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윤석열-방상훈 만남과 검사의 이해충돌 /박용현

박용현 2020. 10. 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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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과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만남을 지난 7월 보도한 <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박덕흠 의원이 가족 회사를 통해 피감기관으로부터 수천억원대 공사를 수주한 사건을 계기로 국회의원의 이해충돌 문제가 주목받고 있다. 사적·공적 이해관계의 충돌은 모든 공직자가 경계해야 할 위험지대이지만, 특히 직무의 독립성과 재량권이 큰 분야일수록 그 위험성이 커진다. 대표적인 게 형사·사법 분야다. 최근 <경향신문> 여론조사에서 가장 불공정한 영역으로 ‘법 집행’(71%)이 꼽힌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형사·사법 분야에서도 검사의 이해충돌은 다루기가 쉽지 않다. 법관은 공개된 재판을 거쳐 판결을 내리고 이 과정을 쌍방 당사자가 감시하기 때문에 이해충돌을 걸러낼 여지가 크다. 반면 수사·기소 과정에서 검사의 재량권 행사는 그 자체가 공개되지 않거나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저런 의심의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다.

2016년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의 ‘이메일 스캔들’을 수사할 당시 로레타 린치 검찰총장이 곤욕을 치른 일이 있다. 피닉스 공항 계류장에서 린치가 탄 비행기 옆에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우연히 머물게 됐고 클린턴이 린치를 찾아와 20분가량 대화를 나눈 게 화근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연방수사국을 지휘하는 검찰총장으로서 부적절한 행위라는 비난이 일었다. 린치는 기자회견을 열어, 대화 내용은 여행·골프·손주 등에 관한 것이었고 힐러리 클린턴 수사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며칠 뒤 다시 “이 만남이 분명 의문과 우려를 일으키고 있다”며 “결단코 그런 일을 다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고, 이후 의회의 요구로 마이클 호로위츠 법무부 감찰관이 ‘이메일 스캔들’ 수사의 적절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도 이 만남이 도마에 올랐다. 호로위츠 보고서를 보면, 빌 클린턴은 ‘린치와 인사를 나눠도 될지 참모와 상의도 했으나 바로 옆에 있으면서 인사도 못 나누는 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린치는 ‘개인적으로 잘 모르는 클린턴이 순식간에 비행기에 올라왔다. 대화가 길어지면서 점점 걱정이 됐다’고 털어놨다. 호로위츠 보고서는 “린치가 클린턴과의 만남이 야기한 ‘불공정한 외양’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대화를 짧게 끊지 않은 것은 판단 실수였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이메일 스캔들’ 사건에서 손을 뗐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직자의 이해충돌 상황을 방지하는 목적은 실제로 부패나 권력남용을 차단하는 것 이상으로 ‘공정성의 외양’(appearance of justice)을 갖춰 공적인 결정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는 데 있다. 20분간의 가벼운 만남이 심각하게 다뤄진 배경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을 만난 일이 국정감사에서 도마에 오를 모양이다.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이 방 사장을 국감 증인으로 신청하면서 다시 이목을 끌었다. 중앙지검장이 언론사 사주를 만나는 것은 그 자체로 이례적인 일이지만, 단순한 돌출행동보다는 이해충돌의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윤 총장의 중앙지검장 재임 기간(2017년 5월~2019년 7월)에는 조선일보와 관련된 사건이 많았다. 2017년 검찰과거사위원회가 발족하면서 고 장자연씨 사건이 재수사에 들어갔다. 이 사건에는 조선일보 사주 일가가 연루돼 있었다. 중앙지검이 이 사건 관련자를 기소하기도 했다. 2018년 중앙지검이 수사한 사법농단 사건에서는 양승태 대법원과 조선일보의 거래 정황이 드러났지만 공소 사실에는 빠졌다. 그밖에 시민단체들이 고발한 횡령·배임 등 사건도 여럿이다. 지난달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윤 총장이 검사윤리강령을 위반했다며 법무부에 감찰요청서를 냈다. 검사윤리강령은 “검사는 직무 수행의 공정성을 의심받을 우려가 있는 자와 교류하지 아니하며 그 처신에 유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진애 의원은 “수사기관의 장이 사건 관계자를 사적인 자리에서 만났다면 감찰 대상”이라고 증인 신청 이유를 밝혔다.

윤 총장과 방 사장이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알 수 없다. 한담객설만 오갔을 수도 있다. 그래도 문제는 문제다. 의도된 만남이라는 점은 더 문제적이다. 윤 총장이 사적인 만남이니 문제될 게 없다고 여긴다면 공직자의 처신에 대한 인식이 가벼운 것이다.

박용현ㅣ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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