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현실 다뤘다는 'K좀비 스펙터클'이 불편한 이유[플랫]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2022. 2. 8.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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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비 오는 날 저녁 한 건물 옥상에 학생들이 모여있다. 손명환(오희준), 윤귀남(유인수)을 비롯한 무리는 “제발 그만”이라고 말하는 이진수(이민구)를 무차별 폭행한다. 진수는 무리에게 일방적으로 맞고 차이고 밟히다 마지막으로 악을 쓰며 달려들지만 결국 옥상에서 추락한다. 카메라는 이 장면을 상하좌우로 비추고, 접사와 와이드샷을 넘나들며 다양한 각도로 촬영한다. 일방적인 폭행 장면을 마치 하나의 액션신처럼 화려하게 다뤘다.

#명환 무리는 신축공사 중인 학교 건물 안에서 또 다른 학생들을 괴롭힌다. 박창훈(신재휘)과 귀남은 울고 있는 민은지(오혜수)의 입을 막고 옷을 벗긴다. 이들은 또 다른 학교폭력 피해자인 김철수(안지호)에게 상의가 벗겨진 채 울고 있는 은지를 휴대전화로 촬영하도록 시킨다. 이때 주인공 이수혁(로몬)이 등장해 은지와 철수를 구해주려고 한다. 하지만 귀남이 “너 XX 섹시하게 나왔어. 너희 엄마한테 보내줄까?”라고 협박하자, 은지는 수혁에게 “이대로 가면 내일 두 배로 당해”라고 말하며 괴롭히던 이들에게 돌아가 스스로 옷을 벗는다.

넷플릭스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 1화에 나오는 장면들이다. 지난 28일 공개된 <지금 우리 학교는>은 공개 하루 만에 글로벌 넷플릭스 시리즈 1위에 올라 9일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넷플릭스 집계에 따르면 3일 만에 1억2479만 시청시간을 기록해 <오징어 게임>(6319만)의 2배, <지옥>(4348만)의 3배에 달했다. 그러나 이런 괄목할 만한 성적 이면에는 작품이 폭력을 대하는 안일한 태도가 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학교폭력과 성폭력 등을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다뤄 약자들의 고통을 볼거리로 만들어 버린다.

대중문화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표현의 자유를 떠나 해당 장면들의 연출이 과하게 느껴진 것이 사실이다. 지상파는 물론 케이블이나 종편 채널에서는 ‘19금’을 붙이더라도 이렇게까지는 연출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드라마가 선정적 장면을 노출한 다음 서사를 통해 수습을 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폭력은 소재가 되고, 피해자 캐릭터는 쓸쓸히 퇴장한다. 아들인 진수가 지속적인 폭력을 당하면서도 반격하지 못하자 아버지 이병찬(김병철)은 좀비 바이러스를 직접 만들어낸다. 좀비 바이러스를 탄생시킨 것은 학교폭력이다. 그럼에도 진수가 피를 흘리며 맞는 장면을 ‘스펙터클하게’ 다룰 이유는 없어 보인다. 불법촬영 등 성폭력 피해자인 은지 역시 이후 비교적 허무하게 퇴장해 1화에 성폭력 장면이 구체적으로 등장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 남는다.

문제는 드라마가 선정적 장면을 노출한 다음 서사를 통해 수습을 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폭력은 소재가 되고, 피해자 캐릭터는 쓸쓸히 퇴장한다. 넷플릭스 제공

<지금 우리 학교는>이 다룬 성폭력과 학교폭력이 이미 시청자에게 익숙한 폭력인 만큼 묘사에 신중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문제 제기를 하는 초기 단계에서는 어떤 문제를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것이 마치 그 현상을 비판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폭로의 의미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성폭력 같은 경우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오히려 해당 장면을 재현하고 디테일하게 그리면서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될 수도 있다”며 “특정 장면만 포르노처럼 편집돼 유통될 수 있는 지금의 매체 환경을 고려하면, 전체적으로는 비판적 맥락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맥락이 있으니 다 괜찮다’고 묻어버리고 갈 수 없다. 굳이 익숙한 폭력을 디테일하고 끔찍하며, 현실적이게 다뤄야 하는 이유가 있었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황 평론가는 폭력을 재현하는 윤리에 관한 논의가 이미 많이 이루어졌으나, 넷플릭스에서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가 승승장구하면서 논의가 후퇴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넷플릭스에서 (폭력적인) 작품들이 ‘수출 상품’으로서 큰 성과를 거두면서 작품의 도덕성을 이야기하는 윤리적 담론들이 국익 이데올로기에 가려져 무색해지거나, 무의미한 것처럼 후퇴하고 있다”며 “한국은 문화적 인식이 나름대로 선진적인 국가다. 작품의 흥행만 볼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품질을 높일 필요가 있다. ‘외국에서 잘 나간다’는 사실이 윤리적 지적에 면피가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지금 우리 학교는>은 청소년 임신 문제, 임대 아파트나 기초생활수급자 학생을 둘러싼 차별 문제, 학교 폭력 문제 제기를 묵살하려는 학교 문제 등을 다루고 있으나 피상적인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보인다. 정작 주인공인 남온조(박지후), 이청산(윤찬영), 최남라(조이현), 이수혁 등은 학교 안의 폭력과 계급 문제에서 자유로운 캐릭터들로, 좀비를 피해 살아남는 데 열중한다.


오경민 기자 5km@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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