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靑 등산로 막은 헌재..알고보니 헌재 땅도 아니었다

허정원, 이수민 입력 2022. 6. 23. 19:45 수정 2022. 6. 2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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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개방 이후 시민들이 등산로로 애용했던 종로구 삼청로 일부가 헌법재판소장 측 요청으로 폐쇄된 것과 관련, 국민의 불만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폐쇄를 요청했지만 정작 도로는 헌재 소유가 아닌 데다 이 부근은 토지이용계획 상 주민 일상생활의 쾌적성·안정성을 확보하도록 한 ‘공공공지(公共空地)’인 것으로 확인돼서다. 헌재 측은 지난 도로 폐쇄 이후 21일째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공관 앞 막은 헌재, 주인 아니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23일 법원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보면 지난 2일부터 폐쇄된 헌재소장 공관 인근의 삼청로 일부는 토지 소유자가 ‘서울특별시 종로구청’으로 돼 있다. 큰길에서 북악산 등산로 방향으로 꺾어져 들어오면서 가장 처음 만나는 삼청동 117-1번지(77.6㎡)와 145-27번지(166.9㎡)가 대상이다.

앞서 헌재 측은 공관 사생활 보호와 소음 등을 이유로 청와대 개방과 함께 열린 공관 앞 등산로를 다시 폐쇄해줄 것을 문화재청에 요청했다. 문화재청은 “토지 소유권이 헌재 측에 있다”며 요구를 들어줬지만 정작 도로 소유자는 헌재가 아닌 구청인 것으로 확인됐다. 법원 등기부등본을 보면 이 길을 따라 100여m 들어가야 나오는 헌재소장 공관 입구 근처에 이르러서야 도로 관리청이 헌재로 바뀐다. 이마저도 소유자는 헌재가 아닌 국가다.

이번에 막힌 길은 지난 5월 청와대 개방 이후 수십 년 만에 통행이 허용됐고 입구엔 ‘북악산 한양도성 안내소’가 설치됐었다. 그러나 길이 다시 폐쇄되면서 안내소는 춘추관으로 옮겼고, 현재는 출입금지를 알리는 현수막과 ‘통제구역’이라고 쓰인 울타리만 남았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 길을 이용해 북악산을 오간 등산객은 지난달에만 평일 약 1000명, 주말 3000명에 달했다. 그러나 길이 막힌 지난 2일부터 등산객들은 길이 400~500m를 돌아 다른 등산로를 이용하고 있다.


폐쇄된 삼청로 일대, 시민 위한 ‘공공공지’


헌재 공관 측의 요청으로 폐쇄된 금융연수원 앞 삼청로 등산로 입구. 이수민 기자.
지적도(地籍圖)상 이번에 폐쇄된 도로 주변이 공공공지인데도 통행을 제한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국토교통부령인 ‘도시·군 계획시설의 결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 제59조에 따르면 공공공지란 ‘시·군내의 주요시설물 또는 환경의 보호, 경관의 유지, 재해대책, 보행자 통행과 주민의 일시적 휴식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설치하는 시설’로 돼 있다.

헌재소장 공관을 비롯해 일대에 밀집한 국무총리 공관 등을 보호해야 할 주요시설물로 본다 하더라도 ‘보행자 통행’과 ‘주민 휴식공간 확보’가 명시된 길을 막는 것은 법령 취지에서 벗어난다는 지적을 면키 어려운 대목이다. 같은 법령 제61조는 공공공지의 구조 및 설치기준에 대해 ‘주민의 접근이 쉬운 개방된 구조로 설치하고, 일상생활에 있어 쾌적성과 안전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실도 옮겼는데…권위적 태도” 비판


청와대 개방 44일째인 22일 오후 청와대 대정원에서 ‘100만 번째 관람객’ 기념행사 기념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뉴스1]
시민들은 “대통령실도 용산으로 이전한 마당에 등산객들이 애용하던 길을 다시 막는 건 권위적인 태도”라고 비판한다. 삼청로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처음에 길이 막혔을 때 사람들이 ‘왜 못 가냐’, ‘그럴 거면 안내데스크는 왜 설치했냐’고 싸우는 상태가 며칠이나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삼청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B씨는 “길 폐쇄 전 주말 오후 3시면 사람이 바글바글했는데 이제 아무도 없다”며 “5월 한 달은 행복했는데 등산로라도 다시 개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애초부터 이 길은 등산로가 아니었기 때문에 원래대로 다시 폐쇄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관할 지자체인 서울시가 이 일대 보도 폭 확장·횡단보도 추가 등 보행 편의를 위한 용역에 착수한 것을 고려하면 도로 폐쇄는 상반된 조치라는 평가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전날 오후 1시 기준 청와대를 찾은 관람객이 100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청와대 부근을 찾는 시민이 늘었다.

한편 헌재 측은 이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은 채 등산로 폐쇄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헌재 관계자는 “공식적인 입장은 없는 상태”라면서도 “등산로 개방·폐쇄 문제에 대해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허정원ㆍ이수민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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