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크로스오버 바람..'신한류'가 몰아친다

유주현 입력 2019. 10. 19. 00:21 수정 2019. 10. 2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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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나이 등 해외에서 먼저 주목
전통과 창작 경계 넘나드는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러시
국악 뮤지션들 국내시장 비좁아
해외유통 플랫폼 역할 강화해야
해금, 거문고, 피리 등 국악기를 기반으로 헤비메탈 스타일의 폭발적인 음악을 만들어내는 잠비나이는 매년 30개국 이상 해외 라이브 투어를 돌 정도로 월드뮤직 시장에서 글로벌한 인기를 얻고 있다. [사진 더 텔 테일 하트]
지난 10월 7일 정동극장 정동마루에서는 외국인 20여 명을 앞에 두고 5인의 여성 뮤지션들이 작은 공연을 펼쳤다. 장구·해금·피리 등 국악기 베이스지만 헤비메탈 음색의 보컬과 서정적인 키보드 선율, 농악판 상쇠의 꽹가리까지 뒤섞인다. 국악인지 재즈인지 집시음악인지 몰라도 사물놀이를 보듯 신명 난다. 외국인들도 굿판에서 쓰는 ‘서리화’를 응원봉처럼 흔들며 하나가 된다.

지난주 열린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국악 뮤지션 해외유통 프로젝트 ‘저니투코리안뮤직’ 행사 중 창작음악그룹 ‘더튠’의 쇼케이스였다. 각국에서 모여든 월드뮤직 전문가들에게 우리 뮤지션을 선보이는 자리다. 올해 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저니투코리안뮤직’에 선정된 ‘더튠’은 우리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뉴욕 링컨센터에 초청받을 정도로 해외 활동이 활발한 그룹이다. 모로코에 이들을 초청한 ‘르 블루바드(Le Boulevard)페스티벌’ 디렉터 히캄 바후는 “아시아 음악의 특징을 잘 담고 있으면서도 세계화에 손색없는 음악성을 갖춘 게 매력적”이라며 “우리 모로코 축제뿐 아니라 다른 축제에도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K팝 아이돌 못잖은 해외투어 성적

국악계에도 경계 없는 ‘크로스오버’ 음악이 열풍이다. 전통에 뿌리를 두되 과감한 실험으로 줄타기하며 한국적인 아우라를 발산하는 음악들이 ‘새로운 국악’으로 각광받고 있다. 갑자기 생긴 현상은 아니다. 2002 부산아시안게임 주제곡으로 재일한국인 뮤지션 양방언이 작곡한 ‘프런티어!’가 대중적인 선율에 국악기의 매력을 더해 대박을 터뜨린 이후 크로스오버 트렌드가 생겨났고, 자유로운 장르 충돌을 표방한 국립극장 여우락페스티벌 등을 통해 증폭되어 왔다.

민요를 기반으로 파격적인 음악을 들려주는 이희문. 신인섭 기자
20년 가까이 이어진 크로스오버 트렌드는 최근 국악의 세계화 움직임과 만나 해외무대로 이어지고 있다. 요즘 국악 스타들은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는다. 잠비나이, 이희문 등 ‘핫 플레이어’들은 국악의 틀을 벗어나 ‘세상에 없던’ 음악을 만들어 글로벌 스타로 먼저 떴다. ‘전통음악의 문화교류’ 차원을 넘어 매력적인 월드뮤직으로 해외진출에 성공한 새로운 한류 모델로, 국내에서도 역주행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 이희문은 “민요의 바운더리 안에선 진로 고민을 할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무용가 안은미를 만나 총체극 ‘프린세스 바리’ 주연으로 떴고, 이후 경기민요와 타장르의 적극적인 충돌을 실험해 갔다. 고정된 패턴이 아닌 재즈와 결합한 ‘한국남자’, 록과 결합한 ‘씽씽’, 드럼 등 리듬악기와 결합한 ‘날’ 등 다양한 프로젝트 위주로 활동한다. 지금은 해체됐지만 그가 주도한 민요록 밴드 ‘씽씽’은 2017년 미국 공영라디오 NPR의 대표 프로그램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 한국인 최초로 출연한 영상이 유튜브 400만 뷰에 육박하는 인기를 누렸다. 그 영상에 반한 배우 유아인의 러브콜로 올해 KBS ‘도올아인 오방간다’에 고정출연하기도 했다.

잠비나이의 행보는 더 글로벌하다. 매년 30개국 이상 라이브 투어를 돌 정도로 가장 핫한 ‘국악한류’인 이들의 성공 요인도 ‘이제껏 못 들어본 음악’이다. 피리, 거문고, 해금 전공자를 중심으로 드럼과 베이스, 기타를 활용해 헤비메탈에 가까운 폭발적인 사운드에 국악 특유의 애절한 정서를 담아낸다. ‘U2’와 ‘롤링스톤스’의 프로듀서 스티브 릴리화이트가 “트렌드를 좇는 것이 아니라 트렌드를 주도하는 밴드”라고 극찬해 유명해졌고, 2016년 NPR 뮤직 ‘올해 최고 음악 100선’, ‘롤링스톤’의 ‘당신이 못 들어봤을 15개 대단한 앨범’에 선정되기도 했다. 2017년 ‘20개국 44개 도시 50회 공연’이라는 아이돌급 기록으로 화제가 되자 2018 평창겨울올림픽 폐회식에도 불려나갔다. 3집 앨범 발매기념으로 유럽투어 중인 이들은 “유행에 민감한 음악을 해야 하는 국내 시장에 비해 다양한 장르를 수용하는 해외 시장에서 발판을 다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해외시장은 국악의 다양성에 주목

‘듣도보도 못했던 새로운 국악’은 다양한 창작국악 인큐베이팅 프로그램들을 통해 탄생하고 있다. 2007년 시작된 국악방송의 ‘21세기 한국음악 프로젝트’는 13년간 불세출, 정민아, AUX, 고래야 등 많은 스타를 배출해 왔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소리프론티어’도 영화 ‘워낭소리’의 OST로 유명한 밴드 ‘아나야’를 시작으로 더튠, 소나기프로젝트, 오감도, 악단광칠, 타니모션 등을 배출했다. 정동극장도 청년 국악 인큐베이팅 사업 ‘청춘만발’을 3회째 진행하고 있고, 서울시와 크라운해태가 지난해 시작한 남산국악당의 국악오디션 ‘단장’도 폭넓은 리쿠르팅과 체계적인 인큐베이팅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우승한 ‘헤이스트링’은 11월 런던 사우스뱅크 센터에서 유럽 데뷔한다.

‘새로운 국악’이 봇물 터지고 있지만 국내에는 설 자리가 좁다. 세계무대에서 살 길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김희선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은 “국내에서는 웬만큼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면 국악을 식상하게 여긴다”면서 “해외시장에서는 전통음악계에 젊은 아티스트들이 포진해있다는 점에 놀라고 있고, 국악의 장르 다양성과 아티스트그룹의 다양성에도 주목하고 있기에 수요는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 서울국제뮤직페어(뮤콘), 아시아태평양국제뮤직마켓(에이팜) 등 해외 유력 마케터들이 찾는 공연예술 견본시장이 여럿 있지만, 국악에 특화된 해외진출 플랫폼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2008년부터 지속해온 ‘저니투코리안뮤직’이 유일하다. 공모를 통해 아티스트를 선발하고, 해외 유명 극장, 축제 관계자들을 초청해 쇼케이스, 한국음악이론 세미나, 네트워킹 파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열어 아티스트와 매칭을 돕는다.

지금까지 ‘저니투코리안뮤직’을 통해 전 세계 월드뮤직 전문가 160여명이 한국을 찾았고, 참여 아티스트의 67%가 해외무대로 진출했다. 올해도 영국 바비컨센터, 사우스뱅크센터 등에서 관계자 25명을 초청했다. 잠비나이와 이희문을 비롯해 공명·비빙·바람곶·블랙스트링 등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창작그룹들은 모두 저니투코리안뮤직을 통했다. 유럽 최대 월드뮤직마켓인 워맥스(WOMAX)에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한국단체가 8년 연속 선정된 것도 그 성과다.

김희선 연구실장은 “해외에서 한국 아티스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관련 정보도 요구하고 있다. 잠비나이 등은 아티스트의 창의력과 예술성이 시장에 대한 이해와 잘 결합된 예시”라면서 “아티스트와 시장이 잘 만나려면 매개역할이 필요하다. 해외교류 매개 인력을 위한 기획자양성도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 여성 5인조 창작음악그룹 더튠 “전통의 본질 알고 새로운 해석해야”

여성 5인조 창작음악그룹 ‘더튠’. 김경빈 기자
‘더튠’은 올해 해외진출이 가장 활발한 신진 그룹이다. 2014년 ‘소리프런티어’ 우승으로 데뷔했지만 지난해 ‘저니투코리안뮤직’에 선정된 이후 올해만 해도 뉴욕 링컨센터를 비롯해 아랍에미리트의 샤르자월드뮤직페스티벌, 스페인의 쏠마드리드 음악마켓과 모로코의 비자포뮤직 음악마켓 등에 초청받았다.




Q : ‘더튠’은 어떤 음악을 하나.
A : “국악 안에 머물고 국악 밖을 노니는 음악이다. 농악의 상쇠놀음, 조기잡이 노동요 등 한국전통음악의 원형에서 소재를 찾아 우리식의 해석을 곁들여 새로운 색깔을 만들어낸다.”


Q : 정기공연 타이틀이 ‘월담, 쓱 넘어오세요’인데.
A : “음악의 경계를 우리식으로 무너뜨려보자는 의미다. 음악적 배경이 다른 5명이 만났다. 클래식 작곡한 친구도 있고 미술전공자도 있는데, 한 사람이 곡을 쓰는 게 아니라 각자의 몫을 다하면 예기치 못한 곡이 만들어지고, 그래서 우리 음악이 유니크해진다.”


Q : 각종 창작 지원 프로그램에 경쟁이 치열하다.
A : “창작음악을 하는 젊은 친구들이 굉장히 많아져서 새로운 음악을 선보이는 플랫폼, 등용문도 많이 열린다. 한번 기회를 잡았다고 길이 확 뚫리지는 않더라. 자기 음악 만들고 퀄리티를 높일 시간을 버는 정도다. 우리도 꾸준히 자력으로 정기 공연을 하며 내공을 쌓았다.”


Q : 해외 초청을 많이 받고 있다.
A : “우리 음악이 전통보다 광범위한 월드뮤직 성향이다. ‘저니투코리안뮤직’에 몇 차례 도전해 작년에 선정됐는데, 외국인들 반응이 아무래도 더 좋다. 음악 자체로 이해하는 것 같고, 참여형 음악이라 페스티벌 등에서 열광적으로 반응해 주신다.”


Q : 학교에서는 전통만 배웠을 텐데, 창작음악의 색깔은 어떻게 찾았나.
A : “한국음악이 주목받으면서 전통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관건이 됐다. 국악계가 도제식 교육이 엄격하고 눈치를 많이 보는 세계라 우리도 처음엔 욕을 먹었지만, 요즘엔 어르신들도 크로스오버를 좋아하신다. 다만 본질을 확실히 알고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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