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게 사야할 돈까지 도박으로 날렸다" 해경 '자진 월북' 결론

최모란 입력 2020. 10. 22. 15:02 수정 2020. 10. 22.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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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됐던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선 공무원이 북한군에 피격 사망해 충격을 주는 가운데 25일 사망한 공무원의 친형이 동생의 월북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사진은 어업지도선 무궁화10호에서 촬영된 굵은 밧줄 더미 속 슬리퍼. (실종 공무원 형 이래진 씨 제공) 뉴스1


북한에 피격돼 사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실종 직전까지 인터넷 도박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종 공무원의 형 이래진(55)씨가 "동생이 어민들을 돕기 위해 동료·지인들의 꽃게 구매 대행을 주선했다"던 돈까지 도박으로 탕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양경찰은 22일 '어업지도 공무원 실종 수사 관련 간담회'에서 "실종 공무원이 도박 빚으로 인한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도피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실종 공무원, 2시쯤 실종된 것으로 추정
해경에 따르면 실종된 어업지도 공무원 이모(47)씨는 지난달 9일 어업지도선 무궁화13호에 승선해 근무를 하던 중 정기 인사 발령으로 같은 달 17일 오전 11시 무궁화10호로 이동했다. 이씨는 같은 달 20일 오후 11시40분쯤 다른 직원 한 명과 무궁화10호 3층 조타실에서 당직근무를 하던 중 21일 오전 1시35분 "1층 서무실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겠다"며 밖으로 나간 뒤 실종됐다.

무궁화호 내 줄사다리와 실종공무원의 슬리퍼 [해양경찰청]


해경은 지난달 21일 오전 2시를 전후에 무궁화10호에서 이탈한 것으로 추정했다. 1층 서무실 컴퓨터엔 이씨가 조타실을 나온 뒤 2분뒤인 21일 오전 1시37분에 접촉한 기록이 남아있었다. 소연평도 기지국과 이씨의 휴대전화 최종 연결시간은 당일 오전 1시51분이다. 그러나 이씨가 실족이나 극단적 선택 가능성은 없다고 봤다. 지난달 29일 중간수사 결과처럼 '월북'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이씨 실종 당시 무궁화10호는 닻을 내리고 정박한 상태였다. 파고 0.1미터, 바람 5m/s, 수온 22.9도 등 기상 상태도 양호했다. 배 양 옆에는 유사시에 사용할 수 있는 줄사다리도 있었다. 해경은 이씨가 북측에 발견될 당시 부유물에 의지한 채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있었던 점도 실족이나 극단적 선택과는 거리가 멀다고 판단했다.

해경관계자는 "무궁화10호의 폐쇄회로 TV(CCTV) 자료나 이씨의 휴대전화 등 결정적 단서나 목격자가 없어 사실관계를 밝히는데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면서도 "평소 이씨가 업무에 성실한 편이어서 전화 통화나 흡연을 위해 자리를 비운 것 외엔 장시간 자리를 비운 적이 없다는 동료들의 진술과 컴퓨터 접속 시간 등을 볼 때 오전 2시쯤 배에서 내린것 같다"고 추정했다.

무궁화 10호 선미. [해양경찰청]



해경 "실종 공무원, 실종 당일까지 도박"
해경은 이씨가 도박으로 인한 채무 탓에 '월북'을 선택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씨가 과거에 사용했던 휴대전화 3대를 감식하고 주변인 진술을 확인한 결과 이씨는 도박 등 각종 채무로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등 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 온 것으로 확인됐다. 해경이 이씨의 2019년 6월부터 실종 전날까지 15개월간 계좌를 추적한 결과 이씨는 도박사이트 계좌로 591차례에 거쳐 송금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자신의 급여는 물론 금융기관, 지인 등에게 돈을 빌려 수억원 대의 인터넷 도박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는 실종되기 전 "연평도 어민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며 지인과 동료들에게 ㎏당 8000원을 받고 꽃게 구매대행을 했다. 이렇게 받은 돈만 730여만원에 이르는데 이 돈도 모두 입급받은 당일 모두 도박 계좌로 송금했다. 이씨는 실종되기 직전인 지난달 20일 오후 10시28분에도 도박계좌로 송금을 했다.

꽃게 대금 흐름도. [해양경찰청]



해경 "이씨, 절박한 경제 상태에서 월북 선택한 듯"
이씨가 북측에 발견될 당시 입고 있었던 붉은 색 계열의 구명조끼는 자신의 침실에 보관된 구명조끼로 조사됐다. 이씨가 사용하던 침실을 전에 사용했던 직원을 조사한 결과 해당 침실에는 3개(A․B․C형)의 구명조끼가 있었는데 이 중 B형 구명조끼가 사라진 상태였다. 이씨가 타고 있던 부유물은 이씨의 무릎이 꺾여 발이 물에 잠긴 상태에서, 파도에도 분리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누워있을 수 있는 1미터 중반 정도의 것으로 확인됐지만 배 안에 있던 것인지는 특정되지 않았다. 동료들을 조사한 결과 배 안에서 발견된 슬리퍼도 이씨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씨는 근무 당시 운동화를 신고 근무했다고 한다.

해경 관계자는 "이씨는 출동 전·후는 물론 출동 중에도 수시로 도박을 하는 등 최근 455일 동안 591차례에 걸쳐 인터넷 도박자금을 송금하는 등 도박에 깊이 몰입되어 있었고, 각종 채무 등으로 개인회생 신청, 급여 압류 등 절박한 경제적 상황에 놓인 상태였다"며 "이런 상황에서 동료·지인들로 부터 받은 꽃게 대금까지 모두 도박으로 탕진하면서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 도피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씨 가족, "채무, 월북 증거 아니다"
반면 공무원의 형 이래진씨 측은 "동생이 채무가 있다는 것을 월북 정황 증거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공무원 이씨는 변호사를 선임한 뒤 지난 3월 울산지방법원에 회생신청을 했고 관련 절차를 진행 중이었다. 법원은 이씨가 사망한 후인 지난 6일 회생 신청을 기각했다. 이씨의 법률 대리인인 김기윤 변호사는 “이씨가 회생을 통해 빚을 해결할 의지를 보였는데 월북할 사람이 굳이 회생신청을 했겠냐”며 “이씨가 빚이 많았다는 것은 월북 증거로 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최모란·심석용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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