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을 어려워하는 어른과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건축가 이민, '건축 그림책' 번역 출간

윤희일 선임기자 2022. 3. 2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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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어린이와 어른이 건축에 대해 함께 생각해볼 수 있도록 구성된 그림책 <건축가의 꿈을 이룬 소녀, 리나 보 바르디>. 이유출판 제공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보면서 건축에 대해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그림책이 건축가의 손에 의해 번역돼 나왔다.

책 제목은 <건축가의 꿈을 이룬 소녀, 리나 보 바르디(Lina Bo Bardi)>(이유출판)

건축을 모르는 이, 건축은 어려운 것이라고 여기는 이, 건축가가 추구하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 이런 사람들이 그림과 함께 슬슬 읽어가면 건축과 건축가의 세계, 건축과 건축가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소녀, 건축가의 꿈을 이루다.

크고 웅장한 것을 좋아했던 소녀 리나. 1914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그는 고대의 아름다운 예술품에 둘러싸여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 리나는 사람들로 가득 찬 광장이나 장사꾼 등 이웃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즐겨 그렸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리나는 커서 건축가가 되고 싶어 했다. 로마 대학에서 건축 공부를 마친 그는 밀라노에 사무실을 차렸다.

하지만 곧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건축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건축 잡지에 글과 그림을 기고하거나, 편집하는 일을 했다. 이후 로마로 돌아온 리나는 미술 평론가이자 예술품 수집가인 피에트로 바르디와 결혼했다. 이탈리아 저항 운동에 가담한 이들 부부는 전후 이탈리아에서의 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고 브라질로 이민을 간다.

그래서 브리질은 리나의 두 번째 고향이 되었다.

1946년 리우데자네이루에 정착한 리나는 건축가로서 많은 기회와 영감을 준 브라질에서 제2의 삶을 시작했다. 남편과 함께 잡지를 창간해 이상적인 주거 공간을 향한 자신의 철학을 전파했다.

그러던 리나는 브라질에서 건축가로서의 재능을 펼칠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된다. 남편이 운영을 맡게 된 상파울루미술관을 설계하게 된 것이다.

이 때 리나는 자신의 집을 지었다. 이 집이 리나의 첫 번째 작품인 ‘유리의 집’이다. 이곳은 그들의 주택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열린 공간이기도 했다. 주변 환경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거실 영역의 개방감을 살렸다. 은둔과 휴식을 위한 침실의 영역은 낮과 밤의 공간을 드라마틱하게 대비시켰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경험을 공유하고,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으며 신선한 에너지를 충전하곤 했다.

리나는 ‘문화적 속물근성’을 싫어한 건축가였다. 리나가 설계한 대표적인 건축물 상파울루미술관은 그가 주장하는 ‘가난한 건축’에 기초를 두고 있다. 가난한 건축이란, 가난해서 어쩔 도리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불필요한 생각과 물질을 제거하면, 그 결핍 상태가 고유의 미학적 완성도에 이르는 건축을 의미한다.

이런 개념은 상파울루 미술관에서 표면을 드러낸 콘크리트, 석회, 돌과 산업용 고무 바닥재, 강화유리 등의 재료로 구체화됐다.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저렴한 소재는 그만큼 풍족하게 사용할 수 있는데, 그동안 우리가 간과하던 평범한 재료의 가치를 더 잘 드러내 보여준다.

리나는 미술관 아래 1층을 완전히 비운 상태로 두어 커다란 광장을 만들었는데, 이곳에서 사람들은 주말마다 벼룩시장을 열고 대규모 집회를 여는 등 다양한 방식의 소통 공간으로 사용했다. 이로써 미술관은 시민들 생활 한복판에 들어와 일상과 뒤섞이는 장소가 되었다.

그는 모든 이들이 함께 즐기는 열린 공간을 꿈꿨다.

쎄시 폼파이아는 옛 공장을 리모델링한 ‘복합문화센터’다. 리나가 이 작업을 맡기 전까지 사람들은 이 공장을 철거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이곳을 방문하여 아이들이 뛰어놀고 샌드위치를 만들며 함께 어울려 신나게 즐기는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옛 공장은 이미 주민들이 훌륭하게 활용하고 있으므로 그대로 두기로 하고 내부만 고치기로 했다.

가구를 새로 놓고, 칸막이를 없애고, 표지판을 설치하여 실내에 ‘자연경관’을 만들어냈다. 실내 공간에 강이 흐르게 하는가 하면 한쪽에는 벽난로를 설치했다. 마을 옆에는 거대한 콘크리트 타워로 이루어진 성을 지었다. 타워에는 수영장과 스포츠 경기장을 만들어 서로 경쟁하지 않고 함께 즐기기 위한 공간이 되도록 했다.

두 개의 타워는 고가다리로 연결해 공중에 떠서 움직이도록 흥미로운 경로를 만들어냈다.

쎄시 폼파이아를 통해 리나는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 공간을 모아 모두를 위한 열린 영토를 실현했다. 건축가를 소망하던 소녀 리나는 이렇게 어릴 적 꿈꾸던 모험의 세계를 구현하고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위대한 여성 건축가가 되었다.

■책을 쓴 사람, 책을 옮긴 사람

이 책을 쓰고 책에 나오는 그림을 그린 사람은 앙헬라 레온이다. 그는 스페인에서 태어났다. 마드리드에서 제품 디자인을 공부한 뒤 브라질로 이주하여 여러 지역 예술 기관에서 추진하는 여러가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때의 경험으로 도시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고, 브라질에서 활동한 세계적인 여성 건축가 리나의 생애를 소개하는 그림책을 쓰고 그렸다. 현재 그는 여러 잡지에서 일러스트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에 책을 국내에 번역, 출간한 이민은 건축가다. 한국과 이탈리아에서 건축을 공부한 뒤 나폴리의 유명 건축사무소 등에서 실무를 익혔다. 1997년 이손건축을 설립하고, 어린이 교육시설, 주거, 미술관 등을 설계해왔다. 1996년 베니스비엔날레, 2002년 광주비엔날레에 출품했고, 김수근 문화상,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했다. 현재 대전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앙헬라 레온의 원작은 2021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회, 브라질국립아동청소년도서재단 등으로부터 상을 받았고, 도쿄아트북페어에서 우수도서로 선정된 바 있다.

책을 번역한 건축가 이민은 “건축을 꿈꾸는 이들에겐 희망을 부추기고, 건축을 어렵게 생각하는 이들에겐 문턱을 좀 낮추고, 건축을 쉽게 보는 이들에겐 다시 생각해보게 하고, 건축을 건축가의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서는 건축을 빼앗고 싶어 이 책을 냈다”고 말했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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