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사달인 괴산서장, 증평 할머니 살인사건에 '망신']

박재원 입력 2016. 5. 31.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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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뉴시스】박재원 기자 = 살인사건을 병사로 처리해 부실수사 논란의 중심에 선 충북 괴산경찰서 오승진 서장은 경찰 조직에서 '변사' 전문가로 통한다.

세월호 소유주 유병언 변사 사건 후 경찰은 '한 사람의 억울한 죽음도 없도록 하겠다'며 변사사건 처리 시스템을 개선했는데, 오 서장은 이 작업을 이끈 공로로 승진해 괴산서로 부임했다.

당시 전남 순천 매실밭에서 반백골 상태로 발견된 시신이 유병언이란 사실을 40여 일 동안 몰라 부실수사 논란이 일자 경찰의 변사사건 처리 매뉴얼 전체를 뜯어고친 일대 혁신이었다.

오 서장이 지휘봉을 잡은 괴산서에서 어이없게도 지난 15일(추정) 발생한 '증평 80대 할머니 살인사건'을 단순 자연사로 종결한 것이다.

살인을 병사로 처리한 경찰의 부실수사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되고 있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유족으로부터 범행 과정이 찍힌 CCTV 메모리칩을 넘겨 받았으나, 범죄 혐의점이 없다고 판단해 이를 확인하지 않고 다시 돌려준 점이다.

결국 장례를 마친 유족이 영상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단순 병사가 아닌 살인사건으로 드러났다.

더 큰 문제는 부실한 검안(시체를 훼손하지 않고 외부만 검사) 과정이다.

증평의 한 병원으로 옮겨진 시신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부패돼 육안으로 사인을 판단하는 게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병원에선 사망 원인은 '미상', 사망 종류는 '병사'로 판단했다.

병사는 평소 앓고 있던 지병으로 숨졌다는 의미인데 숨진 할머니는 생전에 이 병원을 다니지도 않았다.

진료기록도 없이 불충분한 정보만 가지고 병사로 판단했는데 경찰은 아무런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이 병원은 뉴시스 취재 과정에서 유족들 입맛에 맞게 검안서를 자유자재로 써주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도 이 같은 사실을 모를리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술 더 떠 현장에 있던 경찰관은 '일 크게 만들지 말라'는 식으로 검안서에 '자연사'라는 문구를 기록해 달라고 요청한 의혹도 받고 있다.

사인이 불분명한 시신은 부검이 우선이지만, 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유족이 부검을 원치 않는다. 타살 혐의점도 없어 의심이 가지 않는다'며 단순 자연사로 종결했다.

반면 사건 현장에 출동한 검시관은 사인을 '불상'으로 기록해 부검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사건 현장에는 형사팀 직원만 나갔고 형사팀장은 나가지 않아 변사사건 매뉴얼도 지키지 않았다. 관련 매뉴얼에는 형사(강력) 팀장은 모든 변사사건에 출동하도록 규정돼 있다.

억울한 죽음을 만들지 않겠다고 오 서장이 만든 매뉴얼이 정작 직속 부하직원들에게는 전혀 먹히질 않았다.

이번 사건으로 경찰 신뢰도 추락은 물론 변사사건의 전문가로 자부하던 오 서장도 체면을 구겼다.

경찰은 살인사건 피의자 신모(58) 씨를 6월 1일 살인 혐의 등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pjw@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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