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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무대, 실험의 장"..남산예술센터, 끝내 문 닫는다

장병호 입력 2020. 12. 02. 06:02 수정 2020. 12. 02.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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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이슈 연극으로 품어온 공공극장
서울시·서울예대 임대계약 끝나 운영 종료
김수정·구자혜 "작업자로 힘이 된 극장"
이경성·정진새 "공공극장 활용 못해 아쉬워"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외관(사진=서울문화재단).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공공극장인 남산예술센터가 오는 31일 문을 닫는다. 연극 ‘휴먼 푸가’가 지난달 29일 폐막하면서 ‘남산예술센터 제작’ 연극은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됐다. 세월호, 국정농단과 탄핵, 블랙리스트와 ‘미투’ 운동까지 지난 10여 년간 한국사회를 흔들었던 다양한 이슈를 무대로 품으며 다양한 실험을 이어온, 가장 동시대적인 한국연극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사라지게 됐다.

“예상치 못한 극장 운영종료, 아쉽고 답답”

연극인들에게는 남산예술센터 운영 종료가 더욱 남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남산예술센터에서의 작업을 통해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창작자로 자리잡은 연출가 김수정, 구자혜, 이경성, 극작가 정진새에게 남산예술센터가 각자에게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물었다. 각별한 추억이 있는 곳이기에 네 사람 다 아쉬움을 먼저 내비쳤다.

무엇보다 남산예술센터는 연극 창작자에게 힘이 되는 극장이었다. 극단 신세계와 함께 ‘파란나라’를 선보였던 김수정 연출은 “남산예술센터 공연이 계기가 돼 우리 극단과 나에 대해 알아주는 관객을 더 많이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 극단처럼 좋은 기회를 얻은 극단과 연극인이 많을 텐데 말도 안 되게 극장이 없어져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구자혜 연출은 “남산예술센터는 작업자를 존중하는 제스처만 취하는 나이브한 방식이 아니라 늘 건강한 긴장관계 속에서 공연이 가야 할 방향을 같이 고민하는 극장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남산예술센터가 창작희곡 초연을 지향한 점이 “늘 든든했다”고 했다. 구 연출은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과 함께 연극 ‘가해자 탐구_부록: 사과문작성가이드’, ‘7번 국도’ 등을 이곳에서 공연했다.

남산예술센터를 둘러싼 공공성·역사성 문제가 제대로 매듭지어지지 못한 점에 대해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연극 ‘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편’로 남산예술센터의 역사적 문제를 탐구했던 이경성 연출은 “남산예술센터는 사회와 연극이 관계를 맺는 하나의 플랫폼이었다”며 “공공극장으로 활용할 다양한 방법이 있을 텐데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극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의 각색에 참여한 정진새 작가는 동시대성을 추구해온 제작극장이 사라진다는 점에 답답함을 표했다. 정 작가는 “남산예술센터는 연극의 개념을 컨템포러리한 방향으로 확장하는 극장”이라며 “기존 작업에 답답함을 느끼는 창작자에게 해방구이자 피난처였던 곳이 사라진다고 하니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남산예술센터는 지난 11년간 200편의 연극을 제작하며 동시대적 이슈를 무대로 올려왔다. 연극 ‘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편’(왼쪽 상단부터), ‘파란나라’, ‘가해자 탐구_부록: 사과문작성가이드’, ‘그믐, 도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의 공연 장면(사진=남산예술센터).
11년간 200편 제작…“연극인이 지킨 극장”

남산예술센터의 전신은 드라마센터로 1962년 동랑 유치진이 미국 록펠러 재단의 지원을 받아 한국 정부가 제공한 땅에 개관한 국내 최초 현대식 민간극장이다. 이후 유치진이 세운 서울예대 실습 공간으로 쓰였다. 2009년 서울시가 서울예대와의 임대계약을 통해 ‘창작 초연 중심 제작극장’을 지향하는 남산예술센터로 새로 개관했다.

지난 11년간 119개 극단과 함께 총 200편의 작품을 제작했다. 참여 예술가 수는 3074명, 총 관객 수는 26만 3015명에 달한다. 특히 지난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라는 엄혹한 상황 속에서도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꾸준히 무대에 올려왔다.

올해 말 극장 운영을 종료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연극인들을 중심으로 남산예술센터가 공공극장으로서의 역할을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공공극장으로 세운 드라마센터 건물을 서울예대 측이 사유화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러나 이에 대해 서울예대는 물론 서울시도 이렇다 할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결국 오는 31일 임대계약이 만료돼 극장도 문을 닫게 됐다.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섰던 연극인들은 자발적으로 극장 운영 종료 전 함께 모이는 행사를 오는 7일 개최하기로 준비해왔다. 그러나 최근 수도권 내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됨에 따라 취소를 결정했다.

우연 남산예술센터 극장장은 “극장의 미래를 알지 못한 채 임대계약 종료로 운영을 마감해야 한다는 사실이 가장 마음 아프다”며 “드라마센터가 혈연, 지연, 학연에 의해 유지되는 곳이 아니라 공공극장이라면 서울예대가 공식적인 답변과 입장을 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남산예술센터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 극장을 지켜준 것은 현장 연극인들이었다”며 “이들이 이 극장의 주인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장병호 (solani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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