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노조원 고용하라" 민주-한국노총 건설현장서 충돌

박진만 입력 2019. 5. 6. 04:4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건설 일자리 줄자 수도권 곳곳 ‘집회 대결’… 몸싸움에 경찰까지 충돌

정부ㆍ건설사는 뒷짐… 인근 주민들 큰 피해… 노노갈등 장기화 조짐

지난달 23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8단지 아파트 재건축현장 2번 출입구 앞에서 양대 노총 노조원들이 “우리 노조원을 고용하라고”고 요구하고 있다. 박진만 기자

지난달 23일 서울 강남구 개포8단지 재건축 공사현장 2번 출입구 앞.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노조원들이 각각 500여 명씩 마주보고 연좌농성을 벌여 일대에 긴장감이 흘렀다. 작업 시작을 위해 안전교육장으로 들어가려는 한국노총 노조원 40여 명을 민주노총 건설노조원들이 막아서면서 몸싸움도 벌어졌다. 민주노총 측은 “2017년 체결한 단체협약에 따라 민주노총 조합원을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행히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양측을 갈라놓아 대치는 충돌 없이 끝났다. 하지만 이후에도 시공사인 현대건설과 맺은 단체협약을 내세우며 “우리 노조원을 고용해야 한다”는 양대 노총의 힘겨루기는 계속되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수도권 대규모 건설현장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건설 일자리가 확 줄면서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양대 노총의 갈등이 심각해면서다. 양대 노총이 규모를 앞세운 세 싸움에 몰두하면서 건설 현장 인근 주민들의 불편도 가중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나 당사자인 건설사 모두 중재자로 나서기를 꺼려 노노 갈등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5일 경찰에 따르면 양대 노총은 면목동6구역, 삼성동, 방배동, 개포동 등 서울 8개 건설 현장에서 “우리 노조원을 우선 고용하라”고 외치면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지난 9일 경기지역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는 한국노총 노조원들이 시공사에 “우리 노조 소속 조합원들을 더 많이 채용하라”고 요구하면서 대규모 시위를 벌인 탓에 일대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최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힐스테이트 건설현장에서는 상대 노조의 불법 행위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드론을 띄우는 일이 잦아지자 ‘드론 촬영 금지’라는 안내문까지 붙었다.

양측 노조가 건설사에 “우리 조합원을 우선 고용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불법은 아니다. 2007년 관련 법 개정으로 건설사는 건설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 하도급은 불가능하다. 양대 노총 모두 이를 근거로 건설협회 및 소속 건설사들과 ‘다단계 고용을 없애고 노조 소속 조합원을 고용한다’는 취지의 단체협약을 맺었다. 이에 따라 대부분 사업장에선 직접 고용이 정착돼 있다.

그러나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로 양질의 건설 일자리가 확 줄어들면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평화로운 공존이 어렵게 됐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지방 건설시장이 죽고 대형 건설사도 수도권에서만 분양 사업 등을 하다 보니 건설 일자리 파이가 확 줄어 수도권에 갈등이 집중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통계청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 2월 건설업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3,000명이나 줄었다. 이처럼 건설 경기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과거 민주노총이 장악하고 있던 수도권 건설현장에 한국노총이 점차 세력을 확장시켰고, 끝내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양대 노총은 건설 노동자의 직접 고용 정착을 위한 시위인 만큼 문제될 게 없다는 태도지만 인근 주민이나 해당 건설사들의 불편은 이만저만 아니다. 개포8단지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60)씨는 “아침부터 서로 고함을 지르고 욕설을 하는 탓에 장사 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실제 건설현장 주변에는 ‘그만해라! 못살겠다!’ ‘참을 만큼 참았다. 잠 못 자게 하는 새벽 확성기 집회 소음’ 등 주민들이 내건 현수막들이 즐비하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도 이런 현실을 알고 있지만 정작 중재를 위한 개입은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경찰 역시 시위 현장에서 폭력 행위가 발생하지 않는 한 개입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개포8단지 재건축 현장 시공사인 현대건설 관계자는 “현장에서 반드시 특정 조합원을 고용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양대 노조의 힘겨루기로 이도 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mailto:bpbd@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