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유행어 그들만의 언어인가 놀이인가

2008. 2. 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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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 신조어 분석

TV예능프로.CF.인터넷등서

젊은층들 과도한 축약 다반사

일부"언어파괴.세대 괴리감"

"지못미, 흠좀무, 듣보잡."

위의 신조어 중 하나라도 그 뜻을 모른다면 당신은 오로지 e-메일 확인을 위해 인터넷을 쓰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젊은이나 네티즌의 일상대화에서 위의 말들은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범람한다. 그 뜻 또한 기발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못미'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의 줄임말이며, '흠좀무'는 '흠, 그게 사실이라면 좀 무서운걸'이다. '듣보잡'은 '듣도 보도 못한 잡것(놈)'이다.

시대마다 다양한 유행어가 만들어지고 있다. 유행어가 만들어지는 곳은 TV 예능 프로그램, CF, 인터넷 등이다. 과거에는 유행어 한마디로 웃기던 개그맨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CF와 인터넷에서 사용했던 말들이 더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모 통신사 CF를 통해 등장한 "쇼를 하라"라는 말은 단숨에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쇼'라는 말이 주는 다의성과 패러디 동영상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폭발적인 화학반응을 일으켜 효과가 증폭됐다. "무이자, 무이자"를 외치는 케이블 CM도 유행을 탔다. CF의 유행어는 코믹하고 감각적인 영상이 UCC 콘텐츠로 적합하다는 점에서 개그맨의 유행어보다 더 재미있게 소비되고 있다.

하지만 젊은이 사이에서 최고의 유행어는 인터넷에서 나왔다. 인터넷 신조어 양산지인 '디시인사이드'가 최근 2007년 최고의 유행어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우왕ㅋ굳ㅋ'이 총 6730표 중 3021표를 얻어 1위에 올랐다. 네티즌은 '아주 좋다'는 뜻으로 쓰이는 일종의 감탄사인 '우왕ㅋ굳ㅋ'이 입안에 착착 감길 뿐만 아니라 중독성도 있다고 입을 모은다. 2위는 621표를 얻은 '킹왕짱(최고다, 대단하다는 의미)'이 차지했다. 그다음으로 '듣보잡'이 591표를 얻어 3위에 올랐다. 이 밖에 '막장(위험하고 희망이 없는 상황)' '안습(눈물이 난다)' '고고씽(씽씽 달린다)' '하악하악(흥분했다는 뜻의 의성어)' '지못미' 등이 10위권 안에 들었다.

2007년 키보드를 달군 인터넷 유행어의 트렌드는 과도한 '축약'이다. 거의 한 문장에 육박하는 문장을 세 글자로 줄여버린다. '야동순재'처럼 별명이 붙은 이름이 네 글자가 유행이라면, 인터넷 축약어는 '이뭐병(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등 세 글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육두문자 등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게 꺼려지는 단어는 그대로 나열하지 않고 각 음절의 초성만으로 표현하거나 배열을 약간 바꿔 순화시킨다. 가령 '거짓말'이라는 단어를 'ㄱㅈㅁ'로 표현하고, '병신'을 '병진', 여성 가슴을 '슴가'라고 표기하는 것 등이다.

TV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된 말이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경우도 있다. 최고의 예능물인 MBC '무한도전'의 진행자 유재석의 "~하셨쎄여?"와 같은 유행어는 대학가의 대자보나 포스터에서도 애용됐을 정도로 큰 인기를 구가했다. 이 말이 등장한 것은 공중파였지만 파급되고 회자된 장소가 온라인 공간임을 감안하면 인터넷을 통하지 않고는 인기어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인터넷 신조어들이 횡행하는 이유는 기성세대와 자신들을 차별화시키려는 심리에다 유행에 뒤처지지 않음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얼리어댑터들의 욕구가 합쳐졌기 때문이다. '너 아직도 그 말 몰라?'라는 심리에서 새로운 말들을 속속 오프라인으로 가져오는 언어 얼리어댑터들에 의해 이러한 신조어들이 학습되고, 못 알아들으면 대화에 낄 수조차 없게 된다.

'ASAP(as soon as possible)' 'JK(just kidding)'과 같이 줄임말이 일상화돼 있는 영어 구어들 역시 이와 관련이 있다. 최근 기업들이 기업명을 영문 이니셜로 대거 교체하는 움직임도 은연중에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경향은 영어와 인터넷, 미드(미국 드라마) 등을 통해 미국 문화에 노출돼 있는 요즘 젊은이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네티즌이 신조어를 만드는 것은 이미 생산된 문화를 소비만 하는 차원을 넘어 직접 문화를 생산하는 기성세대의 모습까지 갖춤으로써 바람직한 문화 소비 행태인 '프로슈머(생산과 소비의 영어 합성어)'의 속성도 띠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 유행어들은 언어 파괴의 주범이고 세대 차이를 심화시킨다는 비판에도 직면해 있다. 신세대들은 그 의미를 알고 있지만 30대 이상의 중년세대는 '딴 나라' 말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때 열광하다가 금세 사라지는 인터넷 유행어도 많다.

인터넷 클릭 후의 1초에도 갑갑함을 느끼는 초고속세대에게는 모든 글자를 치느니 자음 몇 개를 던져주는 것이 그들다운 것이다. 인터넷 유행어들은 어느 시대보다도 속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현재 대한민국 세태를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m.com)

지성현 인턴기자(confut@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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