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뒷전으로 밀려나나요"..'여가부 폐지론'에 소외된 목소리
[경향신문]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7일 “여성가족부 폐지” 7글자를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대선 후보와 각 캠프에서는 존폐론과 개편론 등 여가부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 같은 정치권의 움직임을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이들이 있다. 한부모가정이나 저소득층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 등 주로 여가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이들이 그들이다. 정부조직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찬반 목소리는 드높지만 정작 논의 대상인 부처 업무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당사자들은 소외돼 있는 것이다.
■“우리 같은 사람은 어떡하나요”
이지혜씨(가명)는 4년 전 미혼모자 가족복지시설에서 아이를 출산했다. 남자친구가 출산에 반대하면서 혼자 시설에 들어간 이씨는 “당시엔 갈 곳이 있다는 게 천만다행이었다”고 했다. 출산 이후엔 시설에서 연계한 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통해 전산회계 자격증을 취득했다. 많지는 않지만 매달 10만원의 양육비도 정부로부터 지원받았다. 잊을 만하면 정치권에서 불거지는 여가부 폐지론을 보면서 이씨는 “마음이 착잡하다”고 했다. 그는 “대책 없이 저렇게 폐지한다고만 하면 우리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하나”라며 “다른 부처로 업무가 편입되면 한부모가정 정책은 뒷전으로 밀려나진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폐지를 할 거라면, 그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선 누구도 명확히 말을 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한부모 가족은 153만3000가구 전체 가구의 약 7.1%를 차지하고 있다. 한부모 가족 가운데 이씨와 같이 정부 지원 대상인 저소득 한부모가족은 18만6000가구이며, 아동 양육비 지원 대상 아동은 약 19만명으로 추산된다.
성폭력 피해 청소년 구호활동을 하는 김지희씨도 비슷한 우려를 표했다. 김씨는 “청소년상담1388, 사이버 아웃리치(디지털 성범죄 예방 활동),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 생리대 지원 등 여가부에서 지원하는 청소년 보호 사업이 꽤 많다”며 “역할이 한정적이란 비판은 있을 수 있지만, 비판 아닌 비난이 쏟아지는 상황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교실에서 ‘여가부는 꼴페미 부서’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상황”이라면서 “정부 지원을 받는 아이들은 낙인이 찍힐까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있고 없고’ 논쟁이 빠뜨린 것들
‘여성만을 위한 부처’란 오해와 달리 여가부 예산의 대부분은 가족 돌봄과 청소년 보호에 쓰인다. 정부 전체 예산의 0.2% 수준에 불과한 2021년 여가부 예산 1조2325억원 중 7375억원(59.8%)이 한부모가족 아동양육 지원·아이돌봄서비스 등 가족 돌봄 사업에 쓰이고 있다. 2422억원(19.6%)은 청소년 사회안전망 강화 등 청소년 보호 사업에 투입됐다. 이외에도 디지털 성범죄·가정폭력 예방 및 피해자 지원 사업에 1234억원(10.0%), 경력단절여성 취업 지원 등 여성 관련 사업에 982억원(7.9%)의 예산이 쓰였다.
여가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이들 사이에서도 ‘여가부 폐지론’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린다. 여성계 일각에서도 예산과 권한이 한정된 여가부가 여성 권익 향상과 성평등 실현이라는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하지만 그 역할에 대한 정확한 인지와 정책 방향성, 이해당사자 의견 수렴 없이 ‘무용론’을 주장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여가부 폐지에 찬성한다는 강민서 양육비해결모임 대표는 “여가부가 양육비 미지급 문제와 관련해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의지가 없어 그 역할에 의문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다만 여성 관련 문제를 다루는 전문 부처를 새로 둬야 한다고 짚었다. 강 대표는 “실질적인 양육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보다 단단한 기관이 생겨 소송 없이 아이들 양육에만 힘쓸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를 바란다”며 “대선 후보들이 내놓은 관련 공약이 한부모 가정에게 희망 고문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여가부 폐지를 반대하는 심연우 가정폭력당사자네트워크 대표는 “기존에 갖고 있던 정책·기능·예산의 확장 등에 대한 논의는 배제하고 단순 폐지를 주장하는 건 폭력적 사고”라며 “피해 당사자인 여성들의 목소리가 언어화돼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처 명칭 수정은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여가부 기능은 확장돼야 한다. 가정폭력 의제를 구조적으로 다루는 부서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유진·박하얀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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