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부실기업' 정보비대칭 문제 더 크다

임정수 2022. 8. 22.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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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운동장에 개미만 추락
부실기업, 정보공개 기준 강화를

코스닥 A사(社). 안정적으로 연 매출 수백억원을 내던 회사의 분기 매출(개별 재무제표 기준)이 갑자기 3억원 밑으로 떨어졌다. 한국거래소(KRX)는 이 회사의 주식시장 거래를 정지시켰다. 정지 기간은 수개월에 달했다. 이 기간에 거래소는 회사로부터 자료를 받아 매출 급감 이유와 분기 매출 회복 가능성을 점검했다. 몇 개월이 지난 후에 거래는 재개됐다. 이후 주가는 곤두박질쳐 반토막 밑으로 떨어졌다.

그러는 사이 회사는 아무런 공시도 하지 않았다. 또 투자자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거래를 재개시키고 실적을 정상화하겠다는 공식 설명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회사의 미래를 믿고 주식을 산 투자자들은 자세한 설명은커녕 공시 한 줄 보지 못한 채 긴 시간을 불안에 떨어야 했다. 일부 투자자가 회사에 전화로 수시로 상황 체크를 했지만, 전화 통화가 어렵거나 통화가 되더라도 "거래 재개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등의 원론적인 대답만 들었다고 한다.

B기업. 종속 자회사에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다. 그런데 회사는 이 사실을 외부 투자자들에게 알리지 않고 수개월이 지나 분기보고서 제출 시점에 대규모 손실을 공시했다. 이 기업은 곧바로 관리종목으로 지정됐고 경우에 따라 주식거래가 정지될 가능성도 있다. 공시를 미루고 모 회사는 대규모 손실을 낸 자회사의 지분을 매각했다. 손실 사실이 외부에 공표되기 전에 '꼬리 자르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들은 사전에 정보를 확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식을 상당수 내다 팔았다. 결국 개인투자자들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 채 피해를 봐야 했다. 투자자들은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그냥 넋 놓고 버티든지 알아서 정보를 탐색하고 자구책을 마련하던지 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이런 사례는 1~2개 기업에 한정되지 않는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유가증권·코스닥 시장에서 한 차례 이상 매매가 정지된 기업은 총 103개사에 이른다. 또 올해 상반기에 회계법인에서 반기보고서 '비적정' 검토의견(한정·부적정·의견거절)을 받은 기업은 총 37곳에 달한다. 유가증권시장(코스피) 5곳, 코스닥 32곳이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정보 공개에 오히려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에 부정적인 시장 이벤트(사건)가 발생하면 기업들은 경영 정보를 외부에 알리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된다. 약점이 많아진 이가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심리가 커지는 이치다. 정보 공개에 소극적으로 변한 기업 때문에 투자자들은 해당 기업의 주가 변동성이 극도로 확대되는 시기에 회사 정보를 평상시보다 더 적게 획득하는 모순의 희생양이 되어야 한다. 외국인과 기관들은 사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투자한 주식의 정보를 선제적으로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게임의 룰(규칙)이 공정하지 않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결과가 크게 벌어지는 지점이다.

이런 이유로 정보 비대칭이라는 기울기를 줄이려는 노력을 기업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금융 당국이나 거래소가 나서서 주가 변동성을 크게 키울 수 있는 이벤트가 발생한 기업에 대해서는 정보 공개가 활발해질 수 있도록 규제를 강화하거나 더 많은 정보 공개를 유도해 내야 한다. 부실 위험이 더 큰 기업의 정보 공개 기준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인 아서 레빗 2세는 미국의 최대 회계 부정인 '엔론' 사태로 미국 증시가 초토화된 직후 기업들의 '선택적 정보 공개' 관행을 깨뜨리는 개혁을 단행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지만 끊임없는 투명성 확대가 미국이 세계 최대의 유동성이 모이는 시장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비결이다. 시장이 심상치 않을 때 선제적으로 손을 쓰는 편이 더 낫다.

임정수 자본시장부장

임정수 기자 agrem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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