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뀌면 또 엎어질 텐데"..산업부 떠나는 '탈원전' 관료들

고은결 입력 2022. 1. 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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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에너지 전환' 정책 관련 공직자 잇따라 퇴직
'1급' 이례적 기업행, '행정 주축' 과장급 이탈
차기 정부서 불이익·정책 연속성 회의감 작용
월성 수사·변화무쌍 에너지기본계획이 전례

【세종=뉴시스】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2019.09.03. ppkjm@newsis.com

[세종=뉴시스] 고은결 기자 = 최근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에너지 전환' 정책과 관련 있는 공직자들이 잇따라 사표를 던졌다. 공무원의 기업행 사례는 인사 적체, 민간의 수요 등으로 부쩍 늘고 있다.

그러나 국가 대계인 에너지 정책을 이끈 이들이 정권 말 퇴직을 택한 속사정은 더 복잡할 것이란 해석이 많다. 현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무리한 정책 설계에 애썼지만, 정권 교체 시 '보복성 감사' 등 불똥이 튀거나 정책 연속성에 대한 회의감이 컸을 것이란 분석이다.

20일 관가에 따르면 최근 산업부 관료들은 잇따라 민간기업으로 향했다. 특히 현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 기여했던 이들의 퇴직은 내부를 술렁이게 했다. 새해 초 퇴직한 김정일 전 산업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은 국내 주요 그룹 중 한 곳에 임원으로 옮길 예정이다. 보통 산업부 1급 실장의 다음 코스는 차관 승진이 아닌 이상 산하기관장이 의례적인데, 대기업으로 갔다는 점에서 눈길을 모았다.

김 전 실장은 지난해 초부터 퇴직 직전에는 통상당국에 있었지만, 사실 현 정부에서 에너지 전환과 관련한 업무를 가장 많이 맡았다. 그는 지난 2016년 5월부터 2017년 12월까지는 에너지자원정책과 과장, 2019년 4월부터 같은 해 10월까지는 신재생에너지정책단장을 맡았다. 2019년 10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는 1년 넘게 에너지혁신정책관을 역임했다.

최근 산업부 에너지실에서 에너지 전환을 맡는 과에 있던 과장급 공무원의 민간기업행도 부처 내에서 큰 아쉬움을 자아냈다. 해당 공무원은 정부의 에너지 전환계획에 따른 주요 기본계획을 설계한 핵심 인력이기도 했다.

업계와 늘 소통하는 산업부 공무원의 기업행은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정부부처 중 인사 적체가 심한 편인 산업부는 '청'급 조직보다 서기관, 과장의 최저 기수가 4~5년은 차이가 난다. 때문에 승진에서 제외되면 정년 이전에 용퇴하는 고시 출신 인원이 상당하다.

그러나 산업부의 인사 적체, 민간의 러브콜 등만으로 에너지 정책을 이끈 핵심 인력이 떠난 상황을 설명하는 건 부족하는게 내부의 진단이다.

산업부 에너지산업실은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엮여 쉴 새 없는 국회, 언론 대응 등으로 몸살을 앓는 곳이다. 그만큼 부처 내에서 인정받는 핵심 인력도 포진했다. 잡음은 있었지만, 정권 말에도 에너지 차관직이 신설되며 조직 몸집까지 더 불어났다.

여권의 대선주자가 산업부의 에너지실을 떼어내 '기후에너지부'를 신설하자는 주장이 나오자, 산업부가 주요 정체성인 '에너지'를 지켜내기 위해 향후 차기 정부 인수위원회에 조직 개편에 반대하는 의견을 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현 정부의 키워드 중 하나인 '탈원전' 등 정책 기조를 맞추기 위해 애쓴 게 오히려 정권 말에 담당 공무원들의 부담감은 극에 달했다.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으로 산업부 공무원이 재판을 받는 것처럼, 정책 방향에 발맞춘 게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우려했을 것이란 목소리가 많다.

한 공무원은 "'윗선'의 무리한 방향성을 따른 공무원이 피해를 보는 걸 직접 겪었으니 추후 정권이 바뀌면 정책 설계 과정 등에 대해 감사 등을 받거나, 정책 방향을 뒤집어야 할 가능성 등이 큰 부담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곤죽이 된 정책 일관성도 회의감을 키웠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분야 최상위 법정계획은 5년 주기로 수립하는 '에너지 기본계획'이다. 에너지 기본계획에는 향후 20년간의 에너지 수요와 공급 전망, 관련 기술 개발 등이 담긴다. 하위 계획만 전력수급기본계획, 신재생에너지기본계획 등 10여개다.

국가 에너지 대계의 청사진인 만큼 연속성이 관건이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뿌리부터 흔들렸다. 이명박 정부의 1차 에너지기본계획(2008~2030)은 원전 비중을 2006년 26%에서 2030년 41%로 늘리기로 했다.

박근혜 정부 때 발표한 2차 에너지기본계획(2014∼2035년)은 원전 비중을 29%까지 낮췄다. 현 정부에서 확정된 3차 에너지기본계획(2019∼2040년)은 원전 비중을 명시하지 않고 신규 원전 건설과 노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또 다른 공무원은 "과장급 이상 공직자가 기업으로 가는 건 연봉 문제는 아니다"라며 "아무리 정부 기조에 따라 일하는 게 공무원의 숙명이라도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데 대한 답답함이 없겠느냐"고 토로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ke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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