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플러스] 유흥업소 여종업원 '의문사'..증언으로 본 사건의 재구성

이호진 2016. 1. 18.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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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해 말 전남 여수의 한 유흥업소에서 30대 여종업원이 숨졌습니다. 경찰이 최초로 판단한 사인은 과음으로 인한 질식사였습니다. 하지만 이 여성은 업주로부터 상습 폭행을 당했고 사건 당일에 쓰러지기 직전까지 심하게 매를 맞았다는 진술을 저희 취재팀이 확보했습니다.

또 문제가 되는 것이 있는데요. 숨진 여성을 포함한 업소 여성들은 성매수 장부를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바로 수사기관 관계자의 명단이 들어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여성의 의문의 죽음 뒤에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세력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탐사플러스 취재팀은 우선 의문투성이인 이 사건을 재구성해봤습니다.

이호진 기자입니다.

[기자]

전남 여수의 한 유흥업소.

지난해 11월 20일 새벽 0시 40분.

이곳에서 여자 실장 34살 A씨가 쓰러진 채 발견됐습니다.

입과 코는 토사물로 막힌 상태였습니다.

[임은희/출동 구급대원 : 흔한 경우는 아니죠. 그렇죠, 구토물이 코로 나오는 경우는 많지 않죠. 그런데 코 밖으로 나올 정도로 가득 차 있었어요. 구토물이.]

심폐 소생술로 맥박은 돌아왔지만 뇌사에 빠졌고, A씨는 병원에 실려온 지 20일 만에 숨졌습니다.

A씨를 관리하던 여성 업주 42살 박모 씨는 경찰 조사에서 "만취 상태로 먹은 치킨이 목에 걸려 질식한 것 같다"고 진술했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남자 종업원 두 명의 진술도 박 씨와 일치했습니다.

유족들의 수사 의뢰에도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경찰의 추가 수사는 이뤄지질 않았고 그렇게 질식사로 굳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나흘 뒤 사건은 반전됩니다.

A씨와 함께 일하던 동료 9명이 사건 당일 A씨가 심하게 맞았다고 밝히면서부터입니다.

[김선관 집행위원장/종업원 사망사건 대책위 : 이 여성들은 자기들이 피해자가 지속적으로 폭행당하는 내용을 봐왔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용기를 낸 겁니다.)]

이들의 기자회견 이후 전남지방경찰청은 관련 수사를 여수 경찰에서 광역수사대로 넘겼습니다.

그런데 수사중에 뜻밖의 사실이 드러납니다.

광수대에서 이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 2명이 이번 사건이 발생한 유흥업소에서 성매수를 한 것으로 나타난 겁니다.

해경과 시청 공무원 등의 성매수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이후 경찰은 A씨 동료의 진술 등을 토대로 업주 박 씨에 대해 폭행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기각했습니다.

증거 부족이 이유였습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의 본질인 폭행치사를 뺀 나머지 상습폭행 등의 혐의로 영장을 다시 신청했고 결국 구속됐습니다.

초동 수사가 부실했다는 지적에, 여수 경찰은 "3개 수사팀을 투입해 최선을 다했다"고 밝혔습니다.

[여수경찰서 관계자 : 그러면, 그 많은 정성 들여서 우리 수사관 16명이 달려들어서 했던 것은 도대체 뭐가 되냐고.]

숨진 A씨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취재진이 당시 상황을 다시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11월 19일 밤. A씨에 대한 업주 박씨의 폭행은 평소와 다름없이 이어졌습니다.

[동료 여성 : 한 번 때린 게, 가만 있네, 두 번 때리고, 또 가만 있네, 세 번 때리고 그러다 보니까 수도 없이 때리는 거죠. 멍이 들고. 이 언니가 뭐냐면 여름에도 항상 긴 팔 블라우스를 입어요.]

[동료 여성 : 맞아서 피부가, 이렇게 흰 부분을 찾아볼 수 없었어요. 거의 등부터. 근데 우산으로 맞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울면서 그랬거든요. 진짜 맞다가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너무 많다고.]

사건이 일어난 밤에는 더 심각했습니다.

[동료 여성 : 평상시에 맞는 소리가 짝짝 이렇게 들리면, 그날은 짝짝짝짝 이랬어요. 강도가. 속도도 그렇고 크기도 그렇고. 오늘은 좀 강도가 세다고.]

그러다 갑자기 앰뷸런스 소리가 났다고 했습니다.

밖으로 나가려했지만 A씨가 있는 쪽으로 갈 수 없게 문이 닫혀있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한 A씨는 이미 뇌사상태에 빠졌고 경찰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그러자 업주 박모 씨는 여성들에게 진술을 잘해달라고 전화를 겁니다.

[업주 박모 씨 : 일은 안 나와도 돼. 돈(선불금) 걱정은 할 필요도 없고, 언니는 사람이야. 이 상황에서 막 너희 나와서 일해라 어째라 (안 해.)]

병원으로 달려간 A씨의 언니는 박씨의 폭행을 의심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의 태도는 황당했다는 게 언니의 주장입니다.

[유족 : 이거는 해달라고 해서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증거를 갖고 오라는 거예요. 저희한테, 직접 병원 가서 알아보고, 소방서 가서 알아보고. 사진 멍든 게 있으면 가져오고. 증거를 가져오면 접수를 해주겠다. 이거에요.]

구급일지 등을 받아 다시 찾아가자 이번엔 휴일이라 수사 의뢰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유족 : 접수 자체가 안 된다는 거예요. 아예. 일요일이라고. 그래서 저희가 182에 전화해서 알아봤을 때는 분명히 당직 형사가 있다고 해서 왔고.]

그러다보니 수사는 한없이 늘어집니다.

업소에 대한 압수수색은 사건 접수 2주 만에 이뤄졌습니다.

폭행으로 인한 사망이냐, 단순 질식사냐를 밝혀줄 결정적인 단서인 CCTV는 이미 사라진 뒤였습니다.

업주 박씨는 몇 달 전 필요가 없어서 떼어버렸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종업원들은 업주 박씨가 사건 전날까지도 CCTV를 봤다고 말합니다.

[동료 여성 : 근데 제가 봤거든요. 11월 18일까지 있는 것을. 18일에 제가 박00 전무랑 얘기한다고 사무실에 들어갔는데 사무실에 CCTV가 있었어요.]

그렇다면 CCTV는 누가 어디로 치운 걸까.

사건 당일 업소에 있던 한 고객은 남자 종업원이 검은색 SM7 승용차에 무언가를 여러 차례 싣는 것을 봤습니다.

[동료 여성 : 욕하는 소리랑 때리는 소리랑 처음에는 싸우는 줄 알았데요. 그런 소리 듣고 119가 와서 실려가는 것까지 다 본 거죠. 근데 웨이터가 실장 차가 따로 있는데 그 차에 까만 거를 쟁반에 두세 번 실어나르더래요.]

CCTV 저장장치와 업소 장부라고 의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남자 종업원 : 경찰서에서 다 진술했고요. 전화 끊을게요. CCTV는 본 적 없어요.]

그렇다면 문제의 SM7 승용차는 무엇을 싣고 어디로 간 걸까.

이 차는 업소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요트장 주차장에 나타납니다.

A씨가 구급차에 실려간 지 10분 뒤입니다.

차량을 몰고 나타난 사람은 바로 업소 남자종업원이었습니다.

차를 세워놓고 서둘러 자리를 떠납니다.

사건 발생 닷새째인 25일까지 차량은 그대로 주차돼 있습니다.

그런데 25일 오후 업소 여성들이 업주의 폭행을 진술하기 위해 경찰서를 찾던 날 갑자기 택시 한 대가 오더니 차를 몰고 빠져나갑니다.

정작 경찰이 요트장에 나타난 건 이날 저녁 차량이 사라진 뒤였습니다.

경찰은 다음날 업소 뒷골목에 세워진 차량을 찾아냈다고 했지만 차량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결국 A씨의 죽음을 밝혀낼 결정적인 증거인 CCTV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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