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죽어라 지갑만 열던 일본인들 폰 갖다대기 시작했다

도쿄/최은경 특파원 입력 2019.07.22. 03:05 수정 2019.07.2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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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스마트폰 페이' 열풍
도쿄=최은경 특파원

'세븐페이(7Pay) 등록하면 주먹밥 1개 무료 쿠폰 증정&1000엔 이상 충전 시 한 번 더.'

지난 1일 일본 전국에 있는 세븐일레븐 2만1000개 매장에 이 같은 이벤트 광고 포스터가 내걸렸다. 세븐페이는 일본 최대 편의점 업체 세븐일레븐이 독자적으로 내놓은 스마트폰 간편결제 서비스다. 세븐페이에 미리 현금을 충전해두면 스마트폰 앱 바코드만 보여주고 세븐일레븐에서 물건을 살 수 있다. 같은 날 또 다른 편의점 패밀리마트도 맞불 이벤트를 시작했다. '드디어 등장한 파미페이(FamiPay)' '충전 금액 최대 15% 환원' 등이 적힌 포스터가 매장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총액 88억엔을 뿌리는 캠페인'이라는 이름의 요란한 행사다. 자사 스마트폰 간편결제 서비스 앱 '파미페이'에 현금을 충전하면, 충전액의 10~15%(최대 2000엔)를 포인트로 환원해 총 88억엔어치를 돌려주겠다는 뜻이다.

"현금만 받는다"던 일본 상점가에도 간편결제 열풍

편의점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도쿄 시내의 드러그스토어,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전자제품 양판점 등에선 간편결제 경쟁이 한창이다. 외국인 관광객의 성지인 전자제품 양판점 '빅카메라(BIC CAMERA)'나 드러그스토어 '마쓰모토 기요시'의 계산대 옆엔 스마트폰 QR코드·바코드 결제 서비스 로고 10여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여기서 이용 가능한 서비스만도 10개가 넘는다는 뜻이다.

신용카드도 안 받던 소규모 식당·카페에서도 간편결제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눈에 두드러지는 변화다. ICT기술종합연구소가 발표한 2018년 '모바일 캐시리스 결제시장 동향'에 따르면 한 달 한 차례 이상 스마트폰 QR코드 결제를 이용한 사람 숫자는 2017년 187만명에서 2018년 512만명으로 늘었다. 2021년엔 1880만명이 될 것이라고 연구소는 내다본다.

일본 도쿄 신주쿠의 패밀리마트 편의점 외부에 '파미페이(FamiPay)' 홍보물이 붙어 있다. 패밀리마트가 출시한 스마트폰 간편결제 서비스인 파미페이를 사용하는 고객에게 치킨 등 경품을 준다는 내용이다. /도쿄=최은경 특파원

다양한 스마트폰 결제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현재 일본 내 간편결제는 30여 개로 늘어났다. 일본 언론들은 이를 '편의점 계열' '은행 계열' '통신사 계열' 'IT 기업 계열' '중국 계열' 등으로 분류한다. 세븐일레븐·패밀리마트의 결제 서비스는 '편의점 계열', 통신사 소프트뱅크·엔티티도코모(NTT Docomo)·에이유(au)는 '통신사 계열', 라인·아마존은 'IT 기업 계열'인 식이다. 대형 은행, 지방 은행들도 저마다의 페이 서비스를 출시했다. 일본에서는 놀라운 변화다. 일본은 2017년에도 현금 외 수단 결제 비율이 전체 21.3%에 불과한 '현금 대국'이기 때문이다.(사단법인 캐시리스추진협의회 2019년 조사 결과).

"충전액수 20% 돌려 드립니다" 1000억원대 '쩐의 전쟁'

일본 업체들이 간편결제 회원 확보에 나서는 것은 '록인(lock-in·묶어두기)' 효과를 노리기 때문이다. 록인 효과란 소비자가 일단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하면, 다른 유사한 서비스로 옮기지 않고 계속 해당 서비스만 이용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용자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도 불이 붙었다. 시작은 소프트뱅크와 야후가 손잡고 설립한 '페이페이(PayPay)'가 끊었다. 지난해 12월 스마트폰 결제 앱 페이페이를 출시하면서, 결제금액(25만엔 이하)의 최대 20%를 포인트로 돌려주는 이벤트를 시작했다. 핵심은 환원 액수다. 페이페이는 총 100억엔(약 1090억원)어치를 포인트로 돌려준다고 선언했다.

'100억엔 캐시백 캠페인'은 연말 분위기와 맞물려 일본 전역에 페이페이 열풍을 일으켰다. "치안이 좋은 일본에선 현금이 편하다" "전자 화폐 보안을 믿을 수 없다"던 일본인들이 휴대폰을 손에 들고 계산대에 늘어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페이페이의 마케팅 성공 사례 후 캐시백 이벤트 경쟁이 대세가 됐다. 네이버 라인의 '라인페이'가 지난 5월 진행한 '300억엔 이벤트'가 대표적이다. 라인 친구에게 1000엔을 무료로 보낼 수 있게 하되, 이를 사용하려면 라인페이에 가입해 본인 인증까지 마치도록 했다. 라인은 6월에도 결제액수 20%를 포인트로 돌려주는 이벤트를 실시했다.

가맹업체 확보 움직임도 치열하다. 주로 수수료 감면 혜택을 내건다. 일본 페이업체의 수수료는 대개 3%대인데, 페이페이와 라인페이의 경우 중소 규모 가맹업체엔 2021년까지 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5%까지 수수료를 물어야 하는 신용카드와 비교하면 파격적인 조건이다.

◇진검승부는 축제가 끝난 뒤

관건은 포인트 환원 이벤트가 끝난 뒤에도 스마트폰 결제 서비스가 일본인의 각별한 '현금 사랑'을 이겨낼 수 있을지다. 아사히신문은 "많은 사람이 편리함보다는 포인트 환원을 목적으로 간편결제를 사용하는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평상시 스마트폰 결제 서비스의 포인트 적립률은 1~3% 정도다. 이벤트에 익숙해진 고객들에겐 포인트 3%는 "손해 보는 기분"이라는 게 이용자의 말이다.

조사 회사 MMD 연구소가 올 2월 발표한 'QR 코드 결제 서비스 캠페인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QR 코드 결제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유 1위는 "포인트가 많이 쌓이기 때문"(39.4%)이 차지했다. "계산이 신속하다"(31.9%)보다 높았다. "(포인트 환원) 캠페인 이야기를 듣고 관심이 생겨서"(26.6%)가 3위였다. 반면 QR 코드 결제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는 "신용카드로 충분해서"(43.1%), "현금으로 충분해서"(23.6%), "개인정보 및 결제정보가 유출될 것 같아 불안해서"(21.6%) 순이었다.

여기에 세븐일레븐의 세븐페이가 출시 사흘 만에 해킹 피해로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역시 스마트폰 결제 서비스는 불안하다"는 여론도 퍼진다. 지난 16일까지 파악된 세븐페이 해킹 피해자는 1574명이다. 이들 신용카드나 계좌에서 약 3240만엔이 빠져나갔다.

아사히신문은 "많은 소비자에게 편리함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각종 페이가 난립하고 이벤트만 강조되는 상황"이라며 "이벤트 이후에 어떤 서비스가 살아남을지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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