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앞둔 고려대 명예교수, 텍사스서 새내기 대학원생 된다

박규리 2022. 8. 22.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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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구조물 내진 설계 분야 권위자인 이한선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명예교수가 미국 텍사스에서 새내기 대학원생이 된다.

1954년생인 이 교수는 "내 나이가 만으로 68세다. 70이 다 돼 공부를 새로 시작한다고 하니 많이들 놀란다"며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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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과 석사 입학 이한선 교수 "한국은 정년 지나면 끝..두번째 삶 열겠다"
이한선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촬영 박규리]

(서울=연합뉴스) 박규리 기자 = 건축구조물 내진 설계 분야 권위자인 이한선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명예교수가 미국 텍사스에서 새내기 대학원생이 된다.

1954년생인 이 교수는 "내 나이가 만으로 68세다. 70이 다 돼 공부를 새로 시작한다고 하니 많이들 놀란다"며 크게 웃었다.

2019년 1학기를 마지막으로 고려대에서 정년퇴임을 한 이 교수는 이달 23일 출국해 가을 학기부터 미국 텍사스 A&M 주립대 수학과 석사과정을 밟는다.

한국지진공학회 내진설계위원장과 한국지진공학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약 30년간 이 분야 교육과 연구를 주도해온 그에게 수학은 '기본 소양'이었다.

이 교수는 "내진 설계를 하려면 지진이 어느 정도의 힘으로 건물에 작용할지 알아야 하는데 이때 지진파의 특성을 규정하는 것이 다 수학"이라며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UC버클리) 엔지니어링 박사과정 당시 최소 이수 학점인 36학점을 훌쩍 넘겨 72학점을 취득한 것이 수학 공부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의 전공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수학을 제2의 인생 목표로 삼기로 한 결심 뒤에는 아들이 선물한 책 한 권이 있었다.

이 교수는 "퇴직하고 나서 서너 번은 본 것 같다.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골 때리게' 어려운 이 책이 그렇게 재밌었다"며 "수학을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가방에서 꺼내든 수학 원서는 색색의 형광펜과 거친 연필 자국들로 가득했다.

처음에는 소식을 접하고 놀라던 아들도 '아버지가 시계를 40년 돌리셨네. 청춘이 되셨어요'라며 아버지의 결심에 손뼉을 쳐줬다고 한다.

물론 올해 3월 초 유학을 결심하고 4월 중순 합격 소식을 받아들기까지 과정이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는 "유학 정보원에서도 이런 경우는 처음 봤는지 상담을 거절하더라"며 "하지만 내게 중요한 건 대학 간판이 아니라 배울 기회였기 때문에 어디든 좋다는 마음으로 홀로 열심히 찾았다"고 했다.

백발 노교수의 두드림에 텍사스 A&M 주립대도 장학금까지 주겠다며 문을 활짝 열었다.

이 교수는 "미국 유학을 결심한 건 이렇게 은퇴한 사람에게도 젊은이와 차별하지 않고 기회를 보장해주는 미국 문화 때문"이라며 "한국은 정년만 지나면 어디든 받아주지 않는 문화가 있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데, 이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서울대의 한 교수님은 정년이 10년이나 지난 75세에 큰 업적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나이만 빼고 보면 팔팔하고 능력 있는 분들이 많다. 어떻게 하면 이들을 '현역'으로 쓸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국을 며칠 앞둔 이 교수는 요즘 예습으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첫 수강과목인 '추상 대수학'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복잡한 수학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는 자전거를 타고 1∼2시간 신나게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데 그러면 신기하게도 막힌 부분이 뚫린다고 했다.

또 석사과정 중 강의조교로도 일하게 돼 익숙하지 않은 영어 수학 전문용어를 익히려고 유튜브로 해외 강의도 찾아듣고 있다.

이 교수는 최근 필즈상 수상으로 화제가 됐던 허준이 교수를 언급하며 "허 교수 같은 사람이 많이 나오려면 나처럼 수학이 재밌다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 인적 저변이 넓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학생들은 수학 성적이 세계 2위일 정도로 뛰어난데도 수험용으로만 접하다 보니 흥미를 잃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런 분위기를 바꿔 성적이 좋지 않은 사람도 재밌게 수학을 공부할 수 있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curiou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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