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시청서 성추행 당한뒤 삶 엉망" 상주 음료배달원 눈물

백경서 입력 2019. 8. 25. 05:00 수정 2019. 8. 26.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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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9일 상주시청 6급 공무원
음료 배달원, 시청서 엘리베이터서 성추행
법원, 지난 13일 500만원 벌금형 선고
상주시 "징계 위원회 언제 열릴지 미정"
[연합뉴스]
경북 상주시청에서 공무원이 근무 중에 음료 배달원을 성추행하는 사건이 발생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 공무원은 사건 후 8개월째 근무 중이지만 아직 징계를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2월 19일 오전 9시 27분 상주시청 본관 1층 엘리베이터. 상주시청 6급 공무원 A씨(59)와 시청에 건강 음료를 배달하는 여성 B씨(30)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다. A씨가 B씨에게 2년 전부터 음료를 배달해 먹어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A씨가 2층으로 가기 위해 버튼을 누르자 이를 본 B씨는 “걸어가셔야죠”라고 말했다. 이에 A씨는 “다리가 좋지 않다”며 “나는 다리 굵은 사람 보면 부럽다. 대단하다”며 B씨의 허벅지를 3~4회 주물렀다. 이후 그대로 손을 올린 A씨는 “여(기)는 더 대단하지?”라며 B씨의 엉덩이를 만졌다.

이런 상황은 법원 판결문에 그대로 담겼다. 당시 엘리베이터에 폐쇄회로TV(CCTV)가 없어 상황은 찍히지 않았지만, 피해자가 사건 이후 A씨와의 대화를 녹취했고 A씨도 이 부분을 모두 인정했다. 지난 13일 대구지법은 강제 추행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법원은 “잘못을 반성하고 있는 점, 동종 전과가 없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말했다. A씨가 항소하지 않아 판결은 확정됐다.

상공에서 바라본 대구법원·검찰청사. [사진 대구 수성구]
사건은 종결됐지만, 피해자 B씨는 매일 같이 정신 병원 앞을 서성인다. A씨가 징계 없이 계속 일하면서 사건 후에도 생계를 위해 음료를 배달했던 B씨와 마주쳐야 했고, B씨가 오히려 ‘꽃뱀’으로 낙인찍히는 등 2차 피해를 봤기 때문이다.

B씨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사건 당일 하룻밤을 꼬박 새운 뒤 다음날 그를 찾아가 왜 그랬는지 물었다”며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했던 게 용서가 안 돼 고민하다 신고했는데 그날 이후 내 삶은 엉망이 됐다”고 했다.

B씨에 따르면 A씨는 “내가 순간 어떻게 됐나 보다”며 모든 죄를 인정했다. 하지만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그는 “합의 좀 해달라. 명예롭게 퇴직하고 싶다”고 피해자를 수십차례 졸랐다. 상주시청에 따르면 A씨는 퇴직을 1년 4개월 앞뒀다.

하루는 음료 배달을 온 B씨에게 A씨가 다가와 “지하로 내려가서 이야기 좀 하자. 합의금을 주겠다”고 했다. B씨는“절대 안 받겠다”며 완강하게 거절했지만, A씨는 피해자인 B씨의 부모님에게도 계속해서 연락하면서 합의를 요구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B씨는 결국 부모님 휴대전화에서 그의 번호를 차단해야 했다.

사람들의 수군거림도 이어졌다. B씨는 “내가 꽃뱀이라거나 수억의 합의금을 요구한다는 이야기가 뒤에서 들렸다. 피해자가 용기 내서 신고했는데, 근거 없는 말이 불어나면서 나를 괴롭혔다”고 말했다.

국가공무원법에 따르면 성범죄로 검찰ㆍ경찰 등에서 수사 중인 공무원의 경우 판결이 확정 날 때까지 일시적으로 업무를 못 하게 하는 ‘직위 해제’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상주시청 측은 A씨를 직위 해제하지 않았다. 그가 계속 근무하면서 B씨는“남자가 잘못이 없다더라”는 등 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이에 대해 상주시청 관계자는 “지난 4월 징계위원회가 열려 논의는 했는데 판결이 나기까지 직위해제나 징계는 유보하기로 했었다”며 “판결이 난지 10일이 넘긴 했지만, 언제까지 징계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는 데다 다른 안건도 있고 시장님, 부시장님과 일정도 조율해야 해 징계위원회가 언제 열릴지는 미정”이라고 말했다.

상주=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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