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inside-지구촌 식량위기] 이상기후만 탓할 수 없다.. 인간의 탐욕이 '곡물파동' 불렀다

입력 2012. 8. 18. 02:21 수정 2012. 8. 18.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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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오는 '애그플레이션 공포' 원인과 전망

[서울신문]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기 때문에 결국 전쟁이나 기아가 일어날 것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1766~1834)가 1798년 저서 '인구론'에서 예언한 전망은 다행히 맞지 않았다. 개발도상국이 2차 세계대전 후 폭발적인 인구 증가로 식량문제를 겪었지만, 농업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킨 '녹색혁명'을 통해 위기를 해결했다. 맬서스는 배고픔을 이기려는 인간의 노력을 간과했던 것이다. 1960년대 중반까지 국제 곡물가격은 완만하게 하락했고, 생산력을 높이려는 각국의 노력은 계속됐다.

'풍요의 시대'는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기상이변으로 인한 공급 감소, 곡물을 이용한 대체연료 활성화, 식량의 자원화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결합하며 곡물가격 상승을 이끌었다. 특히 식량을 투기 대상으로 보는 거대 자본의 '탐욕'은 세계 인구의 7분의1을 기아의 고통에 빠뜨리는 주범으로 작용했다.

●생산이 수요 못 따라가… 곡물값 2년 주기 요동

2006년부터 국제 곡물가격은 2년 주기로 요동치고 있다. 1972년이나 1996년 이상기후에 따른 흉작으로 발생했던 곡물파동과는 여러 측면에서 다르다. 2004~05년 세계 곡물 생산량은 20억 4447만t으로 전년보다 9.79%나 증가했으며, 해마다 20억t 이상 꾸준히 생산되고 있다. 생산의 문제가 아닌 수요 급증으로 가격이 상승한 것이다. 곡물(애그리컬처) 가격 급등이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진 것도 이전과 다른 점이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것도 이때다.

생산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은 심각하다. 세계 곡물 생산량은 1990~91년 18억 1009만t에서 2010~11년 22억 4746만t으로 21.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소비는 27.1%(17억 5502만t→22억 8746만t) 늘었다. 1990년대 이후 곡물 생산량이 전년보다 줄어든 해는 10차례 있었지만, 소비가 감소한 경우는 4차례뿐이었다.

곡물 생산 차질의 주된 원인은 이상기후이지만 수요 증가는 인간이 야기했다. 우선 석유 파동에 대비해 각국이 바이오연료 생산에 열을 올리면서 곡물 소비가 크게 늘었다. 미국은 2005년부터 '에너지정책법'을 통해 에탄올 생산에 필요한 재원을 보조하고, 세금 우대정책으로 바이오 에너지 생산을 장려했다. 미국에서 수확된 옥수수가 에탄올 생산에 쓰인 비율은 1997~98년 5.5%에서 2007~08년 26.8%로 뛰었다.

●밀·옥수수값 최대 50% 치솟아… 일부 사재기

인간의 '돈 욕심'도 곡물가격 상승에 불을 지폈다. 미국과 유럽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풀면서 헤지펀드(단기차익을 좇아 이동하는 돈) 등 투기자본이 대거 곡물시장에 몰렸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곡물 관련 선물 거래에서 실제 농산물 거래는 2%에 불과하고, 나머지 98%가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적 금융자본"이라고 성토했다.

투기자본을 막으려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요 20개국(G20)은 지난해 국제증권감독기구(IOSCO)의 원자재 파생상품시장 규제·감독 일반 원칙을 승인하고, 시장 왜곡에 대한 우려가 있을 경우 매매 한도를 두는 등 적극적인 시장 개입에 나서기로 했다. 그러나 미국은 원유와 옥수수 등 28개 상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다 업계의 반발로 연기했고, 영국은 규제 자체를 지금까지 반대하고 있다.

주요 곡물 수출국이 식량을 무기화하며 이용하는 것도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2008년 식량 수급이 불안한 조짐을 보이자 아르헨티나와 우크라이나,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은 수출제한 조치를 단행했고, 이는 국제 곡물가격 폭등으로 이어졌다. 러시아는 2010년에도 밀 생산량이 급감하자 수출 중단을 선언했다.

2012년 세계 곳곳에 이상기후가 나타나면서 인류는 다시 한번 애그플레이션 공포에 떨고 있다. 밀과 콩, 옥수수 가격이 최근 두 달 사이 30~50% 치솟았다. 애그플레이션으로 가는 마지막 단계인 '패닉 바잉'(panic buying), 즉 사재기 현상이 일어날 조짐도 있다. 멕시코에서는 옥수수로 만든 주식인 토르티야 가격이 급등하면서 사재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고, 중국은 역대 최대 규모인 콩 6100만t을 2013년까지 수입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7~2008년 식량 파동 당시 방글라데시 등 12개국에서 폭동이 발생한 것처럼 지구촌 전체가 다시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바이오연료 수요 감소… 희망적 전망도

그러나 과거의 파동과 지금은 여러 측면에서 달라 식량 위기로까진 치닫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도 있다. 일단 핵심 곡물인 쌀의 공급이 원활하다는 점을 든다. 미 농무부가 최근 발표한 '8월 세계 곡물 수급 동향과 전망'에 따르면 올해 쌀 생산량은 4억 6322만t으로 전년 대비 0.4%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밀과 옥수수가 각각 4.7%, 3.2% 줄어드는 것에 비하면 작황이 양호하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쌀은 t당 338달러에 거래됐다. 400달러를 훌쩍 넘겼던 2008년과 비교하면 안정적이다.

바이오연료 수요가 감소한 점도 애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다. 2008년 국제유가(서부텍사스중질유)가 배럴당 140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자 세계 주요국은 앞다퉈 석유를 바이오연료로 대체했다. 그러나 지금은 국제유가가 95달러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어서 바이오연료가 절실하지 않다. 중국 등 거대 곡물 소비국의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것도 곡물 시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양승룡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의 생산 부진은 이미 시장에 반영된 만큼 조만간 파종에 들어가는 남미의 수확량이 중요하다."면서 "남미마저 생산이 저조할 경우 투기자본이 활개를 치며 곡물 시장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G20은 곡물 파동에 대비하기 위해 오는 27일(현지시간) 긴급 화상회의를 갖는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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