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In] 나 한 사람 노력이 기후위기 대응에 무슨 도움 될까요?

임기창 입력 2022. 5. 17.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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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EA 보고서, 기후 대응 핵심 요소로 '개개인 행동 변화' 강조
"에너지 부문 변화. 소비자의 능동·자발적 참여 없이 불가능"
자발성에만 기대긴 어려워.."변화 유도할 정부 역할 중요"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저도 육식을 줄이거나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하는 등 노력은 하는 편이죠. 하지만 기후위기 대응과 같은 큰 이슈에서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건 사회를 구성하는 많은 사람들이라기보다 과학기술 발전 등에 기여하는 몇몇이 아닐까요?"

직장인 오영훈(50·가명) 씨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고 일상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시민 중 하나다. 그러나 '나 한 사람의 노력이 기후위기 대응에 무슨 도움이 되겠어?'라며 회의감에 빠질 때가 종종 있다.

기후위기는 국경을 넘어선 전 지구적 현상이고, 국가와 기업 등 소위 '거대한' 주체들이 움직여야 대응할 수 있는 문제인데, 일반 시민 개개인이 일상에서 쓰레기 분리배출을 열심히 하고 냉난방을 줄이는 등 적극적인 실천을 해본들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기후위기 문제를 직접 '과학적'으로 다루는 전문가들은 시민들의 참여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탄소배출을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과학기술 발전은 물론 중요하지만, 에너지의 최종 소비자인 시민들의 행동이 얼마나 빨리 바뀌느냐에 따라 기후위기 대응 속도가 달라진다고 이들은 강조한다.

[연합뉴스TV 제공]

"시민 참여 없이는 에너지 부문 변화 불가능"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에너지 부문에서 기후위기 문제를 다루는 국제기구다. 흥미로운 것은 이곳의 전문가들 역시 저탄소 기술 개발과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등을 중요시하면서도 시민 개개인의 실천이 모인 '행동 변화'를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 요소로 강조한다는 점이다.

IEA는 지난해 5월 '2050 탄소중립: 세계 에너지 부문을 위한 로드맵'이라는 제목의 특별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여러 주체의 노력을 구체적 근거와 함께 설명했다. IEA가 '주력(flagship) 보고서'라 소개할 만큼 공들인 결과물이다.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은 탄소배출 감축이다. 이를 위해서는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삼았던 기존 에너지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보고서를 뜯어보면 이같은 탈(脫)탄소화의 핵심축으로 7개 항목이 언급됐는데, 여기에 행동 변화가 포함돼 있다. 나머지 6개는 에너지 효율, 재생에너지, 수소연료, 탄소 포집·저장 등 모두 기술적 영역이다.

보고서는 "에너지 부문의 광범위한 변화는 시민들의 능동적·자발적 참여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강조한다. 에너지 관련 상품과 서비스를 최종 소비하고 수요를 좌우하는 주체는 결국 시민과 같은 에너지 소비자들이므로 이들의 선택과 행동이 기후위기 대응에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IEA의 탄소중립 보고서 [보고서 캡처. 재판매 및 DB금지]

보고서가 제시하는 행동 변화란 거창한 것은 아니다. 지금도 많은 개개인이 실천하듯 일상에서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노력이다. 냉난방 기기를 덜 쓰는 쪽으로 실내온도를 관리하고,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 이상으로 운전하지 않는 등의 행동이 그에 해당한다.

탄소배출의 주범 중 하나인 운송수단 이용에서도 시민들의 행동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자가용 대신 자전거나 대중교통 또는 도보로 이동하기, 공유차량 이용하기, 가능하면 항공편 대신 열차 이용하기 등 교통과 관련한 생활 양식을 바꾸는 일이다.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률을 높이는 것 역시 행동 변화와 관련된 중요한 실천이다.

누구나 알지만 의식하지 않으면 실천되지 않는 이런 행동이 모이면 기후위기 대응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IEA는 작년 10월에도 '2050년 탄소중립에 도달하려면 우리의 행동을 바꿔야 할까요?'라는 기사에서 행동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이 글에 언급된 한 가지 예를 봐도 행동 변화의 위력은 만만치 않다.

IEA의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르면 2030년에는 자동차 판매량의 60%를 전기차가 차지하지만, 도로를 굴러다니는 차량 5대 중 4대는 여전히 기존에 생산·판매된 내연기관차다. 이런 조건에서 고속도로 운행 속도를 낮추고, 대도시에서 공해차량 운행을 제한하는 등 행동 변화가 있다면 2030년 도로교통 부문 탄소 배출량의 15%를 감축할 수 있다. 700Mt(메가톤)에 달하는 이 감축량은 2019년 국제 선박운송 부문 총배출량과 맞먹는 수준이라는 게 IEA의 설명이다.

다만 사람들이 행동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지는 예상하기 어렵고 장담할 수도 없다. IEA도 탄소중립 보고서에서 다룬 '불확실성' 요소 중 첫번째로 행동 변화를 꼽았다.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 상정한 수준으로 행동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2050년 탄소 배출량은 2.6Gt(기가톤)가량 늘어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했다. IEA에 따르면 2.6Gt의 탄소배출을 다른 저탄소 기술로 막는 데 드는 비용은 4조달러(약 5천132조원)로 추산된다.

탄소중립(PG) [홍소영 제작] 일러스트

코로나 사태가 보여준 가능성…"빠른 변화 가능하다"

물론 전문가들이 세계 시민들에게 '각자 알아서 인식을 바꾸고 자발적으로 실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에너지 소비 습관을 벗어던지려면 일상에서 어느 정도의 불편은 감수해야 하고, 때로는 에너지 관련 비용 부담이 커질 수도 있다. 행동 변화를 개인들의 '선의'에만 기댈 수 없는 이유다.

이 때문에 중요시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차량 운행속도 규제, 저공해차 이용 등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에너지 효율 극대화를 위한 제품 표준 마련, 탄소배출 관련 세금 부과 등 각종 법과 제도를 통해 시민의 행동 변화를 유인할 수 있는 주체가 정부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친환경 교통수단 등을 쉽게 이용하도록 공공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IEA도 정부를 "행동 변화를 가능케 할 핵심 행위자"로 표현하며 이같은 역할을 강조했다.

한국전력의 막대한 적자와 함께 국내에서 계속 논란이 되는 전기요금 인상 문제도 이런 맥락에서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정부는 물가 안정 차원에서 전기요금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해 왔는데, 그러다 보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전기를 아껴야 한다는 심리적 유인이 작아져 낭비가 발생하기 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차라리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요금 부담을 높여 전기 소비와 관련한 행동 변화를 유도하고, 취약계층에게는 에너지 바우처 등을 지급해 부담을 덜어주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에너지 정책 전문가인 조용성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IEA 보고서가 강조하는 바는 결국 소비자의 행동이 변해야 하고, 이를 유도하는 정부 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이라며 "국내 전기요금 문제를 예로 들자면 시장의 가격 기능을 정상화해 소비자들의 잘못된 전기 소비 행태를 바로잡는 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과연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는 수준으로 시민들의 행동 변화가 이루어질까.

IEA는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시민들의 생활 방식이 단기간 급속도로 바뀌었음을 거론한다. 마스크 착용과 재택근무 등이 금세 일상에 정착했듯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변화가 필요함을 시민들이 이해하기만 한다면 변화의 속도와 규모는 상당할 것이라는 게 IEA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pul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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