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찬, 창피"..21일 휴관 공지에 시민들 비판 쇄도

박정훈 입력 2022. 5. 19. 18:42 수정 2022. 5. 1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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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정상회담 공식 만찬 장소로 결정.. "유물 있는 곳에서 식사, 국격 떨어트리는 일"

[박정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외빈 초청만찬에 포스탱 아르샹쥬 투아데라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 건배하고 있다.
ⓒ 연합뉴스
 
21일 한미 정상회담 뒤 윤석열 대통령이 주최하는 공식 만찬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릴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갑자기 임시휴무를 발표하면서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하는 한편, 국보급 유물이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대규모 인원이 모여 만찬을 한다는 사실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식 만찬에는 대통령실 관계자와 정부 인사, 10대 그룹 총수 등 50명이 함께 하고, 미국 측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핵심 수행원을 비롯 30명 가량이 참석한다. 청와대 영빈관과 달리 평소 대규모 만찬을 열지 않았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안전하게 행사를 치를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시민들 불편 어쩌나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과 주변 용산미군기지. 붉은 건물은 드래곤힐 호텔.
ⓒ 권우성
지난 18일 국립중앙박물관은 '임시 휴관 안내'를 공지하며 "2022.5.21.(토) '국가중요행사'로인해 기획전시실을 제외한 모든 시설에 대한 임시 휴관을 실시할 예정이다. 관람객 여러분께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하다. 거듭 양해 부탁드린다"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이 열리는 기획전시실은 오후 2시 30분 예매 분까지만 입장이 가능하고, 용극장 '반쪽이전'도 오후 2시 예매 분까지만 입장 가능하다. 상설전시관에서 개최 중인 특별전 '아스테가,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역시 운영하지 않는다.

한미정상회담은 지난달 말에 일정이 확정됐음에도, 정상회담 3일 전이 되어서야 만찬 장소가 알려지고 국립중앙박물관 측이 갑자기 휴관 공지를 낸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크게 반발했다. 온라인 상에서는 국민의 문화생활을 침해하고 주말 나들이 계획을 어그러뜨렸다는 지적이 쇄도했고, 실제로 "몇 달 전에 예매한 전시가 멋대로 변경됐다"라는 글이 '일정 변경 공지' 문자 캡처 이미지와 함께 올라오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는 국민에게 돌려주고 국중박(국립중앙박물관)을 빼앗는다"라는 비판과 더불어 국립중앙박물관을 왜 '식당'처럼 쓰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최근 이건희 기념전과 아스테가 특별전으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던 장소인만큼, 만찬 장소를 시민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정해 '민폐'를 끼친다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김윤옥 만찬' 때도 논란... "유물 앞에 놓고 만찬, 부적절"
 
▲ <핵안보>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배우자들 환영만찬 2012년 3월 26일 김윤옥 여사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배우자 만찬 행사에서 만찬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립중앙박물관에서의 만찬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두 차례 열렸다. 최재천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0년 11월 11일 G20 정상회의의 만찬 장소로 국립중앙박물관을 이용했으며, 이날 박물관을 대표하는 명품 20건이 만찬장과 으뜸홀에 전시됐다. 2012년 3월 26일에는 김윤옥 여사가 기획전시실에서 핵안보정상회의 참석 배우자들과 만찬을 열었다. 이때는 국보와 보물 8건이 전시됐다.

특히 김 여사가 연 만찬의 경우, 테이블 뒤로 유물들이 쫙 깔려져 있는 사진이 공개돼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일반인은 사진도 못 찍고 음식물 반입도 어려운 곳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는 유물을 마치 '장식품'처럼 사용하는 게 올바르냐는 지적도 나왔다.

당시 비판 여론에 대해 정부나 국립중앙박물관 측에서는 '외국 미술관 박물관에서도 만찬을 한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외국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경우 유물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 '전시실'이 아닌 곳에 만찬 공간을 따로 마련해놓기도 한다. 윤 대통령이 주최할 만찬은 상설전시관 내 '역사의 길'에서 열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곳은 로비와 전시실 사이로 뻗은 구역이라 국보급 문화재 옆에서 만찬이 이뤄지는 셈이 된다.

더 큰 문제는 국립중앙박물관은 상시적으로 만찬이 이뤄지는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온도와 습도에 영향 받는 문화재의 관리를 충분히 담보할 수 있는가, 나아가 외빈들에게 적절한 수준의 음식이 공급될 수 있는가 등에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 정책연구소장은 "박물관 외부면 상관 없다. 그런데 유물이 있는 전시실 내 만찬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유물이 쌓여있는 곳에서 사람들 모아놓고 술과 음식을 먹겠다는 것 아니냐"라며 "유물의 안전은 물론 한국의 문화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황 소장은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곳의 격이 있지 않나. 거기서 만찬을 여는 게 격이 맞는 일인지, 또 일반적인 일인지 묻고 싶다. 창피한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도시공학 전문가인 김진애 전 열린민주당 의원은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식당이 있긴 하지만, 바깥에 따로 있지 않나. 오래된 유물 중에는 손상되기 쉬운 것들도 많아서 굉장히 조심해서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박물관 자체가 외빈이 와서 상대방 역사와 문화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곳인데 그곳에서 식사를 하게 만드는 것이 적절한가. '국격'을 우리 스스로 떨어트리는 게 아닌가 싶다"라고 지적했다.

김 전 의원은 이어 "이번 만찬을 계기로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박물관에서 만찬을 열자고 할까봐 걱정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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