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장상 (25) 결론 정해놓고 진실에 귀막은 청문회 충격

2009. 6. 2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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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주는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해석해 몰고 가는 청문회 분위기에 충격을 받았다. 진심이 전혀 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방향으로 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방향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 같았다.

예를 들면 나의 학력에 대한 의혹 문제만 해도 그렇다. 취임 직후 언론기관에 배포된 나의 일부 이력서에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이 프린스턴대 신학대학원으로 잘못 기재된 것에 대해 학력 위조 의혹이 제기되었다. 나는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에 있는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고 신약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은 우리나라 학제로는 전문대학원에 속하며 미국 장로교회에서 설립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인 신학교육기관이다. 내가 직접 작성한 모든 이력서나 저서 등에는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이라고 정확히 기재돼 있다. 물론 나는 그 모든 자료를 청문회 위원들에게 제출했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 내가 대학의 행정 책임을 맡으면서 비서가 이력서를 대신 작성하다가 프린스턴대 신학대학원으로 잘못 기재하는 오기가 일어났다. 비서는 내가 예일대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는 것을 기록한 후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을 기록하면서 예일대학교의 경우와 같다고 착각하고 프린스턴대 신학대학원으로 오기한 것이다. 이런 착오는 미국 사람들도 흔히 하는 일이다. 비서가 작성한 이력서를 점검하지 않은 것은 분명히 내 불찰이다. 이 문제가 거론되었을 때 기회있을 때마다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러나 언론과 청문회는 단순한 학력 오기를 학력 위조로 비화해 문제를 확대시켜 갔다.

프린스턴대에는 신학대학원이 없다.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은 미국의 공인기관에서 신학과 종교학과 학교 순위를 낼 때 항상 최상위권에 들어간다. 전 세계 장로교 신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신학대학원이다. 프린스턴 신학대학원 동창회에서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이 신학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명성을 안다면 학력 위조라는 오해가 얼마나 근거 없고 희화적인 일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라고 논평했다. 대부분 언론은 이 성명서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내가 학력 위조를 했으리라고 생각한다는 그 자체에 정말 놀랐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실체적 사실, 진실과는 상관없이 특위위원이나 언론이나 모두 제기된 의혹을 부풀려서 부도덕한 쪽으로 결론 내고 싶어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순간 바른말을 하고 싶어졌다. 이것도 내 성격이다. 잘 참다가도 어느 순간 여과되지 않은 바른말을 하고 마는 기질이 내게 있다. 청문회 이후 녹화된 비디오 테이프를 다시 보면서 내가 다섯 번 맵게 대답한 것을 보았다. '모독적으로 들린다' '소설 쓰지 마라' '선거운동하지 마라' 등 뼈 있는 말을 했다. 어떤 사람은 당당하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건방지다고도 했다. 건방지다는 비난을 들으면서 '나는 정말 건방진 사람인가. 어떤 점에서 겸손하지 못했는가'라는 심각한 반성을 했다.

청문회(聽聞會)는 말 그대로 듣는 자리여서 미국에서는 아예 'Hearing'이라고 한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청문회는 듣기보다는 묻는 청문회였고, 물은 것에 대한 대답도 들으려 하지 않는 청문회였다. 청문회는 왜 존재하는가란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정리=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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