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수의 입고 떠난 아이.. "저 같은 부모 또 없길"

권현경 기자 2020. 12. 1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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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동 사망사고 후 '교사 대 아동 비율' 개정 청원 올린 어머니 A 씨

【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아동 사망사고 후 '교사 대 아동 비율' 개정 청원 올린 어머니 A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우리 아이는 온순해서 이런 사고를 겪을 아이가 아니야',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에 보내지도 않는데', '괜한 어린이집 탓하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까지도 사고사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부분에 공감해주시고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아이답게 자랄 수 있도록 뜻을 모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지난 10월 23일 여섯 살 아동이 뇌출혈로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놀이터에서 놀다 친구와 부딪혀 넘어졌고, 그때 바닥에 머리를 부딪힌 것이다. 사고 이후 아이 어머니 A 씨는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교사 대 아동 비율' 개정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을 올렸다.(www1.president.go.kr/petitions/593979)

9일 오후 취재진과 만난 A 씨는 사고가 있었던 어린이집 옆 놀이터와 농구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매일 아이와 오가던 그 길을 사고 후 처음 지난다. A 씨는 아이와 평소 나누던 이야기를 미소를 띤 채 기자에게 전하다가, 아이가 떠났다는 게 아직 실감 나지 않는다며 눈물을 훔쳤다.

10분 정도 걸었을까,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어린이집이 관할하는 놀이터와 아파트에서 관리하는 농구장은 붙어 있었다. "저희 아이가 넘어진 곳은 저기예요." A 씨는 손으로 가리키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10일 오후 2시 20분 현재 국민청원 참여 인원은 14만 5942명. 정부의 답을 들을 수 있는 20만 명까지는 5만 5000여 명이 남았다. 마감일은 13일. A 씨에게 청원 참여를 독려하는 간절한 목소리를 들었다.

◇ "교사 한 명에 아이 19명…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고"

A 씨는 사고가 일어난 농구장을 가리키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청원 글을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이성적으로 말씀하실 수 있는지 놀랍고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아이가, 엄마 아빠가 화가 가득 차 있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원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저희가 마음을 잘 잡고 해야 할 일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이한테 좋을 것 같았어요. 자식 잃은 부모가 어떻게 화나 괴로움이 없겠어요. 청원 글에서는 개인적인 감정은 최대한 빼려고 했어요. 취지는 법 개선이니까요."

- 사고 당일 어린이집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던 기억이 너무 생생하실 것 같아요.

"10월 21일 오후 1시 15분경 어린이집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어요. 그날 오전 11시 30분경 아이가 친구랑 이마를 부딪혔고, 울다 진정이 되고 나니 졸려 해서 재웠다고요, 자고 일어나서 점심을 먹였는데 토하고 식은땀을 많이 흘려 병원을 가야 할 것 같다는 거예요. 어느 병원을 가야 할지 확인차 연락했다고 했어요.

그때도 제일 먼저 물었던 게, '(부딪힌) 상대방 아이는 괜찮아요?'였어요. 상대 아이가 괜찮다고 하니 우리 아이도 큰일은 아니겠지, 생각했어요. 병원 가서 뇌출혈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수술하면 낫겠지' 생각했지, 우리 아이가 떠나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병원에서 본 아이는 말을 제대로 하진 못했지만 엄마를 보고 안심하는 모습이었어요. CT 촬영 하러 이동하려고 아이를 안았는데 저한테 폭 안겼어요. 그 느낌이 아직 기억이 나고요."  

-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도 같은데요.

"처음에는 '왜 우리 애를 못 봤지?', '어떻게 땅에 부딪힌 걸 모를 수가 있었지?' 했는데 아이 19명을 교사 한 명이 봤다고 하니까, 거기다 대고 왜 못 봤냐고 물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사고 후 대응에 대해서는 아쉬운 부분이 많죠. 그 부분은 개인적으로 어린이집과의 문제라고 생각해서 청원 글에는 담지 않았어요."

- 지난달 13일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려주셨습니다. 어떤 이유인가요?

"이번에 반 인원이 19명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야외놀이를 하게 되면 어떻게 교사 한 명이 19명의 아이를 볼 수 있어요? 그게 법적으로 아무 문제없이 괜찮다고 해서 더 놀랐죠. 어떻게 보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고가 아닌가 싶어요. 너무나 슬프게도 저희 가족에게 일어나게 된 거고요.

이런 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언제, 어디서든,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고라는 생각이 드니까, 보육계에 계신 분들만 목소리를 낼 게 아니라 부모들도 한목소리로 바꿔달라고 요구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처음부터 법을 바꾸겠다는 큰 각오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20만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큰 숫자인지도 알고 있고요, 그렇지만 '저 같은 부모가 또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중한 우리 아이들을 허망하게 떠나보내는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 내가 할 수 있는 목소리라도 내보자' 해서 청원 글을 쓰게 된 거예요."

◇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해요"

10일 오후 2시 40분 현재 14만 5942명 해당 청원에 동의했다. 오는 13일 마감. ⓒ청와대 국민청원

- 청원 글도 글이지만, 인터뷰를 직접 응해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목소리를 내보자는 뜻에서 청원 글은 올렸지만, 그전까지는 언론 인터뷰에 응할 생각은 없었어요. 저희와 같이 슬퍼해 주시는 분도 계시지만 그렇지 않으신 분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도 충분히 괴로운데 또 구설에 오르고 싶지 않았어요.

막상 청원 기간이 얼마 안 남으니까, 지금까지 많은 분들이 노력해주시고 함께 해주셔서 여기까지 온 건데, 아쉽더라고요. 20만 명을 넘기더라도 바로 '그렇게 하겠다'는 답을 들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래도 한 번이라도 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게 하고 싶은데, 이렇게 포기하면 후회될 것 같았어요." 

-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린 것이 지난달 13일입니다. 진행 과정에서도 많은 생각이 드셨을 것 같아요.

"이번 일을 겪고 나서 '내가 무슨 큰 죄를 지었나? 왜 이런 일이 나한테 일어났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러다가도 주변 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얼마나 아껴주고 사랑해주는지 느끼게 되니까 '내가 헛산 건 아니구나', '살아야겠다', '감사하는 마음 잃지 않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처음에는 청원을 알려야겠다는 생각까지는 못했어요. 글을 쓰는 데 며칠이 걸렸고, 너무 많이 울면서 쓰고 나니까 힘이 빠져서 뭘 더 하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그런데도 같이 뜻을 모아주신 분들이 많았어요. '내가 운이 안 좋은 게 아니구나. 그래도 복 받은 사람이구나' 느끼게 해주신 분들이 계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 '이것만은 꼭 바뀌었으면 좋겠다' 생각하시는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교사 대 아동 비율을 당장 낮추는 게 어렵다면, 야외놀이 시 교사 대 아동 비율이라도 낮춰서 법으로 의무화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원장 재량으로 돼 있어요. 놀이공원이나 넓은 곳에 나갈 땐 학부모들이 자원봉사로 참여하기도 해요.

그런데 사고는 가까운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어요. (아이 사고가 난) 농구장은 공지 없이 놀이터처럼 사용하는 곳이었거든요. 체험학습뿐 아니라 교실 밖을 나가는 건 다 야외수업으로 규정돼야 할 거고요."
 
- 청원 마감이 3일밖에 안 남았어요. 아직 동참하지 않은 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어린이집 사건사고 위험을 개선하기 위해 교사 처우 개선, 양성 프로그램 보완, 지속적인 교육 등 여러 대책이 필요해요. 그런데 이런 문제들은 예산과 연결돼 있잖아요. 많은 분들이 '이게 되겠어?' 하실 수 있어요.

그런데 처음부터 모든 걸 다 완벽하게 짜놓고 바꿀 수는 없잖아요. 누군가가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그걸 한뜻으로 큰 틀을 잡고, 그 안에서 작은 것들을 계속 바꿔가면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많은 분들이 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 공감을 해주시고 뜻을 함께해주셨으면 좋겠어요."

- 국민청원 이후 계획이 있으신가요?

"청원 글을 쓴 건 제 의지였어요. 이제까지 어린이 사고 후에 만들어진 법들이 많이 있잖아요. 그렇게 되기까지 부모님들이 얼마나 힘든 투쟁을 해왔는지 뉴스를 통해 봤어요. 얼마나 괴로운지도 알고, 안 좋은 눈초리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요.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겠다 생각하고 청원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되고 보니 '이렇게 끝나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 10일 현재 15만 명 공감… "많은 분들 뜻 함께해주길"

A 씨는 아이가 평소 스파이더맨과 아이언맨을 제일 좋아했다며 아이가 그린 히어로 그림을 보여줬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인터뷰가 끝나고, A 씨는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여줬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깬다"는 A 씨는 그림을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건 히어로 그림이에요. 제일 좋아했던 장난감도 스파이더맨과 아이언맨인데요, 스파이더맨 옷도 사줬어요. 그거 입고 집에서 거미줄 몇 천 번 쏘고…. 수의도 스파이더맨 입혀서 보냈어요.

(병원에서) 심정지가 두 번 왔다고, 곧 (하늘나라로) 갈 것 같다고, 아이 얼굴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서 중환자실에 들어갔어요. 아이가 누워 있는데 우리 애가 아닌 것 같더라고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가, 의사 선생님이 아이 가슴 마사지를 막 하고 있는데 그걸 보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다 퍼뜩 아이한테 '우리 걱정하지 말고, 너무 아프고 힘들면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엄마·아빠랑 더 놀고 싶으면 더 있어도 되고, 지금 너무 아프고 무서우면 조금 일찍 가도 괜찮아. 엄마·아빠는 어른이니까 어떻게든 할 수 있어. 우리한테 와줘서 정말 고맙고, 사랑하고, 너무 행복하고 기뻤어'라고 얘기했어요.

그 말을 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가지 말라고 끝까지 잡았어야 했나, 그랬더라면 엄마 말 잘 듣는 우리 애가 어떻게든 (생명의 끈을) 잡고 있었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뭐든 10월 21일 이후부터 모든 선택에 대해 '다르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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