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플러스] 고인돌을 레고 다루듯..훼손되는 3천년 유물

임진택 입력 2015. 1. 5. 21:52 수정 2015. 1. 5.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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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앞서 1부에서도 미리 보도해드렸습니다만, 문화재청이 작성한 보고서에 근거해서 춘천의 중도 레고랜드에서 발굴된 고인돌 유물이 옮겨지고 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유물인데요, 문제는 보고서 자체에 굉장히 오류가 있다는 겁니다. 저희 JTBC가 입수한 문서에서 밝혀냈습니다. 또 이걸 근거로 해 문화재 운반 작업도 하고 있는데, 그 운반 작업도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3천년된 문화재 훼손이 불가피해 보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임진택 기자가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기자]지난해 7월, 춘천 의암호에 위치한 작은섬 중도.

우리 나라 고고학계에서 일찌기 볼 수 없었던 일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테마파크 레고랜드 개발을 위해 발굴을 하던 중 예상치 못했던 중요 유적지가 발견된 겁니다.

학자들은 한반도 고대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라고 입을 모읍니다.

[심정보/한밭대 교수 (매장문화재위원장) : 일본에서 네모진 환호(마을을 둘러싼 도랑) 계통을 중국에서 찾았는데 이번에 나오는 바람에 우리나라에서 전파가 됐구나 하고 다시 논문을 써야…]

고인돌 101기, 집터 917기가 발견됐고 그 안에선 중요한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발굴된 유물은 무려 1400여기.

특히 고조선의 것으로 여겨지는 비파형동검과 청동도끼에 학계의 비상한 관심이 모아졌습니다.

[최정필/세종대 명예교수(인류고고학) : 책에서 우리가 고조선의 성립이라든지 고조선의 발달을 봐 왔는데 임진강, 예성강 남쪽에서도 이러한 거대 국가가 존재했다…]

레고랜드 '개발'을 멈추고, 유물 '보존'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문화재청과 강원도는 두 달의 고민 끝에 결국 개발 쪽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만, 고인돌은 옮겨서 보존하고 집터는 흙으로 덮은 뒤 그 위에 레고랜드를 짓기로 한 겁니다.

[민건홍/엘엘개발(레고랜드 개발회사) 대표 : 1500~2000년 전 청동기시대의 생활상을 레고블록으로 표현해서 '여기가 옛날 청동기 시대의 삶의 터였다'라는…]

그리고 100일. JTBC는 중도 유물 발굴 현장을 다시 찾았습니다.

눈에 덮인 거대한 유적터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28만여m²의 이 땅에 3천년 전 조상들 약 5천 여명이 모여 살았던 겁니다.

발굴터를 하나하나 살펴 보기로 했습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집터의 윤곽이 무너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양이 선명하던 다섯 달 전 발굴 당시와는 많이 다른 모습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대부분 집터가 혹한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습니다.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이광원/한민족사연구회 상임회장 : 겨울이 되잖아요. 부직포라든가 이런 걸 싹 깔아놔야 돼요. 눈이 오더라도 그런 부분은 보존을 시키고 훼손 안 되게 해야…]

집터 뒤로 연결된 고인돌 무덤터로 갔습니다.

고인돌을 구성한 돌들을 담아둔 비닐 포대 수십 여개가 눈에 들어옵니다.

지난해 7월 발굴 당시 조화롭게 정열져 있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문화재청과 개발 회사는 최대한 원래 모습대로 옮길 계획이라고 말합니다.

[정연우 원장/예맥문화재연구원(발굴업체) : 문화재위원회에서 이거 열 그대로, 나온 모습 그대로 옆으로 옮기기로 (어디로요?) 이 아래 쪽으로, 옆으로…]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훼손이라는 주장이 나옵니다.

[이형구/선문대 석좌교수(역사고고학) : 농촌에 가면 동물 사료 담는 마대에다 집어 넣어갖고 토목공사하는데 내버리다시피 저렇게 하는데, 저것은 귀중한 우리 역사유적입니다.]

매장문화재보호법은 문화재의 역사성과 희소성을 따져 '원형 보존' 혹은 '이전 복원'을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취재팀은 문화재청이 지난 9월 작성해 매장문화재위원회에 제출한 한 장의 보고서를 입수했습니다.

유적지의 높이와 주변 의암호의 최고 수위을 비교한 것입니다.

고인돌 터의 높이는 수면보다 50cm 낮게 기록돼 있습니다.

반면 주거지와 환호 즉 방호벽 자리는 수면보다 각각 70cm, 30cm 높습니다.

의암호의 수면이 제일 높을 때 고인돌 터는 물에 잠긴다는 의미입니다.

매장문화재위원회는 이 보고서 한 장에 고인돌의 운명이 바뀌었다고 밝혔습니다.

처음엔 원형 보존이었습니다.

그런데 고인돌 터가 물에 잠길까봐 이런 결정을 뒤집었다는 겁니다.

[심정보/한밭대 교수(매장문화재위원장) : 전부 보존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하고서 수위를 받아보고 상당히 실망했죠. 의암댐만 없으면 그냥 원형 보존이죠.]

취재팀은 이 보고서의 내용을 실제로 검증해 보기 위해 현장을 다시 찾았습니다.

토목 현장에서 오랜 측량 경험을 가진 시민단체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길이 400m의 환호, 그리고 높낮이에 큰 차이가 없는 주거지 두 곳을 기준점으로 했습니다.

기복이 있는 구릉 지형인 고인돌 터는 높이 별로 6곳을 정했습니다.

밀리미터 단위까지 높이차 측정이 가능한 토목 측량기구를 기본으로 전자위치측정기로 검증했습니다.결과는 보고서와 정반대.

고인돌 여섯 곳의 높이 평균은 주거지 두 곳보다 18.5cm가 더 높았습니다.

네 곳이 주거지보다 높은 곳에 위치했고 두 곳은 낮았습니다.

[오동철/춘천역사문화연구회 사무국장 : 주거지와 환호의 높이가 거의 같고요. 노출된 면은. 그리고 주거지나 환호에 비해서 지석묘는 더 높은 거죠.]

보고서에 나온 의암호 최고 수위도 실제와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의암호의 최고 수위는 71.5m로 보고서와 50cm나 차이가 났습니다.

결국 보고서가 레고랜드를 건설할 터를 마련하기 위해 사실과 다른 측량치를 제시하면서 고인돌을 옮기도록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문화재청은 측량에 문제가 없다며 JTBC가 제시한 측량과 자체 측량 결과를 비교 검증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발굴 업체 관계자는 다른 가능성을 언급합니다.

[정연우/예맥문화재연구원 원장 : 엘엘(개발사)쪽하고 이런 부분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아이들이 뛰어 놀고 상상의 나래를 펴는데 무덤 공간하고의 어떤 그런 부분들. 그러니까 교육자료로 좋긴 한데. 레고랜드하고의 그런 부분들…]

문제의 보고서 작성 경위와 배경에 대한 전면 조사도 불가피해보이는 대목입니다.[최정필/세종대 명예교수(인류고고학) : 고고학상의 유구(건조물)라는 것은 원위치에 있을 때 역사적인 평가를 받는데 이것을 옮기게 되니까 상당히 불행한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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