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DA가 에이즈 치료제 겸 예방약을 남성용으로만 허가한 이유

이정아 기자 입력 2019. 10. 9. 06:00 수정 2019. 10. 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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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불균형 이유는 가임기 여성에 제약 많은 탓
최근 에이즈 예방용으로 FDA 승인을 받은 길리어드의 데스코비가 남성과 트렌스젠더 여성에게만 승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남성 위주로만 임상시험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성별에 따른 약의 효능을 높이고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임상시험에서 성별 균형을 반드시 고려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미국식품의약국(FDA)은 4일 글로벌 제약사 길리어드사이언스가 개발한 에이즈치료제인 '데스코비'를 예방약으로도 승인했다. 이 약이 치료제로 승인 받은 지 2개월만이다. 

데스코비는 세계 첫 에이즈 치료제이자 예방약인 트루바다처럼 항바이러스제인 테노포비르가 주요성분이다. 둘을 비교하면 효능이 비슷하며, 안전성은 오히려 데스코비가 훨씬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체중 35kg 이상 성인과 청소년이 이 약을 사용했을 때 트루바다와 비교해 뼈와 신장에 대한 부작용이 비교적 낮았다. 길리어드사이언스의 에이즈담당부서감독관인 다이애나 브레이너드 박사는 "주요성분이 같기 때문에 트루바다나 데스코비를 매일 복용하면 에이즈 감염을 예방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FDA는 데스코비를 남성과 트렌스젠더 여성(선천적 성별은 남성)을 대상으로만 예방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승인했다. 길리어드사이언스가 남성 5313명과 트렌스젠더 여성 74명을 상대로만 임상시험했기 때문이다. 남성에게서 별다른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여성에게는 나타날 수 있고, 생식기관이 전혀 다른 만큼 약물이 다르게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이에 일부 운동가들과 과학자들은 회사가 임상시험에 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남성만을 대상으로 시험했으며, 반드시 여성을 대상으로 추가 시험을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FDA에서도 2024년 12월까지 여성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마치라고 요청했다.

브레이너드 박사는 "길리어드사이언스는 현재 여성 에이즈 환자율이 높은 남아프리카에서 고위험군 여성 환자 15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할 계획"이며 "2020년까지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가임기 여성 제약 많아... 의도적으로 임상시험 참여 성별 균형 맞춰야  

의약품을 연구 개발하고 약효와 부작용을 검증할 때 남성중심적이라고 문제가 제기된 것은 처음은 아니다. 이미 십수 년 전부터 약물에 대한 남녀의 반응이 다를 수 있음이 여러 연구와 임상을 통해 알려졌다. 예를 들어 불면증치료제인 졸피뎀은 2013년 FDA에서 여성의 복용량을 남성의 절반으로 줄이라고 권고했다. 연구 결과 약물이 여성 체내에서 더 천천히 대사, 배출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같은 약물을 복용하고도 남녀 차이가 나는 이유는 겉으로 드러나는 키나 몸무게, 체형뿐 아니라 호르몬이나 물질대사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윤하나 이대서울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어떤 약물은 남성에게는 호르몬 수치와 관계 없이 효능이 일정하지만, 여성 호르몬은 수치에 따라 약효가 크게 달라지는 것도 있고 이에 따라 부작용이 달리 나타나는 것도 있다"며 "성별에 따라 병의 원인이나 진행 과정, 증상 등을 보고 치료방법을 적용하는 성인지의학 연구와 활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문제는 여성의 임상시험 참여율이 남성에 비해 극히 낮다는 것이다. 지난 2월 캐나다 몬트리올대 의대 연구팀이 1980년부터 2016년까지 발표된 의학 논문 1150만건을 분석한 결과 70% 이상이 남성 위주라는 사실을 알아내 국제학술지 '랜싯'에 발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2014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조사한 결과 임상 1상을 진행한 신약 28건 630명 중 여성이 참여한 것은 3건, 총 43명이었다. 

제약사에서 임상시험 대상자를 모집할 때 여성을 일부러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인종과 연령, 성별을 대상으로 연구를 하면 훨씬 풍부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제약사 입장에서는 이익이다. 하지만 여성이 임상시험에 참여하기에는 남성에 비해 제약이 많다. 약물이 추후 태아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 가임기 여성 참여에 한계가 있거나, 임상시험 기간 중 임신을 하는 경우 중단한다. 수유 중인 여성도 임상시험에 참여하기 어렵다. 의약품 개발 연구에 있어서 그간 어쩔 수 없이 성별 불균형이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임상시험에서 여성 참여율을 반드시 고려해 의도적으로라도 성별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서양에서는 백인남성 중심적인 임상시험을 성별 문제와 함께 라틴계 인종이나 아프리카인, 동양인 등으로 범위를 넓혀 다양한 인종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다. 미국국립보건원(NIH)은 2014년부터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뿐 아니라 동물과 세포를 대상으로 한 전임상시험에서도 성별 비율을 맞추도록 하고 있다.

이 덕분에 최근에는 성별 차이를 고려한 연구가 점점 늘고 있다. 몬트리올대 의대 연구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성별 균형을 고려한 비율은 1980년대에 비해 최근 임상 연구가 59%에서 67%로, 공중보건 연구가 36%에서 69%로 증가했다. 

국내에서는 여성가족부가 2016년 '특정 성별영향분석평가 연구보고서'를 통해 여성의 임상시험 참여율이 극히 낮음을 제시하고,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의약품 임상시험에서 여성 참여율을 높이는 한편 성별 분석을 강화하라고 요청한 바 있다. 

[이정아 기자 zzung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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