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도 인사 검증 하는데..檢 내부 "사찰? 불법 목적 아니다"

나운채 2020. 11. 2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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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왼쪽) 법무부 장관이 지난 10월22일 경기도 정부 과천청사 내 법무부 청사를 빠져나가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국정 감사에 출석했다.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직무배제의 주요 사안으로 내건 ‘재판부 불법 사찰’이 수사로까지 나아갔다. 윤 총장 측은 논란을 일으킨 문건을 전격 공개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불법적인 목적이 아닌데도 추 장관이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찰이냐 업무냐…前 대법관 아들도 반박

복수의 검찰 관계자들은 전 수사정보2담당관실에 작성된 해당 문건이 사찰인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목적’이 중요하다고 분석한다. 특정 대상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한 목적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핵심이라는 취지다. 법정에서 검사는 판사로부터 평가를 받는 을(乙)의 입장으로, 공소유지를 잘하기 위해서는 마케팅과 같이 상대방을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고 다수의 검사는 전했다. 공판 업무 매뉴얼에도 재판부별 성향과 진행 방식에 차이가 있을 수 있는 만큼 특성을 파악해 적절히 대처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이를 위해 판사의 스타일과 선호(프레퍼런스)를 파악하는 것이 특정인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한 목적의 사찰과는 다르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차한성 전 대법관의 아들 차호동 대구지검 검사는 27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해외 대형법률정보 사이트에서 구매할 수 있는 정보를 게시했다. 한 미국 판사의 성격과 품행, 평가 등이 내용에 담겼다. 차 검사는 “공소유지와 무관한 경찰, 국정원 등이 법관의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과 공소유지 일방 당사자인 검사가 법관의 정보를 취합·분석하는 것은 논의의 평면과 차원 자체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무부가 투자자·국가소송(ISD) 분야에서 활동하는 중재인 현황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기 위해 국내 로펌에 의뢰했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언론 보도도 인용했다.

홍승욱 대전지검 천안지청장은 상황을 프로 야구에 빗댔다. 홍 지청장은 “코치가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심판의 경력과 경기 운영방식, 스트라이크 존 인정 성향, 선수들 세평 등을 분석해서 감독에게 보고하고 선수들과 공유하면 심판에 대한 불법사찰이 되는 무서운 세상”이라고 지적했다. 김모 부산지검 검사도 미국 ‘연방판사연감’을 언급한 뒤 “태평양 건너에서는 30년 이상 묵은 상식이나 이 땅에서는 무도한 범죄로 몰릴 수 있음을 미처 인지하지 못한 것”이라며 글을 올렸다.

윤석열 검찰총장 측이 공개한 대검 문건 속 판사 주요 평가 보니.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靑도 인사 검증…행정처 작성 문건도 거론

일각에서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공직 후보자 또는 공직자에 대해 인사 검증 차원에서 세평 등을 수집하는 정보활동도 거론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청와대 ‘인사 파일’에는 온갖 세평이나 정보가 다 들어간다”며 “그러나 정보 수집을 문제 삼지 않는 이유는 인사 검증이 목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음해 정보를 흘리거나 인권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사생활 등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사찰이지만, 그 목적과 과정에 불법이 없는 방식은 정보 수집의 일환으로 본다는 취지다.

전임 대법원장 시절 불거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서 법원행정처가 당시 최대 입법 과제인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국회의원 성향을 파악해서 문건을 작성했다는 정황도 다시 거론된다. 이 의혹은 기소되지 않았다. 당시 수사를 맡은 한 검사는 “국회를 설득하기 위해 의원 성향 등을 파악한 것일 뿐 불법적인 목적이 없어서 기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업무상 필요한 정보를 수집한 것인 만큼 불법으로 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모습. [뉴스1]



尹, 문서 전격 공개…“오픈된 정보 확인”

윤 총장 측은 전날 해당 문건을 전격 공개했다. 문건에는 출신 학교 및 주요 판결, 세평 등이 기록됐다. 문건 작성자인 성상욱 고양지청 부장검사는 “컴퓨터 앞에 앉아 법조인대관과 언론 기사, 포털 사이트와 구글을 통해 검색한 자료를 토대로 했고, 공판 검사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전화로 문의했다”고 내부망 글을 통해 설명했다. 이 중 법조인대관은 법률신문이 구축한 법률가 인물정보 데이터베이스로, 지난 1982년 구축됐다. 홈페이지와 책 등을 통해서 법조계 인사 정보를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불법적으로 수집한 정보도 아닌, 오픈된 내용을 확인해 공소유지에 참고한 것은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지적이 있다.

정희도 청주지검 부장검사는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변호사가 설득 대상인 재판장 성향을 파악하는 것은 당연하고, 검사 역시 마찬가지”라며 “재판의 ‘을’이 재판장 설득을 위해 출신, 세평 등을 확인하는 행위는 재판장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수도권의 한 부장검사도 “문건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인사권자가 불이익을 주기 위해 수집한 정보 내용이 아니다”라며 “공개된 내용을 토대로 공판에 참고하는 취지지, 추 장관이 주장하는 사찰과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운채 기자 na.un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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