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넘겠다는 中 반도체 굴기, '버블·부실'

정지우 입력 2020. 11. 22.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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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현 어려운 7나노 반도체 목표 HSMC, 결국 무너져 지방 정부가 인수
- 정부 투자 장려가 '버블' 부추겨, 제동 나섰으나 '보여주기식'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캡쳐
【베이징=정지우 특파원】중국이 미국의 전방위 압박에 맞서기 위해 자력갱생을 외치며 ‘반도체 굴기’에 나섰지만 현실에선 곳곳이 삐걱거리고 있다. 중국 정부의 공격적 반도체 육성 정책에 편승해 너도나도 ‘묻지마’ 식으로 부실·중복 투자한 탓에 퇴출 기업이 속출하는 등 혼돈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제동을 걸었으나 이마저도 뒤늦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까지 수십조원대의 투자금이 날아갔다. 중국 반도체 업계 ‘버블’은 이미 심화돼 있어 추가 손실도 예상된다.

■삼성 넘겠다는 HSMC, 정부 인수
22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중국 최초의 7나노미트(㎚) 이하 미세공정 시스템 반도체를 제작하겠다며 주목을 받았던 후베이성 우한의 우한훙신반도체제조(HSMC)가 자금난과 공장 건설 지연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우한시 둥시후구 정부에 최근 인수됐다.

이 회사는 인수 이전까지 베이징 광량 란트 테크놀로지가 지분 90%를 소유하고 나머지 자금은 둥시후 정부가 지원했으나 지금은 둥시후 국가 자산 감독 및 관리 위원회가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

HSMC는 2017년 11월 설립 당시 1280억위안(약 21조4000억원)을 투자 받기로 했다.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 중 7나노 생산이 가능한 곳은 삼성전자와 대만 TSMC밖에 없기 때문에 중국 내에서 상당한 기대를 모았다. 중국 신생사의 7나노 생산은 자국 반도체 기술이 세계 정상급으로 올라 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해서다.

그러나 투자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건설 중이던 축구장 59개 크기의 제조 공장(42만4000㎡)도 중간에 멈췄다. 코로나19 여파를 감안해도 3년 동안 완공된 건물은 1단계 공정의 일부분에 불과했다.

중국 현지에선 HSMC가 ‘7나노 반도체’라는 처음부터 실현 가능 희박한 목표를 내세웠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런데도 반도체 산업에 대한 맹목적인 투자 열기가 이러한 허점을 가렸다고 평가했다. HSMC가 이미 갖추고 있다는 14나노급 양산 기술도 실체가 불분명하다.

지방 정부가 인수를 해도 향후 개발이나 채무해결 계획 등이 불투명하다는 점은 또 다른 문제다. 공장 건설 지연 등에 따른 법적 소송도 해결해야 한다.

장상이 HSMC 전 최고경영자(CEO)는 SCMP에 “몇 마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HSMC에 대한 경험은 ‘악몽’”이라고 말했다.

중국 반도체 업체 투자금액은 올해 1~7월에만 600억위안(약 10조1000억원)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같은 시기 두 배 수준이다. 하지만 투자금만 받고 폐업하는 기업은 계속 늘고 있다.

화이안더화이는 1억위안에 가까운 임금을 지불하지 못한 채 올해 3월 사실상 회생을 포기했고 100억위안(약 1조7000억원) 프로젝트 난징더커마는 지난 7월 법원에 파산 신청서를 제출했다. 청두거신은 12인치 웨이퍼를 생산한다며 100억달러(11조1700억원) 이상을 투자 받기로 했으나 2년 만인 올해 5월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마지막 직원을 내보냈다.

‘반도체 굴기’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칭화유니그룹은 지난 16일 만기인 채권 13억위안(약 2196억)을 갚지 못해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 중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칭화유니는 중국 최고의 이공계 대학인 칭화대학이 설립한 메모리 반도체 전문 설계·제조 국유기업이다. 중국 국무원이 경영을 맡고 있다.

차이신은 작년 말 기준 장쑤성, 쓰촨성, 충칭시, 푸젠성, 광둥성, 산둥성, 후난성, 간쑤성 등 중국 전역에서 총 1조7000억위안(약 290조원) 규모의 대형 반도체 프로젝트가 모두 50여개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SCMP가 사업자 등록 웹 사이트에서 ‘반도체’로 검색한 결과 올해 초부터 지난달 중순까지 1만4300개 이상 기업이 검색됐다. 1년 전 9883건에 비해 약 4417개가 늘었다.

우한훙신반도체제조(HSMC). 바이두뉴스 캡쳐
■정부 투자 장려가 '버블' 부추겨
중국 정부가 뒤늦게 반도체 투자 난립에 제동을 걸고 나섰으나 이미 투자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투자 장려가 오히려 반도체 버블과 부실 기업 양산을 부추겼다는 비판이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지난달 기자회견을 갖고 “일부 지방의 집적회로 발전 규율에 관한 의식이 부족해 맹목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며 “‘누구 책임인가’를 원칙으로 삼아 중대 손실이나 위험을 초래한 경우 문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보여주기식’일뿐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 역시 제기된다. 반도체 육성 정책에 대한 수정이나 개선 없이 투자나 사업자들만 처벌하겠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SCMP는 “중국은 반도체 산업 내에서 자급자족을 추구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계획이 부실한 반도체 공장은 급증했으며 그중 상당수가 이미 파산 선고를 받았다”고 진단했다.

기존 기업에게도 위험은 상존한다. 중국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기업인 SMIC는 지난 12일 3·4분기 실적 발표 후 콘퍼런스콜에서 “미국산 장비, 부품, 원자재 확보가 지연되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4·4분기 매출은 전분기 대비 10~12% 줄고 올해 자본 지출도 12%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올해 9월 SMIC 등 중국 반도체 관련 기업을 거래제한 기업 명단(블랙리스트)에 올리고 미국산 반도체 생산 기술이 들어간 장비를 이들 기업에 수출하려면 사전 승인을 받도록 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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