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모함급 돛단배 개발 작업 '순항'..4년 뒤 푸른 바다 누빈다

이정호 기자 2020. 11. 22.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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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서 바람을 동력 삼은 선박 '오션버드' 모형 시험운항 진행
기존 배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낮아 친환경..속도 느린 게 '흠'

[경향신문]

스웨덴에서 2024년 완성을 목표로 개발 중인 범선 ‘오션버드’의 항해 상상도. 5개의 돛을 이용해 길이 200m에 이르는 선체를 풍력으로 움직인다. 월레니우스 마린 제공

깔끔한 흰색 도장을 한 선박이 푸른 바다를 가른다. 선체의 전체적인 형상은 여느 대형 선박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갑판 위에 솟은 기둥 5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굴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높고, 화물칸이라고 하기엔 너무 얇다.

기둥 5개의 정체는 바로 돛이다. 과거 대항해 시대를 누볐던 범선이 바람을 동력으로 삼기 위해 펼쳤던 돛을 현대에 재현한 것이다. 2024년 첫 항해를 목표로 스웨덴 조선업체인 월레니우스 마린이 스웨덴왕립공과대, 해양기술업체 SSPA와 공동 개발 중인 새로운 화물선의 상상도다.

배의 이름은 ‘오션버드(Oceanbird)’이다. 덩치가 어마어마하다. 배수량 3만2000t급에 길이가 200m, 폭은 40m에 이른다. 군함으로 따지면 해양 전력의 판도를 바꾸는 경항공모함이나 강습상륙함 수준이다.

거대한 덩치를 견인하기 위한 돛은 갑판에서 최대 80m까지 솟아 있다. 다만 돛이 바람에 펄럭이는 천이 아니라 딱딱한 강철과 복합소재로 돼 있다. 연구진은 고체로 만들어진 돛을 써야 파손 걱정 없이 바람을 최대한 받아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돛은 풍향에 따라 360도 회전하며, 풍력에 따라 삼단봉처럼 길이를 늘리거나 줄여 추진력을 조절할 수 있다.

■ 모형 띄우며 개발 작업 ‘착착’

오션버드 건조 계획은 지난 9월 공식 발표됐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긴가민가하는 시선이 있었다. 하지만 개발 작업은 최근 순풍을 타고 있다. 지난달 연구진은 길이 7m짜리 모형 오션버드를 만들어 스웨덴 근처 바다에 띄우는 야외 시험 장면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모형 오션버드에 사람이 리모컨으로 원격 조종하는 돛 1개를 설치해 실제 바람을 맞으며 작동시켰다.

율리세 도메 스웨덴왕립공과대 프로젝트 책임자는 “시험 기간에 바람이 강하게 불지 않아 극한의 상황을 가정한 운항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면서도 “배는 의도한 대로 잘 움직였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조만간 돛 4개를 단 좀 더 진보된 모형 오션버드를 띄울 예정이다. 특히 이번엔 사람이 조작하는 리모컨이 아니라 자동으로 바람의 흐름을 읽어 돛의 각도를 바꾸는 센서가 설치된다. 기술적으로 실물 오션버드에 더 가깝게 접근한 것이다. 이달부터 연구진은 물을 채운 대형 수조에 모형을 띄운 뒤 높은 파도를 만들어 배가 받는 충격이 돛의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도 확인하고 있다.

지난달 스웨덴 연구진이 길이 7m짜리 모형 ‘오션버드’를 바다에 띄워 시험 운항하는 모습. 월레니우스 마린 제공

■ ‘선박 탄소 규제’ 대안

오션버드는 왜 등장한 걸까. 이산화탄소 감축을 위한 국제 규제에 대응할 특효약이기 때문이다. 2018년에 국제해사기구(IMO)는 2050년까지 선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8년 대비 5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IMO의 규제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강제력이 있기 때문에 따르지 않으면 배를 계속 띄우기 어렵다.

비슷한 덩치의 디젤엔진 배는 하루에 120t의 이산화탄소를 내뿜지만, 오션버드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0% 이하인 하루 3~12t에 불과하다. 소량의 이산화탄소는 풍력에 의지하기 어려운 연안에서 보조 엔진으로 운항할 때만 생긴다.

올해부터는 선박 연료 속 황 함유량의 상한선 기준이 3.5%에서 0.5%로 대폭 낮아져 화석연료 사용에 대한 압박이 더욱 커졌다. 현재 한국 등 세계 조선업계에선 액화천연가스(LNG)를 연료로 쓰는 선박을 현실적인 대처법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오션버드처럼 바람에서 동력을 얻는다면 근본적인 대안이 추가되는 셈이다.

다만 오션버드는 다소 느린 게 흠이다. 평균 시속이 10노트인데, 대서양 횡단에 12일이 걸린다. 디젤엔진 배의 60% 속도다. 하지만 화물 운송량은 디젤엔진 배와 대등하다. 연구진은 오션버드를 차량 7000대를 싣고 대서양을 건너는 자동차 운반선으로 개발하고 있다. 오션버드 연구진에 속한 제이콥 쿠텐켈러 스웨덴왕립공과대 교수는 지난주 CNN을 통해 “최근 탄소 중립에 대한 욕구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며 “이를 위해 사람들은 다소 느린 속도로 운항하는 배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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