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기자 1년 촌지 1000만원"

입력 2003. 10. 14. 04:08 수정 2003. 10. 14.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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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열린 "언론인윤리 제고와 권언관계 정상화 방안을 모색하는 긴급토론회" 모습. ⓒ 오마이뉴스 신미희 박지원과 촌지 김영완씨 자술서 내용 * 3,000〜5,000만원씩 30여 차례 총 30억원을 언론로비 자금으로 박지원 전 장관에게 줬다* 한번 회식에 최고 5,000만원을 쓰기도 했다* 회식 때 언론사 부장급에 500만원, 차장급에 300만원씩 촌지 제공* 박 전 장관 언론사 간부들과 1주일에 4〜5회 회식 / 최근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구속중)이 재임시절 기자들을 상대로 거액의 촌지를 살포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언론인의 윤리문제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호화 향응접대, 공짜취재, 이권개입, 촌지 등 고질적 비리행태가 터질 때마다 언론계는 자성의 목소리를 높였으나 그것도 잠시 그 때 뿐, 여전히 근절되지는 않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권력형 특혜・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언론인들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어 언론계가 사회비리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극단적인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어 언론인 윤리의식에 일대 전환이 필요한 지경이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사장 이명순. 이하 민언련)과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신학림. 언론노조)은 8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강당에서 언론인윤리 제고와 권언관계 정상화 방안을 모색하는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전・현직 언론인과 변호사, 시민단체 관계자 등 참석자들은 반복되는 언론인 비리를 단죄할 법률적 제도의 필요성에 뜻을 같이 했다. 촌지나 금품수수는 더이상 언론인 개인의 윤리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범죄라는 판단이다. 이들은 박지원 전 장관의 현대 비자금 공판에서 밝혀진 300〜500만원의 고액 촌지는 "뇌물"이라고 규정했다.

언론계 스스로 "비리 언론인" 비호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은 발제를 통해 그동안 되풀이된 언론인 비리 사건을 열거한 뒤 △권언유착과 언론권력화 △언론시장의 독과점 구조 △출입처 중심의 취재관행과 기자단 문화 △비리사건 사후처리 미비 △언론계의 도덕성 해이와 비리불감증 △언론인 자질부족과 윤리의식 부재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최 총장은 특히 사후처리의 미비가 언론인 비리를 양상하는 주범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분야의 비리 연루자 처벌과 달리 언론인 연루자에 대한 사회적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진승현 게이트에서 1800만원을 수뢰한 신광옥 전 법무부 차관과 금융감독원 조사 무마 명목으로 5000만원을 받은 김은성 전 국가정보원 2차장, 4000만원 상당의 패스21 주식을 받은 정보통신부 노모 전 국장 등은 비리연루 혐의로 처벌당했다. 그러나 비리 연루 언론인들은 언론계와 권부의 비호 아래 어떤 사건이든 공개되지 않았을 뿐더러 처벌을 받은 경우가 거의 없었다.

최 총장은 "이렇다보니 비리가 터지면 "재수없어 걸렸다"거나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언론계 풍토를 만들었다"며 "이같은 공범의식이 언론인의 윤리적 죄의식을 희석시켜 타 분야의 도덕성 해이는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부패는 느끼지 못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또 처벌조항이 빠진 윤리강령 등 실효성 없는 언론계의 자정노력 역시 "사후약방문"에 그쳤다고 비판했다. 지난 57년 신문윤리강령과 61년 신문윤리실천요강 공표를 시작으로 88년부터 언론사별 윤리강령이 잇따랐지만 비리를 예방하지 못하고 사문화되고 있다.

최 총장은 기자정신을 포함한 언론인 의식부재가 비리불감증 조성에 한몫 했다고 평했다. 87년부터 격화된 언론사간 경쟁으로 언론인들에게 "직장인 의식"이 강하게 자리잡았고, 98년 IMF 이후 고용불안과 언론권력화에 따른 부작용으로 노동조합의 내부견제가 약해지면서 언론인 윤리의식 부재를 불러왔다는 관측이다.

권력형 특혜사건과 언론인 비리 연루 △ 1991년 3월 한보그룹 수서비리 관련 출입기자단 촌지 사건△ 1991년 10월 보건사회부 기자단 촌지수수 사건△ 1992년 1월 국방수사연구소와 서울시경찰청 기자단 촌지수수 사건△ 1997년 "세풍" 비리 언론인 연루(동아・대한매일・국민・YTN・SBS・대구MBC 등 10여명)△ 2002년 1월 윤태식게이트 언론인 연루(월간조선・서울경제 등 20여명 언론인 패스21 주식 보유)△ 2002년 5월 성남파크뷰 특혜 분양 비리 언론인 10여명 사전분양 받음△ 2002년 5월 타이거풀스 로비사건(타이거풀스 대주주 10개 중앙 언론사 포함)△ 2003년 7월 굿모닝시티 분양비리 사건(로비 리스트에 언론인 포함)△ 2003년 9월 박지원 전 장관 대언론로비 의혹 제기 / 회사 이익 따라 기사쓰면 기자 아니다토론자들은 뿌리깊은 언론계 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법・제도 마련에 언론계와 시민사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현직 기자들은 자신을 포함한 주변의 촌지 수수 "고해성사"로 눈길을 끌었다.

신문기자 생활 40년의 장행훈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민주화 이후 언론이 상당히 개혁돼서 부패만큼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박 전 장관의 촌지 액수는 상상을 초월했다"면서 "이런 규모는 촌지가 아니고 뇌물이다, 범죄로 다스려야 한다"고 말했다. 장 전 국장은 부패가 심했던 자유당 정권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동아일보> 재직 당시 "촌지는 상상할 수도 없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59년 처음 신문사에 들어가니까 부장이 "돈 문제로 걸리면 그날로 당장 끝난다"며 수습기자 교육을 시켰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사내의 엄격한 분위기로 인해 기자단에서 동아일보 기자는 간사를 맡기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상기 기자협회장은 자신이 받은 3번의 촌지수수 경험을 털어놨다. 달동네 취재갔을 때 어느 할머니가 쥐어준 차비 1000원과, 국방부 출입 시절 받은 전별금, 교육부 출입 때 받은 20만원 등을 공개했다. 두툼했던 국방부 전별금은 후임자를 통해 되돌려줬고 교육부 20만원은 책을 사서 공무원들에게 나눠줬다는 것.그는 금품・촌지는 "관계"에서 비롯되지만 결국은 취재원과 기자의 관계를 악화시킨다고 지적했다. 당당하고 겸손해야 할 기자가 비겁해지면서 나중에는 습관적으로 먼저 "콜"(요구)하는 모습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지금 기자들은 회사원, 직장인으로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회사 이익에 따라 기사를 쓰는 것은 진정한 기자가 아니다"라고 성토했다. 그는 기자정신 없이 글재주만 배워서는 기자가 될 수 없다는 소신을 거듭 밝혔다.

"기자채용 시험에 윤리강령을 필수로 넣자"신학림 언론노조 위원장은 박 전 장관의 회식자리에서 돈을 받은 한 지인의 고해성사를 대신 전했다. 박 전 장관이 한잔 더 하라고 준 돈은 김영완씨 진술 액수와 비슷하고, 편집국 직원에게 맡겨 공동으로 사용했다는 것.신 위원장은 "지난 세풍비리 연루 언론인에 대해서는 언론노조에서 검찰에 고발했는데, 이번의 경우 워낙 광범위하게 살포돼 검찰이 범죄로 밝히기조차 어렵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인 비리의 경우 정치자금과 비슷해 대가성이 없다고 부인하면 처벌하기 쉽지 않을 뿐더러 법적으로 규명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언급했다.

조일준 한겨레 기자는 "촌지가 기자 개인의 도덕적 양심이나 윤리 차원으로 돌릴 문제가 아니다"면서 기자채용과 교육의 문제를 거론했다. 한겨레로 옮기기 전인 94년 언론계에 입문했다는 조 기자는 180일 수습교육 중 술먹지 않고 귀가한 날이 1주일도 안됐고 그중 120〜130일은 폭탄주를 마셨다고 밝혔다.

"수습교육이 아닌 술습교육이었다"고 빗댄 조 기자는 "당시 술은 선배들이 사든지 아니면 선배들이 봉을 잡아왔다, 경찰청 캡이 정말 위대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입사 6개월 동안 윤리교육을 받아본 기억은 없다고 했다.

그는 또 "이같은 과정을 통해 기자들은 음주든 식사든 촌지든 접대를 받아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게 되면서 처음에 느꼈던 불편함마저 차차 익숙해진다"며 "수습기자 교육은 물론 기자채용 시험부터 윤리강령을 필수로 넣어야 한다"고 주창했다.

부동산 담당 1년동안 받은 촌지가 현금 1000만원에 달했다는 한 전문지 기자의 경험을 대신 털어놓은 그는 "기자단에서 엠바고를 어기면 자체 징계하면서, 기자윤리를 어기면 징계는 커녕 오히려 촌지를 거부한 기자가 따가운 시선을 받는 게 현실"이라며 출입처 위주 취재관행에 대해 제기했다.

김택수 변호사는 "비리 언론인에 대한 처벌로써 윤리와 법은 선택이 아닌 병행될 수 밖에 없는 문제"라며 "실제로 비리(의혹)에 연루됐을 때 기자로서 정치적 생명이 끝난다는 공감대 확보가 가장 큰 해결책일 수 있다"이라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 역시 법적 차원에서 거액의 촌지 수수는 사실상 범죄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언론인은 공무원이 아니라서 뇌물죄로 처벌할 수는 없고, 업무와 관련해 부정한 청탁 받고 부당한 이익을 취했을 때 적용하는 배임수재죄로 처벌이 가능하다고 해석했다.

그는 "언론인이 다른 분야보다 더 높은 도덕성을 필요로 하는 공인으로서, 또 언론의 공익성을 강조해서 특별법 형태로 가중처벌 조항을 두자고 제안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다른 직업군과의 형평관계와 당사자측 반발을 고려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도 잊지 않았다.

참석자들은 이밖에 △언론재단을 통한 언론윤리 재교육 강화 △일정한 금액 이상은 뇌물로 처벌하는 법안 제정 △실명공개 등 시민사회의 감시 강화 등에 대해 활발한 토론을 벌인 뒤 "비리 언론인 처벌을 위한 법률제정" 공론화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언론-정부" 대립, "본질 상실한채 소모적인 힘겨루기" [현장] 장행훈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장행훈 전 동아일보 국장은 언론인 비리 방지와 관련, 기자들의 윤리의식 재무장을 강도높게 요구했다. 그는 "촌지는 50여년 넘게 관행된 구조적인 문제로 생활처럼 돼서 의식을 고치지 않으면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언론의 근본적인 개혁도 중요하지만, 기자들이 스스로의 힘을 윤리적으로 재인식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주가 있더라도 기자는 기자대로 언론사 안에서 할 수 있는 "행동성"이 있다, 옳은 것을 지적할 때는 국장이나 사주가 뭐라고 거부하기 어렵다"며 "기자들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저항할 수 있다면 구조적인 틀에서도 개선책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장 전 국장은 최근 일부 언론권력과 정부권력의 대립에 대해서도 의미있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그는 "언론-정부"의 갈등이 싸움의 본질을 상실한 소모적인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문의 일차적인 충성 대상은 독자이고, 국가도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라고 전제한 그는 "그런데도 신문은 정부권력에 대항해서 싸우는 게 일차 의무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신문이 군부독재 시절 인식에 머문 채 독자를 외면하고 정부권력과 맞서고 있다는 뜻이다.

또 그는 "신문과 정부가 서로 싸우는 것은 해야 할 의무가 아니다, 대상을 잘못 잡고 엉뚱하게 싸우고 있다"면서 정부 역시 국민의 언론자유를 중심에 놓고 바라볼 것을 요구했다. / 신미희 기자 /신미희 기자 (mihee@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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