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수의 여행이라는 꽃다발 <14> 전남 담양] 대숲에 부는 바람에 지친 마음을 달랜다

최갑수 입력 2022. 5. 23.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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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세쿼이아 숲길에서 자전거 타기. 사진 최갑수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 숲은 몸을 뒤척인다. 바람이 그치면 다시 잠잠해진다. 고요한 대나무 숲 위로 휘황한 봄 햇빛이 찬란하고 눈부시다. 담양 대나무 숲의 신록은 물이 오를 대로 올랐다. 5월, 담양으로 떠나는 초록빛 힐링 여행.

전남 담양은 대나무골이라 불린다. 대숲 사이마다 마을이 들어앉았다. 담양의 수많은 대숲 가운데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죽녹원이다. 영산강이 시작하는 양천을 낀 향교를 지나면 왼편에 대숲이 보이는데, 이곳이 죽녹원이다.

죽녹원에 들어서는 순간 몸은 다른 공간으로 훌쩍 이동한다. 햇빛은 짙고 빽빽한 대숲으로 침범하지 못한다. 심호흡을 하면 상큼한 대나무 향이 폐 속 깊이 스며든다. 산책로도 잘 정비돼 있는데 운수대통길, 선비의 길, 추억의 샛길, 철학자의 길 등 모두 여덟 개의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다. 

대숲은 산소 발생률이 다른 나무보다 더 높다. 음이온도 많이 내뿜는다. 대숲을 걷는 것만으로도 머리와 피가 맑아지고 심신이 안정되면서 저항력이 높아진다고 한다. 죽녹원에서 안쪽으로 끝까지 들어가면 죽향 체험 마을이 나온다. 이곳 역시 온통 대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이 마을은 가사 문학의 산실인 담양의 정자 문화를 대표하는 면앙정, 송강정 등 정자와 소리전수관인 우송당, 한옥 체험장 등을 꾸며 담양의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죽녹원이 번잡해서 싫다면 삼다리에 있는 대숲을 찾아볼 만하다. 아는 사람만 알음알음 찾는 대나무 숲인데, 서늘한 대숲 산책을 한가로이 즐길 수 있다. 대나무골 테마공원도 좋다. 2003년 죽녹원이 문을 열기 전까지는 담양에서 가장 울창했던 대나무 숲이다. 다양한 대나무가 뒤섞여 자란다.

삼지내 마을 걷기. 사진 최갑수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죽녹원을 나오면 또 다른 숲을 만난다. 담양천 남쪽 둑의 관방제림이다. 담양 관방제는 담양 시내를 흐르는 담양천의 저지대 범람을 막기 위해 조선 인조 때(1648년) 만들어진 제방이다. 관방제 주변에 나무를 심은 것은 철종 때인 1854년이다. 제방의 길이는 모두 6㎞. 추정 수령 200~300년의 거목 185그루로 이루어져 있다. 

관방제림이 끝나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로 이어진다. 메타세쿼이아는 미국 서부 해안가에서 자생하는 ‘세쿼이아’ 이후에 등장한 나무란 뜻이다. 은행나무와 함께 고대 지구에서부터 존재해 온 화석나무 중 하나다. 일반적인 건물 10층 높이(30m)보다 높은 35m까지 자란다.

가로수길은 17㎞에 걸쳐 이어진다. 커다란 나무가 사열하듯 양옆으로 도열한 풍경은 우리나라가 아닌 듯한 풍경을 선사한다. 이 길에는 우여곡절이 있다. 담양군이 메타세쿼이아를 가로수로 심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72년. 당시 3~4년생짜리 어린나무를 국도변에 심었다. 빠르게 자라는 메타세쿼이아는 담양 지역의 토양과 기후에 잘 적응했고 30년이 지나는 동안 나무는 키가 20m에 이를 만큼 자랐다. 그러다 지난 2000년 광주~순창 간 국도 확장 공사가 이뤄지면서 길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도로 확장을 위해 나무를 베어내게 되자 주민들과 지역 사회단체들이 극력 반발하면서 막아섰고, 천신만고 끝에 가로수길을 그대로 놔두고 우회해 확장 도로를 건설하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 됐다.

한국 정원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소쇄원. 사진 최갑수

한국 정원의 정수

담양 하면 소쇄원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옛 정원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곳. 조선 중기 양산보(1503~57년)가 세운 별서정원이다. 양산보는 개혁정치를 펼치던 조광조의 제자였으나 스승이 기묘사화 때 화순 능주로 유배돼 사약을 받고 죽자 덧없는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낙향해 담양에 소쇄원을 지었다. 소쇄(瀟灑)는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뜻. 별서정원이란 ‘집 근처 경치 좋은 곳에 지어진, 문화생활과 전원생활을 겸할 수 있는 조용한 공간’을 이르는 말이다.

소쇄원은 크게 네 구역으로 구분된다. 정원의 입구 격인 대나무 숲길을 따라 들어서면 짚으로 지은 정자 ‘대봉대’를 시작으로 소쇄원의 중추를 이루는 ‘광풍각’, 집주인 양산보가 사색과 독서를 위해 즐겨 찾았다는 ‘제월당’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양산보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소쇄원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면서 “어리석은 자손에게는 물려주지도 말고, 이곳을 절대 남에게 팔지 말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고 한다. 그 후 세월이 450여 년이나 흘렀지만 양산보 후손들은 15대를 이어 내려오는 동안 그의 유언을 받들어 소쇄원을 가문의 자랑으로 여기며 지금까지 잘 보존해 오고 있다.

여행수첩

먹거리 담양읍사무소 옆에 있는 덕인관은 2대에 걸쳐 떡갈비를 선보이는 곳. 남도음식축제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죽녹원 가까운 곳에 국수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일곱 곳의 국숫집이 모여 있는데 그 가운데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진우네집국수가 가장 유명하다. 창평시장 안에 돼지국밥 식당이 모인 창평국밥거리가 있다. 과거 창평에 도축장이 위치해 국밥의 재료인 돼지 부속물을 손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창평장에 국밥거리가 형성됐다고 한다. 

오랜 시간 속을 걷다 창평면의 삼지내마을은 500년 역사의 창평 고씨 집성촌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장을 지냈던 고경명 장군의 후손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다. 고정주 고택을 비롯해 고재선 가옥, 고재환 가옥 등 1900년대 초 건축된 한옥 20여 채가 모여있다. 창평면은 한때 천석꾼이 600여 호에 이를 정도로 부촌이었다.

삼지내 마을은 2007년 슬로시티에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삼지내 마을 돌담이 “화강석 둥근 돌을 사용하고, 돌과 흙을 번갈아 쌓아 줄눈이 생긴 담장과 막쌓기 형식의 담장이 혼재된 전통 토석담 구조로 가치가 높다”고 해서 2006년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 최갑수
시인, 여행작가, ‘우리는 사랑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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