나와야 되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윤석열 정부의 성공적인 직무 수행을 희망한다는 ‘윤핵관’들과 여당으로부터 이런 고언이나 직간이 나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아 안타깝다. 차라리 이준석 전 국민의힘 당대표의 “양두구육” 발언이 더 고언이자 직간에 가깝게 느껴진다.

대통령이 아첨 대신 직간을 듣길 원한다면, 인사 혁신이 절실해 보인다. 윤 대통령이 아첨 대신 직간 듣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내부 직언이 활발해지고, 여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 지금보다 한결 나은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쓴소리를 멀리하고 달콤한 아첨에 귀를 기울인다면, 괵나라 군주의 뼈아픈 교훈을 되새겨야 할 수도 있다. 공자는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좋은 약은 입에는 쓰지만 병을 고치는 데 이롭고, 충성된 말은 귀에는 거슬리지만 행동을 바로잡는 데 이롭다.”(良藥苦口而利於病, 忠言逆耳而利於行)

철학연구자

연세대에서 주역 연구로 석사, 제자백가 논리철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겨레> 기자를 거쳐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등을 지냈다. 제자백가 사상과 철학을 강의하고 글쓰기를 하고 있다. <아큐를 위한 변명> <한비자, 권력의 기술>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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