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반복하다 결국.. SK온, 4조원대 프리IPO 난항 배경은

송기영 기자 2022. 8. 2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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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몸값 비싸고 조건 불리해 글로벌 PEF 난색
우크라이나 사태 겹치며 결국 국내서 자금 조달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자회사 SK온이 연초부터 글로벌 투자자를 대상으로 진행했던 상장전 투자 유치(프리 IPO)가 사실상 불발됐다. SK온은 본입찰 적격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프리IPO에 대한 협상을 계속 진행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투자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업계에서는 프리IPO 초반 SK온의 몸값이 너무 비싸게 책정했고, 글로벌 투자자에게 불리한 조건을 제시하면서 결국 투자 유치에 실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온의 프리IPO 본입찰 적격 후보로 선정됐던 글로벌 사모펀드(PEF) 칼라일그룹과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블랙록, 싱가포르투자청(GIC) 등은 투자 계획을 철회하거나 재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SK온은 지난달까지 이들과 투자 조건을 놓고 협상을 벌였으나, 긍정적인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SK온에 1조원 투자를 검토 중이었던 칼라일그룹의 경우 최근 한국 투자를 총괄했던 이규성 사장이 사임하면서 투자가 성사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SK온은 결국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한투PE)-이스트브릿지파트너스-스텔라인베스트먼트로 구성된 국내 PE컨소시엄(이하 한투PE컨소시엄)으로부터 2조원을 조달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SK온은 프리IPO를 마무리한 뒤 국내 기관 투자자 등을 대상으로 1조원가량의 후속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프리IPO가 지연되자 국내 투자 규모를 늘려 긴급 자금을 조달한 것이다.

당초 SK온의 프리IPO는 국내외 많은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이며 흥행에 성공하는 듯 했다. SK온은 올해 초 JP모건과 도이치뱅크를 주관사로 선정하고 지난 2월부터 프리IPO를 진행했다. 당시 진행된 예비입찰에는 글로벌 대형 펀드와 국부펀드 등이 관심을 보였다. 이후 국내 투자자들의 요청에 따라 프리IPO 물량 일부를 국내 투자자에게 배분하는 방안도 검토했었다.

SK온 서산 배터리공장 전경./SK온 제공

하지만 투자 협상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PEF 관계자들 사이에선 SK온이 투자자들에게 다소 불리한 조건을 제시했고, 기업가치도 과도하게 책정했다는 불만이 나왔다. SK온은 기업가치를 40조원으로 책정하고, 프리IPO를 통해 지분 10%에 해당하는 4조원을 조달할 계획이었다. 당시 투자자들은 SK온의 시장 점유율이 LG에너지솔루션의 25% 수준이라는 점을 들어 25조~30조원 수준의 기업가치가 적당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주 유상증자 형태의 투자 방식도 SK온에 유리한 구조라는 평가가 많았다. 일부 예비 투자자들은 상환전환우선주(RCPS) 등 다양한 투자 방식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상환전환우선주는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시점에 보통주로 전환하거나 투자금을 상환 받을 수 있다. 조건만 충족하면 투자자들이 언제든지 투자금 상환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자본이 아닌 부채로 인식된다. 의결권이 없는 주식이라 보통주보다 배당률이 높다. 통상 재무적투자자(FI)는 보통주보다는 원금 회수와 수익 확보에 유리한 상환전환우선주 투자를 선호한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도 SK에 악재로 작용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시작됐고 투자자들이 보수적으로 돌아섰다. 여기에 글로벌 금리 인상이 가팔라지고,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대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SK온은 이후 기업가치와 투자 조건을 낮춰 최근까지 투자자들과 협상을 벌였으나 이렇다할 성과를 얻진 못했다.

국내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자금조달은 프리IPO보다 좋지 않은 조건으로 성사됐다. 이번 투자는 한투PE컨소시엄이 최대 2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고 SK온이 발행하는 전환우선주(CPS)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한투PE컨소시엄은 국내 기관 투자자(LP)를 대상으로 자금을 모집해 CPS를 인수한다. 기업가치는 22조원으로 평가됐다. 연초 프리IPO를 진행할 당시 예상했던 40조원의 절반 수준이다.

SK온 글로벌 생산거점 확보 계획./SK온 제공

CPS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보통주로 전환되는 우선주를 말한다. 투자 초기에는 높은 배당을 받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보통주로 전환해 의결권을 얻게 된다. 투자자들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프리IPO 당시 글로벌 투자자들도 RCPS나 CPS 방식의 투자를 제안했지만, SK온은 보통주 발행 방식을 고집했었다. 여기에 향후 SK온의 기업공개(IP)가 실패할 경우 모기업인 SK이노베이션이 전환우선주를 되사는 옵션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IB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투자에 보수적으로 접근하면서 이미 글로벌 조달 시장에서 돈이 말라가고 있었는데, SK온이 기민하게 움직이지 못한 것 같다”며 “미국의 견제에도 세계 배터리 시장의 주도권이 중국에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자금조달 계획이 틀어지면 글로벌 생산 거점 확대 계획에도 차질이 생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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