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네번째 추기경' 유흥식 "더 많이 사랑하라는 부름"

신창용 2022. 8. 21. 07: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국인 최초 교황청 장관에 이어 추기경 임명..27일 서임식
교황청 직원에겐 '돈 라자로'..소탈한 면모로 '새세대 추기경' 불려
"교황, 한반도 평화에 큰 관심"..교황 방북 성사 관심
한국 네 번째 추기경으로 임명된 유흥식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바티칸=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유흥식 추기경이 18일(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청 성직자부 건물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8.21. changyong@yna.co.kr

(바티칸=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여기(교황청 성직자부)에선 다들 '돈 라자로'(Don Lazzaro·라자로 신부님이라는 뜻)라고 부릅니다. 저도 그게 좋습니다. 제겐 신부라는 본래의 모습이 더 중요합니다."

한국인으로는 네 번째로 추기경에 임명된 유흥식(70·라자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의 말이다.

추기경은 가톨릭교회에서 교황을 보좌하는 최측근이자 교황이 임명하는 최고위 성직자다.

종신직이며, 전 세계적으로 208명에 불과한 영예로운 자리다. 특히 80세 미만 추기경은 교황 선출권을 지녀 교황 선출회의(콘클라베)에 참여한다.

유 추기경은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에 이어 한국 가톨릭교회의 네 번째 추기경이다. 서임식은 오는 27일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에서 거행하는데 임명 절차를 마쳤기 때문에 이미 추기경 신분이다.

가톨릭교회 품계로는 교황 다음으로 높은 직책이지만, 유 추기경이 현재 속한 교황청 성직자부 직원들은 그를 여전히 '라자로 신부님'이라 부르며 친밀하게 따른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청 성직자부에서 만난 유 추기경은 '근엄하신 추기경' 이미지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유 추기경은 요즘도 교황청에서 만나는 모든 주교와 신부에게 먼저 인사한다. 안색이 어두운 신부가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안부를 묻고 대화를 시작한다.

스스럼없이 다가와 안부를 걱정해준 사람이 추기경이라는 걸 뒤늦게 알고 놀라는 사람들도 적잖다고 한다.

교황청 내부에서 '새세대 추기경'이 나왔다는 말이 도는 것도 그래서다.

권위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없는 유 추기경의 소탈하고 수수한 모습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꾸준한 관심은 프란치스코 교황과 닮은 면이 꽤 많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민 교황'이라고 할 만큼 권위를 내려놓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며 낮은 데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애써왔다. 전 세계 사람들이 교황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유다.

가톨릭교회의 변화와 쇄신을 지향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전교구장이던 유 주교를 지난해 6월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에 임명하고 대주교로 승격했다.

성직자부 장관은 전 세계 사제 및 부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는 교황청의 매우 중요한 직책 중 하나다.

서구 출신 성직자들이 줄곧 맡아왔던 성직자부 장관을 가톨릭교회의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의 주교에게 맡긴 것이다.

로마에서 거주하는 한 한국인 신자는 "놀라울 정도로 파격적인 인사로 이탈리아 현지에선 큰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유흥식 추기경 (바티칸=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유흥식 추기경이 18일(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청 성직자부 건물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8.21. changyong@yna.co.kr

유 추기경은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지낸 1년 넘는 시간을 '거룩한 모험', '신적인 모험'이라고 표현했다. 이제 그의 앞에는 추기경이라는 더 큰 모험이 기다린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유 추기경을 포함한 신임 추기경 21명의 명단을 발표한 5월 29일, 유 추기경은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작은 경당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예고 없이 추기경 임명 소식을 들은 그는 '과분한 직무'라는 생각에 큰 두려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추기경이라는 자리가 승진이나 영예가 아니라 더 많이 봉사하도록 부름을 받은 자리라는 생각에 마음을 굳게 먹었다.

유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교황님과 교회를 더 사랑하고, 모든 사제를 더 사랑할 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더 많이 섬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흐뭇해하며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라고 답했다.

유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교황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랑하는 분"이라며 "그래서 가장 큰 고통을 겪는 분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유 추기경이 추기경 임명에 대한 기쁨보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한 것도 그래서다.

교황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필하는 추기경은 교황의 고통을 나눠서 지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추기경은 문짝의 축과 같습니다. 문은 가만있어도 축이 있어야 문을 여닫을 수 있죠. 추기경은 교황님의 자문위원으로 교황님과 전 세계를 연결해주는 역할입니다. 그 중간에는 십자가의 어려움밖에 없습니다."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유 추기경은 1979년 로마 유학 중 사제 서품을 받았고, 1983년 로마 라테라노대에서 교의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대전가톨릭대 교수와 총장을 지냈으며 2003년 대전교구 부교구장 주교로 서품되고, 2005년 대전교구 교구장이 됐다.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에는 유 추기경의 역할이 컸다.

당시 성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지인 충남 당진 솔뫼성지에서 열릴 예정이던 아시아 청년대회 참석을 요청한 그의 서한을 계기로 교황 방한이 이뤄졌다.

유 추기경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주여성 등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남다른 관심을 두고 사회복지 활동에 힘써왔다.

특히 북한을 포함한 저개발국 지원에 남다른 열정과 관심을 두고 봉사를 실천했다.

대전교구장으로 봉직하던 2020년 말 세계 교구 중 처음으로 저개발국을 위한 '코로나19 백신 나눔 운동'을 시작한 게 대표적이다.

백신 나눔 운동에 매우 깊은 인상을 받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러 차례 통화와 서신을 통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유 추기경은 "전 지금까지 저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히 하려고 했다"며 "지금도 그 마음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유흥식 추기경 (바티칸=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유흥식 추기경이 18일(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청 성직자부 건물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2.8.21. changyong@yna.co.kr

유 추기경은 지난해 8월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전에서 성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 미사를 주례하는 등 한국 교회의 위상 강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그는 "한국 교회가 교황청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며 "교황청의 보편화, 세계화를 위해서도 한국 교회와 교황청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반도 평화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여온 그가 추기경의 자리에 오르면서 교황의 방북에도 가교 구실을 할지 주목된다.

유 추기경은 "교황님께서는 한반도 상황을 매우 안타깝게 보신다. 같은 형제, 자매, 동포가 갈라져 만나지 못하는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역할이든지 하시겠다는 마음이다. 교황님께선 한반도 평화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북한을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신 바 있다"며 "다만 북한에선 지금까지 응답이 없다. 교황청에선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유 추기경에게 한국 국민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부탁했다.

"한국 국민들은 자랑스럽고 특별한 국민입니다. 나 자신만 보지 말고 조금만 넓게 봤으면 좋겠습니다. 복음에서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체험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주는 사랑을 통해서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의 자랑스러운 저력이 전 세계에 드러나길 기도하고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changyong@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