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보험사기꾼이 늘고 있다.. '쿵' 하면 우르르 내리는 청년 마네킹들 [사모당]

최재훈 기자 2022. 5. 26.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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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 알바'로 시작하는 자동차보험 사기
20대 보험사기 매년 증가.. 83%가 車보험
"쉽게 버는 보험사기, '마약'만큼 중독성 강해"
#사기, 모르면 당한다
작년 3월 회전 교차로에서 차로변경하는 차량을 고의로 들이받아 합의금을 뜯어낸 일당의 블랙박스 녹화 장면. /경남경찰청 제공

21차례 사고... 365일 중 191일 한의원 입원

택시기사 A씨는 2019년 8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1년 동안 21차례 교통사고를 냈다. 21건 중 17건이 좌회전 차로가 2개 이상인 교차로에서 일어났고, 차로를 변경하거나 이탈하는 차량과 부딪혔다. 차량 파손 부위도 늘 같은 곳이었다. 가벼운 부상인데도 1년 365일 중 191일을 같은 한의원에 입원했다. 1년 동안 보험금만 1억원 가까이 타냈다. 한 달에 두 번씩 사고와 입원을 반복했던 그의 행각은 결국 ‘보험 사기’로 드러났다.

지난달 29일 재판정에 선 그는 “교통사고로 치료도 받았고, 보험금을 탄 것도 맞지만 고의로 사고를 낸 것은 아니다”라고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인정하지 않았다. A씨에게 징역 1년2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판결 이유는 이렇다. 유사한 형태의 사고가 반복된 데 대해 재판부는 운전경력이 많은 A씨가 보통 많은 차량이 좌회전할 때 유도 차선을 벗어나거나 교차로를 벗어난 직후 차로를 변경하는 점 등을 이용해 고의적으로 사고를 일으켰다고 판단했다. 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블랙박스 감정 결과, 보통 운전자들은 시야에 사물이 나타나면 이를 인지하고 반응하기까지 0.8초가 걸리는데, A씨는 그보다 느린 1.3~2.4초가 걸렸다. 재판부는 A씨가 사고를 미리 예상했기에 상대적으로 느리게 반응했다고 봤다.

특히 A씨는 사고 때마다 크게 다치지 않았는데도 같은 한의원에 입원하고, 입원 기간 중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거나 택시 영업을 한 기록도 있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보험사기 범행은 다수의 선량한 보험가입자들에게 피해를 전가하게 되고 타인의 생명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가능성도 있어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고 했다.

보험사기 10명 중 6명, 접근 쉬운 ‘車보험 사기’

지난 3월 한 20대 청년이 서울의 한 보험영업소 앞을 지나가고 있는 모습./뉴시스

보험 사기 범죄의 90% 이상이 손해보험, 그 중에서도 자동차보험 사기가 50~60%를 차지한다. 보험업계에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누구나 유혹에 넘어갈 수 있는 게 자동차보험 사기라고 말한다. 때로는 병원이, 때로는 정비공장이 허위·과장 견적으로 범행을 부추기기도 한다.

금융감독원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자동차보험 사기로 적발된 사람은 5만8367명으로, 전체 9만7629명의 59.8%에 이른다. 적발 금액도 4198억8500만원으로, 전체 9434억원의 44.5%를 차지한다. 최근 3년간 집계를 보면 자동차보험 사기 적발 인원은 2019년 5만3501명에서 2020년 5만6418명, 2021년 5만8367명으로 늘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간단한 지동차 접촉사고를 시작으로 인명피해 사고, 살인 등 극단적 범죄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마약같은 중독성을 가진 게 바로 보험 사기 범죄”라면서 “보험금은 눈 먼 돈이라고 생각하는 시민들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알바’로 시작해 보험사기 늪에 빠져드는 20대

대구지검은 지난 23일 1년3개월여 동안 26차례 교통사고를 내 보험금 1억2000만원을 받아낸 C씨를 구속 기소하고, 공범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또 범행에 가담한 추가 공범 12명을 찾아내 조사 중이다. 대부분 직업 없는 20대인 이들은 주로 대구지역에서 4~5명씩 차를 몰고 다니면서 차로를 변경하는 차량 앞에 끼어들어 고의 사고를 낸 뒤 합의금을 받아낸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중 일부는 SNS나 인터넷 게시판 등의 광고를 통해 만났다고 한다. 앞서 경찰이 3개월여 동안 수사해 2차례 ‘혐의 없음’ 결정을 내렸던 이 사건은 검찰의 재수사로 전모가 드러났다.

자료=금융감독원

최근 아르바이트로 보험 사기에 가담하는 20대가 늘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보험업계는 지적한다. 지난해 적발된 보험 사기범의 연령별 비중을 보면, 50대가 23%로 가장 많았고, 60대 이상 19.8%, 40대 19.4%, 20대 19% 등의 순이었다. 다만 50대는 3년 전 25.9%에서 낮아졌지만, 20대는 15%에서 매년 늘었다. 20대의 경우 적발된 보험사기 중 83.1%가 자동차보험 사기인 것으로 조사됐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20대들이 보험 사기에 가담하는 시작점은 이른바 ‘마네킹’으로 동원되는 것. 고의 접촉사고 차량에 동승자로 탔다가 몸이 아프다고 속여 합의금을 뜯어내는 일을 거드는 것이다. 대형보험사 보험사기특별조사팀(SIU) 조사관은 “SNS나 인터넷 카페 등에서 ‘단기 고액 알바’라고 속여 광고를 낸 뒤 공범을 모집하는 사례는 종종 볼 수 있다”면서 “취업난을 겪는 젊은이들이 아르바이트처럼 생각하고 쉽게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한번 범행에 성공하면 더 큰 금액을 노리고 더 위험한 범죄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초기부터 범죄의 싹을 자를 수 있는 사회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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