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메릴린치에 나랏돈 1조 날린 투자공사, 회의록엔 "15분 정회 뒤 만장일치 통과"

박종훈 2014. 10. 13. 20:3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08년 1월, 한국투자공사는 외환보유액 20억 달러, 우리돈 2조 원을 미국 투자은행 메릴린치에 투자했다가 사상 초유의 1조 원대 손실을 봤습니다. 그런데 이 투자 결정은 메릴린치가 15조 원의 천문학적 투자 손실을 봤다는 소식으로 세계 증시가 동반 폭락한 직후에 이뤄졌습니다. 왜 갑자기 한국투자공사가 메릴린치에 20억 달러를 투자했는지 그동안 투자과정을 둘러싸고 수많은 의혹이 제기돼 왔습니다. 그런데 KBS가 이런 의혹을 푸는데 실마리가 될 열쇠를 단독으로 입수했습니다.

투자공사의 투자가 이뤄지기 직전인 2007년 11월, 미국의 투자은행 메릴린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8억 달러, 우리 돈으로 9조원에 가까운 손실을 봤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이렇게 충격적인 투자 손실로 메릴린치는 미국의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철저히 외면을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자금을 조달해 수혈하기 시작했지만 자금난은 점점 더 심각해져 갔습니다.

이처럼 글로벌 금융위기의 공포감이 점점 더 심화되던 2008년 1월 7일에는 드디어 우리나라 외환보유고로 해외 투자를 하는 공기업인 한국투자공사에까지 손을 벌리게 됩니다. 한국투자공사는 메릴린치에서 자금을 요구하는 메일을 받자마자 정말 신속하게 메릴린치에 대한 투자를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자금 지원을 요청한 직후 뉴욕타임스는 메릴린치의 부실 규모가 15조원을 넘을 것이라는 충격적인 보도를 내놓습니다. 이 보도의 여파로 세계 증시가 동반 폭락할 정도로 시장에 큰 타격을 주게 됩니다.

하지만 이 같은 대규모 추가 부실 소식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투자공사는 메릴린치 투자를 더욱 빠르게 진행시키기 시작합니다. 취재진이 입수한 자체 내부 감사 자료를 보면, 15조원 부실 소식이 나온 바로 다음날 한국투자공사 사장은 당시 재정경제부 조인강 심의관과 함께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 경제 1분과의 강만수 간사에게 메릴린치 투자 건을 보고하러 갑니다. 더구나 이 날은 메릴린치에 대한 한국투자공사의 실사가 끝나기도 전이었습니다.

그리고 보고를 마친 이틀 뒤에는 곧바로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운영위원회를 열었습니다. 운영위원회 초반에는 메릴린치 투자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한 대학교수는 경영권도 못 얻는 투자여서 전략적 가치가 없는데다 우리 투자공사가 굴리는 외환보유고 규모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투자라고 밝혔습니다. 다른 운영위원은 절차에 하자가 있다며 절차까지 어기며 추진할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더구나 조금만 기다리면 메릴린치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텐데,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의아해하기도 합니다. 투자공사의 고위 임원은 의사록에 자신이 반대했다는 내용을 분명히 기록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투자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자 이틀 전 대통령직 인수위에 보고를 했던 조인강 심의관이 갑자기 정회를 요청합니다. 그리고 15분 뒤에 회의가 속개되는데요, 그 이후에는 회의 분위기가 180도로 바뀌면서 투자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의 사라지더니 회의를 속개한 지 30분도 지나지 않아 무려 20억 달러, 우리 돈으로 2조원이 넘는 돈을 파산 위기에 내몰린 메릴린치에 투자하는 방안이 의결됩니다.

메릴린치가 우리나라에 자금을 요청한 뒤 나랏돈 2조원의 투자를 결정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일주일이었습니다. 개인이 자동차 한 대를 사도 일주일보다는 더 오래 고민할 것 같은데, 나랏돈 2조원을 투자하는 공기업이 단 일주일 동안의 정보수집만으로 결정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이같은 투자 이후 메릴린치의 부실이 점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나면서 9개월 뒤에는 결국 다른 미국 은행으로 헐값에 팔려 나갑니다. 그 결과 당시 손실 평가액이 1조 5천억 원이 넘기도 했는데요, 이처럼 천문학적인 투자 실패에도 불과하고 당시 투자에 관여했던 인사들은 징계를 받기는커녕 대부분 영전을 했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거액의 나랏돈을 잃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도대체 앞으로 누가 주의해서 투자를 할까요? 정말 걱정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투자가 이뤄지기 직전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에 사전 보고됐지만 이후 한국투자공사의 특별감사에서 사전 보고 사실이 통째로 삭제됐다는 점입니다. 2008년 국정감사에서 당시 최경환 한나라당 의원이 강하게 성토했고 투자공사는 2009년 1월 자체 특별감사에 착수해 1차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이 보고서에는 투자 결정 이틀 전 한국 투자공사 사장과 재정경제부 관료들이 대통령직 인수위를 찾아가 강만수 인수위원과 최중경 인수위원에게 보고한 것으로 돼있습니다.

하지만 이 내용을 포함한 1차 보고서 상당 부분이 한달 뒤에 다시 작성된 2차 보고서에는 통째로 사라진 겁니다. 바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곤이 물러날 무렵입니다. 한국 투자공사 관계자는 기재부 관계자들이 인수위 보고 내용을 포함한 투자 결정 과정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과연 이같은 투자를 최종 결정하고 지시한 사람은 누구인지, 또 내부 감사 과정에서 실패를 감추려는 인위적 시도는 없었는지, 향후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입니다.

☞ 바로가기 [단독] 투자공사, 왜 위험한 메릴린치에 나랏돈 2조 투자했나?

☞ 바로가기 [단독] 강만수·최중경에 사전 보고, 감사보고서는 누락

Copyright © KB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