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 정당, 풀뿌리까지 말릴 셈인가?

2005. 12. 25.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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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인 선거구'로 쪼개 독식하려 게리맨더링대구시 한나라 의원들 새벽 기습 날치기수도권 모두 분할… 광주·대전만 원안대로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소수 정파의 진출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내년 선거 때부터 도입하기로 했던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가 기득권을 지키려는 기존 거대정당들의 '선거구제 게리맨더링'에 의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각 지역별 선거구획정위원회는 2~4인 선거구를 제안했지만,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광역의회는 차례로 4인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쪼개거나 대폭 축소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새벽 날치기 처리를 하는 등 일부 지역에서는 막 싹이 내린 풀뿌리 민주주의가 유린되고 있다.

'97년 노동법 날치기' 뺨치는 대구시의회

=주말인 24일 새벽 5시50분께 미리 연락을 받은 대구시의회 한나라당 의원 22명은 시의회 본회의장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4인 선거구 분할에 반대해 시의회 의장실과 의원 휴게실을 점거하고 있던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당원들을 피해 뒷문을 통해 회의장에 들어섰고, 개의 5분 만에 4인 선거구 11곳을 모두 2인 선거구 22곳으로 쪼개는 선거구 획정안을 날치기 처리했다.

뒤늦게 사무처로부터 연락을 받은 열린우리당과 무소속 의원들이 부리나케 회의장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상황은 종료됐고, 한나라당 시의원들은 자리를 뜬 뒤였다. 이들이 떠난 자리에서는 손전등 서너개가 발견됐다. 김형준 열린우리당 의원은 "5시46분께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달려나가 6시6분께 도착하니 이미 회의가 끝난 상태였다"며 "대구시의회 14년 만에 이런 수치스런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경북도의회도 23일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민주당 당직자 등이 4인 선거구 축소안을 막기 위해 본회의장에서 농성을 벌이자, 한나라당 의원들만으로 농정위원회 회의실에서 문을 걸어잠근 채 선거구 획정안을 기습 처리했다.

같은 날 한나라당이 다수파인 충북도의회도 4인 선거구 10곳 가운데 9곳을 2인 선거구로 쪼개는 내용의 선거구 획정안 수정안을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의 격렬한 반대 속에 강행 처리했다.

그러나 부산에서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본회의장 봉쇄로 한나라당의 축소안이 회기 안에 통과되지 못해 자동 폐기됐으며, 경남에서는 28일 본회의를 앞두고 민주노동당원 등이 본회의장을 점거해 농성을 벌이는 등 대치하고 있다.

선거구 획정위 안대로 중대선거구제가 처리된 곳은 광주와 대전 두 곳뿐이다.

싹쓸이·나눠먹기 노린 선거구 쪼개기

=이처럼 곳곳에서 선거구 획정위 안을 무시한 채 4인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쪼개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기존 정당들이 자신이 유리한 지역에서 기초의원을 '싹쓸이'하거나 동반 당선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 경북, 부산, 경남 등 한나라당이 절대적으로 우세한 지역에서는 2인 선거구가 될 경우 복수후보 공천을 통해 2석 모두 한나라당이 싹쓸이하는 것이 가능하다. 민주노동당 소속인 장태수 대구 서구 의원은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무소속 후보 등 이 지역 소수 정치세력들이 4인 선거구에서는 10∼20%만 득표해도 당선될 수 있지만 2인 선거구에서는 아예 당선권에 접근할 수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열린우리당은 영남권의 4인 선거구 분할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발하지만 동반 당선이 가능한 수도권과 호남지역의 선거구 쪼개기에는 방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 인천, 경기에서 4인 선거구는 단 한 곳도 남아나지 않았고, 전남에서도 25곳 가운데 7곳만 남았다.

"무효화 투쟁할 것"

=광역의회의 잇따른 선거구제 개악에 대해 초록정치연대의 활동가인 서형원씨는 "소수정당 배려 차원에서 기초의회 선거에 중선거구제를 도입한 것인데 허사가 됐다"며 "양대 정당이 풀뿌리 정치까지 장악하겠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은 "양당의 태도는 자당이 유리하거나 불리한 지역에 따라 방침이 다르고 당론이 달라 지방자치는커녕 정당정치의 기본도 지키지 못하는 것"이라며 "광역시·도 의회의 기초의회 선거구 획정안을 인정할 수 없으며 획정안 무효화 투쟁을 비롯해 헌법소원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보수 거대양당의 지방자치 유린행위를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신재 정인환, 대구/박영률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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