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남포 진출, 한국도 중국도 '당혹'

남문희 대기자 2013. 5. 30.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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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마 이사오 일본 내각관방 참여의 갑작스러운 방북 이유는 역시 남포다. 북한이 명분을 주고 일본이 20억 달러를 선투자하면 합의될 가능성이 크다. 개성공단 공장이 남포로 이동할지 모른다.

이지마 이사오(飯島勳·67) 일본 내각관방 참여(參與·자문역)의 갑작스러운 방북 뒷그림이 밝혀졌다. 역시 남포다. 겉으로는 7월 참의원 선거 전의 납북자 문제 해법이니, 아베 총리의 방북이니 따위가 거론되지만, 이면의 그림은 일본 자본의 북한 진출 문제다. 이 내용은 지난해 9월 〈시사IN〉이 보도한 남포공단 진출 문제와 맞닿아 있다(〈시사IN〉 제260호 ‘일본 전자업계, 북한 남포공단에 진출 시도’ 참조).

북·일 관계에 정통한 소식통이 전하는 이지마·북한의 협상 내용은 이렇다. 북한이 ‘명분’만 만들어주면 일본은 7월 참의원 선거 승리 이후 언제든 북한 남포에 15억~20억 달러를 선투자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일본 측이 제안한 이 15억~20억 달러는 일종의 증거금적 성격이라고 한다. 그동안 북·일 수교 협상에 대해 말만 무성했지 지켜진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수교 협상을 통해 앞으로 배상금을 지급하겠다는 담보의 성격으로 선지급되는 돈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돈은 추후 수교 배상금에 합산될 가능성이 크다.

ⓒReuter=Newsis 5월14일 방북한 이지마 이사오 내각관방 참여(오른쪽).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일본이 올해 7월 이후 이 정도 돈을 선지급한다면 그동안 경제 회생을 위한 종잣돈 마련에 애를 먹어온 북한에게는 단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 대가로 일본 측이 요구하는 ‘명분’이 무엇인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이지마가 방북한 다음 날인 5월15일 아베 총리가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납치·핵·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상회담이 중요한 수단이라면 당연히 (정상회담을) 생각하며 협상해나가야 한다”라고 밝힌 데 대략의 해답이 있다. 7월 참의원 선거 전에 납치 문제나 북한 핵 관련 6자회담 문제에서 북한이 일정한 양보 의사를 일본 측에 피력하거나 이를 논의하기 위해 아베 총리의 방북을 요청할 경우 일본 측이 20억 달러(약 2조2350억원)를 선투자할 충분한 명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열거한 납치·핵·미사일이라는 의제나 이지마라는 인물의 등장을 통해 이번 외교 게임이 2002년과 2004년 고이즈미 방북의 연장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고이즈미 1, 2차 방북이 주로 납치 문제와 핵미사일 등 정무적 사안에 치우친 데 비해 이번 아베의 외교 게임은 북·일 양측이 자본 진출이라는 실사구시적 접근 방식으로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고, 그만큼 주변에 미치는 파장도 크리라 보인다.

신의주 공단 밀린다? 중국도 당혹

당시 대북 소식통이 전한 바에 따르면, 일본 전자업계의 남포 진출을 둘러싼 북·일 간 접촉이 지난해 8월17일을 전후해 베이징에서 이뤄졌다. 북한 측 창구는 북한 합영투자위원회(대표 이광근)였고, 일본 측 협상 대표는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북한이 일본 측에 수교 배상금으로 300억 달러를 요구했고, 소니 등 일본 유수 전자회사의 노후 생산시설을 현물 출자 방식으로 북한 남포공단으로 이전하는 방안이 논의됐다는 점이 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선투자 방식에 20억 달러’라는 액수까지 등장했고, 〈시사IN〉에 이 소식을 전한 북·일 관계 소식통이 “합의문 체결 얘기까지 나올 정도”라고 하는 것을 보면 그 사이에도 이와 관련한 논의가 계속돼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이번 이지마 방북을 주도한 양쪽의 채널이 외무성 같은 정부 기관이 아니라 일본 총리실과 북한 노동당 국제부가 직접 나섰으며, 노동당 국제부는 2007년 4명이 방일한 이래 일본 측과 꾸준히 대화 채널을 유지해왔다는 점에서도 추론이 된다.

이에 비해 한국은 그나마 근근이 유지해오던 개성공단까지 문을 닫을 판국이며 〈시사IN〉이 보도한 ‘북한 당 중앙위원회의 개성공단 플랜 B’(〈시사IN〉 제295호, ‘개성공단 플랜 B 이미 세워놓았다’ 참조)에 따르면, 북한은 앞으로 3개월 안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개성의 공장을 모두 해체해 남포 또는 신의주로 이전시킬 계획이다. 벌써부터 일부에서는 남쪽 기업의 공장들이 북한 경제 회생을 위한 ‘시드 팩토리(종자 공장)’로 활용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이는데, 만약 남포 공단으로 일본 자금이 들어와 이 돈으로 남쪽 공장을 운영하게 될 경우 남한과 북한, 일본 관계가 매우 복잡하고 미묘해질 수밖에 없다. 북·일 관계의 진전에 따라 남북관계가 짓밟히고 농락당하는 현장이 될 수도 있다.

당혹감으로 따지면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은 처음에는 관망하는 자세를 보였으나, 이지마 방북의 내막이 자세하게 알려지면서 거의 ‘경악과 충격’의 분위기다. 구한말 당시처럼 동북아 패권을 둘러싼 중·일의 갈등이 북한 진출을 둘러싸고 재연되는 양상이다. 또한 개성공단 문제로 중국이 추진해온 신의주 공단 착공식이 늦춰졌는데, 로비를 해서라도 착공식을 앞당기고 개성공단에서 이전될 한국 공장 유치 운동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그동안 중국이 북한에 대한 ‘갑질’에 익숙해 있었는데 이제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한 셈이다.

우리 정부는 아베의 대북 외교 시동을 미국도 몰랐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러나 미·일 관계에 밝은 이들은 “아베가 저런 일을 미국 허락 없이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라고 단언한다. 

이런 급변하는 한반도 주변 정세로 볼 때 과연 박근혜 정부가 기대하는 한·미·중의 전략 공조라는 게 이론이 아닌 현실에서 가능한지 의심스럽다.

남문희 대기자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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