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뮤지컬계 챔피언'..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최보식 선임기자 2012. 7. 2.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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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막이 올라가는 날 난 굶는다.. 끝나면 술을 들이켜고"

"공연 막이 올라가는 날에는 뭘 먹어도 급체한다. 이 때문에 아예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그날은 앉아서도 보지 못한다. 극장 뒤편 벽에 기대서 본다. 제작자가 관객 반응을 보는 것은 스트레스다. 피를 말린다. 그렇게 공연이 끝나면 술을 엄청 들이켜고."

박명성 (50) 신시컴퍼니 대표는 겸연쩍은지 "헤헤헤" 웃었다. 이렇게 웃는 것은 그의 버릇이다.

그는 뮤지컬계의 챔피언이다. '더 라이프' '갬블러' '렌트' '댄싱 섀도우' '맘마미아!' '아이다' '시카고' 등 초대형 뮤지컬을 제작해왔다. 작년 한 해만 그는 연극 7편, 뮤지컬 5편을 올렸다. 모두 740여회 공연을 했으니, 매일 어디선가 그가 제작한 작품이 두 번씩 공연됐다는 뜻이다.

"뮤지컬에서 수익을 올리면 연극에 투자한다. 우리 형편에서 연극 제작은 손해다. 열 작품 하면 두 작품쯤 성공한다. 하지만 연극배우나 스태프에는 흥행과 상관없이 개런티를 준다. 공연이 실패했을 때 위로를 해주고, 모든 공연이 끝났다는 공고를 붙이고 쫑파티를 열어주는 것도 제작자의 몫이다."

얼마 전 그는 이런 뮤지컬 제작자로서의 삶을 기록한 책 '세상에 없는 무대를 만들다'를 출간했다. 그는 꼭 30년 전 연극판에 들어왔다. 연극을 못 하면 사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단역으로도 무대에 설 기회가 많지 않았다. 연극에 미친 만큼 연기 실력은 못 미쳤던 것이다.

극단 대표는 그를 딱하게 여겨 연출의 기회를 줬다. 작품은 먼저 단원들 워크숍에서 공연됐다. 극단 대표는 "야, 너는 배우도 텄고 연출도 젬병이군"하고 말했다. 그가 "다 포기해도 연극판만은 못 떠나겠다"고 말했을 때 대표도 연민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극단 살림을 맡았다. 명색이 기획실장이었지만 극단 자체의 예산이나 제작 시스템이라는 것이 없었다. 뮤지컬이 본격 공연되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창피한 얘기지만 그냥 계약 없이 남의 작품을 도둑질해서 썼다. 어느 극단에서 '캣츠'가 공연 도중 중단된 사건이 있었다. 좀 덜 유명하고 오래된 작품은 몰래 하면 되는데. 이 작품은 금방 들통이 났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정식 라이선스 계약을 한 뒤 1998년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들여온 이가 그였다. '더 라이프', 1980년대 뉴욕 뒷골목 사창가 사람들의 사랑과 배신을 다룬 작품이다.

"그때까지 정식 계약을 하고 들여온 작품이 하나도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대표의 허락을 받고 동료와 함께 뉴욕 브로드웨이에 갔다. 공연 중인 뮤지컬 네 편을 본 뒤 '더 라이프'를 들여와야겠다고 결정했다. 이 작품의 라이선스 관련 업무를 대행하는 회사는 일본에 있었다."

―저작권료를 얼마나 주었나?

"공연 수익의 10%였다. 내가 들여온 뮤지컬 대부분은 그 선에서 계약됐다. 요즘 다른 극단에서는 17~18%까지 주는 경우도 있다."

―당시 극단 직원이었는데 어떻게 뮤지컬 제작을 책임지게 됐나?

"대표는 '극단에서 뒷받침할 여력이 없다. 정 하고 싶다면 네가 직접 제작해라. 수익을 내면 전액을 극단에 주고, 실패하면 제작자가 모든 책임을 져라'고 했다. 지금 보면 불공정한 계약이지만 '내 마음대로 해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신이 났다. 일생을 건 도박인 줄도 모르고."

―제작비는 어떻게 마련했나?

"무대장치, 의상, 소품, 조명, 음향 등 6억8000만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작은 액수였다.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왔다. 막판에 대관료 5000만원이 부족했다. 극단 대표에게 찾아가니 '야, 그 정도 각오도 없이 일을 벌였어? 네가 알아서 하기로 했으니 끝까지 네가 책임져'라고 잘랐다. 그 순간은 참 섭섭했지만 그분이 옳았다. 제작자의 책임감을 가르쳐준 것이다.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대표는 '당초 계약'과 달리 흥행 수익금 중 꽤 많은 돈을 내게 건넸다. 그해 암(癌)으로 돌아가셨고, 그 뒤 내가 극단을 맡게 됐다."

―첫 작품에서 어떤 배우들이 캐스팅됐나?

"그때는 대본을 읽어보고 머리에 떠오르는 배우를 불러다 썼다. 대학 동기인 허준호가 포주역을 맡았고, 전수경과 이영자가 처음으로 뮤지컬에 도전했다. 세 번째 뮤지컬인 '렌트'(1999년)부터 공개 오디션을 시작했다."

―오디션을 통하면 가장 적격의 배우를 가려낼 수 있나?

"최종 심사에는 그 배역에 맞는 배우들을 3~4명으로 압축시켜 놓는다. 한국 스태프들은 대중성 있는 스타를 선호하는 편이다. 반면 외국 스태프들은 순전히 실력으로만 뽑는다. 2주일쯤 길게 한다. 배우들에게 어려운 장면의 역할에 대해 계속해서 숙제를 준다. 다음 날 배우가 얼마나 창의적으로 연구해왔는지, 오늘 보여준 연기가 내일에는 얼마나 달라졌느냐를 본다. 오디션을 통해 무명의 배우가 단숨에 뮤지컬의 스타로 만들어진다."

―무명의 배우가 과연 주인공으로 뽑힌 경우가 있었나?

"2004년 '맘마미아!'의 초연(初演) 오디션 때 배우들 간에 2주 넘게 혈투가 벌어졌다. 박해미가 뽑혔다. 지금은 뮤지컬계의 간판이지만 그때는 뮤지컬다운 뮤지컬을 한 적이 없는 무명이었다. 전수경도 그렇게 시작했다. 오는 11월에 공연할 '아이다' 오디션에서는 대역(代役) 배우로 온 아이가 뽑혔다. 내가 '대역하느라 수고했으니 너도 노래 한 곡 불러보라'고 했다. 그 노래를 듣고는, 외국 스태프들이 '정식으로 오디션을 받아라'고 했다. 숙제를 주고 한 시간 뒤 테스트를 했다. 당시 최종 후보로 이미 세 명이 올라와 있었는데, 그냥 대역해주러 온 아이가 뽑힌 것이다."

―아이돌 가수 출신인 옥주현 도 '아이다' 오디션에 참여했던 걸로 안다.

"옥주현은 미국에 음악 공부 하러 갔다가 '아이다'를 보고는 뮤지컬에 반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스태프들이 '옥주현이 옵니다'라고 했다. '옥주현이 누군데?' 나는 그때만 해도 걔가 누군지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도 몰랐다. ' 이효리 와 같은 핑클 멤버'라고 했을 때, 이효리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가 했다."

―실력은 어땠나?

"한국에도 이렇게 파워풀한 가수가 있구나 했다. 하지만 연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리허설 기간에 연기 훈련을 시켜 무대에 올린다는 모험을 했다. 연습 동안 방송 프로를 중단하고 하루에 10시간씩 했다.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와서도 했다. 이 친구는 음식을 잘 먹어서 살이 금방 찐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면 노출 의상에 맞춰 몸무게를 빼온다. 진정한 프로다. 장차 대형 뮤지컬배우가 될 것이다. 지금도 여배우 중에는 캐스팅하고 싶어 하는 1순위다."

―지금 뮤지컬에서 최고의 '티켓 파워'는 조승우라고 들었다.

"가장 믿을 만한 배우다. 발성, 연기, 가창력, 무대 매너, 카리스마를 다 갖추고 있다. 조승우는 자기가 하고 싶은 작품만 한다. 누구와 친하다고 해서 아무 작품에 출연하지 않는다. 2007년 '렌트'를 다시 공연해 캐스팅에 고심하고 있을 때였다. 그가 '서른을 넘기기 전에 이 작품에 꼭 출연하고 싶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티켓 오픈 20분 만에 매진됐다."

―당신은 음악감독 박칼린 과 쭉 함께 작업을 해오지 않았나?

"13년이 된 친구다. 새로운 인재를 키우고, 흥행보다 작품성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추구하는 목표가 같다. 이제는 박칼린이 스타가 돼 우리 작품의 흥행몰이에도 도움이 된다. '시카고'에서 박칼린이 지휘하면 중년 남자들이 몰려온다."

―구체적으로 배우들 개런티는 얼마나 주나?

"초창기 주연 배우는 회(回)당 출연료를 20만~30만원쯤 줬다. 지금은 개런티가 열 배나 뛰었다. 요즘 아이돌 스타에게는 회당 수천만원씩 개런티를 주는 경우가 있다. 나는 그런 액수를 요구하면 아무리 스타라도 쓰지 않는다. 이는 무대를 업으로 살아온 전문배우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아직도 단역이나 코러스에게는 회당 2만원 주는 데도 있다. 이들을 무시하면 절대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없다."

―뮤지컬 제작비가 많이 드는 게 사실이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입장료가 부담이다.

"다른 극단 대표들과 이 문제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 뮤지컬이 뉴욕이나 런던보다 더 비쌀 이유가 없다. 그쪽 배우보다 기량이 더 높지도 않은데도 말이다. 나는 장기 공연의 경우 입장료를 10만원대 이하로 떨어뜨려야 한다는 쪽이다. '맘마미아!'는 6개월 장기 공연하면서 R석을 9만원 받았다. 국내에서 16년 만에 처음이었다. 티켓 가격을 내리지 않으면 관객층을 넓히지 못한다."

―장기 공연하면 어떻게 해서 입장료를 낮출 수 있나?

"초연 때 오리지널 무대장치와 의상, 소품 등을 수입한다. 가령 '아이다'는 30억원, '맘마미아!'는 15억원이 들었다. 공연이 끝나면 이런 장비들은 경기도에 있는 500평 규모의 창고에 보관해놓는다. 한 달에 창고 렌트비로 1000만원쯤 나간다. 하지만 똑같은 작품의 다음 공연 때부터는 이런 제작비가 들지 않게 된다. 장기 공연을 하면 대관료도 낮출 수 있다. 우리 극단의 경우 언제 공연해도 흥행이 되는 '맘마미아!' '렌트' '아이다' '시카고' '헤어스프레이' 등을 갖고 있어 버텨온 셈이다."

―초창기 두 번째 작품 '갬블러'의 앙코르 공연에서는 7억원의 손실을 입어 파산할 뻔했다고 들었다.

"최악의 순간이었다. 막 극단 대표를 맡았고, 가정적으로는 결혼한 지 2년 됐을 때였다. 가족은 월세로 쫓겨났다. 내 아파트 등본에는 도장 찍을 때가 없다. 워낙 많이 담보로 잡혔다. 하지만 나는 어떤 상황에도 주저앉은 적이 없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생각의 문제가 아니라 돈의 문제가 아닌가?

"그렇다고 돈 실수를 해본 적이 없다. 계약서에 나와 있는 것을 그대로 지킨다. 그걸 어기면 이 바닥에서 떠나야 한다. 대표는 돈 문제에서 정확하고 투명해야 한다."

―누구든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 있지 않은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마음먹느냐가 중요하다. 창작 뮤지컬 '댄싱 섀도우'는 45억원을 들여 제작했다. 25억원 적자를 보자 '신시컴퍼니가 문 닫게 됐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갓 입사한 직원 서너 명이 떠나갔다. 하지만 나머지 직원은 '우리는 생존해야 한다'며 전의를 불태웠다. 두 달 뒤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시카고'를 올려 2주 동안 30억원 가까이 팔았다. 모든 일은 사람에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난다."

―당신과 직원들은 어떤 관계인가?

"나는 결코 지시하지 않는다. 그때그때 지시하면 실수는 줄일지 모르나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알아서 일하는 능력을 잃는다. 회의는 일 년에 두 번만 한다. 연극판에는 이직률이 높지만, 우리 극단 사무실 직원 30명 중 10년 넘는 사람이 절반이다. 20년 넘은 사람도 3명이나 있다."

―무대 위에서 관객의 박수를 받는 꿈은 더 이상 꾸지 않나?

"무대 뒤가 좋다. 내가 무대 위에 서면 앙상블이 깨진다고 본다. 가장 낮은 곳에서 배우와 연출자, 스태프들과 함께 나는 가장 먼 꿈을 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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