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메일·비밀번호 낱낱이 기술로도 못막는 '무제한 감청'

2010. 2. 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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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패킷감청' 시연해보니

범위·대상 제한 불가능, 헌법적으로 허용 안돼, '절대 금지' 명문화해야

"안녕하세요?"-"방가방가 ^^"

1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패킷감청' 시연회 현장. 두 사람의 시연자가 '엠에스엔(MSN) 메신저'로 나눈 대화 내용이 실시간으로 '제3의 컴퓨터' 화면에 떴다. 인터넷에서 널리 구할 수 있는 패킷 분석기 '와이어 샤크'를 통해 시연자가 사용하는 인터넷 회선에 접속하니, 메신저 대화 내용뿐만 아니라, 다음·네이버 등의 웹메일과 아웃룩 익스프레스의 발신·수신 이메일 내용을 '훔쳐'볼 수 있었다. 감청 화면에는 이용자의 로그인 아이디(ID)는 물론 비밀번호까지 고스란히 드러났다.

민주당은 이날 전기신호 형태로 흐르는 패킷을 정보기관이 중간에서 가로채 당사자도 모르게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 패킷감청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최근 국가정보원과 기무사 등이 패킷감청 장비 보유 대수를 3배 가까이 늘리며 사생활 침해 논란이 거세지고 있는 만큼, 바람직한 법적 제동 장치를 마련하자는 차원에서다.

민주당 의원들을 비롯한 토론 참석자들은 "패킷감청의 특성상, 감청의 범위와 대상을 제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패킷감청 허용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같은 회선을 사용하는 사람들 중 감청 대상자의 데이터만 걸러낼 수 없어 "법으로 제한하자는 것은 패킷감청만 합법화할 위험성이 있다"(박영선 의원)는 것이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상자를 선별해 감청할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하지 않는 한 패킷감청은 헌법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며 "패킷감청에 대한 헌법적 규제는 '절대적 금지'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근거로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은 침해할 수 없으므로 법률로도 제한할 수 없다'는 헌법 제37조 2항을 들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권정호 변호사도 "통신감청은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보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통신비밀보호법의 제정 취지에 비춰볼 때 패킷감청은 위법한 행위"라고 말했다. 그는 패킷감청의 허가서 내용 구체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의 통비법 개정안을 두고도 "패킷감청 요건을 엄격하게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패킷감청에 법적 면죄부만 줄 가능성이 크다"며 반대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민간 기업들이 네트워크상의 패킷 정보를 모니터링하는 '디피아이'(DPI·Deep Packet Inspection) 기술을 이용해 '맞춤형 광고 서비스'를 하는 것이 패킷감청에 해당하느냐를 놓고 논란이 됐다. 김앤장 소속 구태언 변호사는 "서비스의 내용과 탈퇴 방식을 명시적으로 고지하는 등 이용자 동의권이 보장되기 때문에 감청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 반면,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기술 환경이 허용한다고 해서 가장 은밀한 내용까지 무차별적으로 파헤쳐 영업의 대상으로 삼는 비즈니스 모델은 허용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맞섰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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